[지상갤러리] <격물치지 格物致知> 전

김규식, 서울시 운현궁
우리가 보는 것이 곧 우리다. 경관의 중요성은 이로부터 온다. '본다'는 것이 경험이라는 점은 쉽게 잊힌다.

시각적 충격을 고려하지 않은 도시개발, 맥락 없는 광고에 팔리는 공공시설물에 대한 무관심 등이 그 예다. 하지만 그 결과 조화되지 않고 원칙 없이 바뀌는 경관은 사람들의 성정을 조급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문명의 대가로 감내하기엔 오늘날의 경관은 사람과 자연을 지나치게 배제한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이해에만 의해 움직인다고 끊임 없이 일러주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인류와 역사 속 자신을 생각해볼 수 있을까. 관계가 사회를 만들고, 스스로의 부박함들이 강퍅한 문화가 되고, 자연의 도도한 흐름 속에 한 세대도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을 깨칠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한국의 옛 경관들에 대한 <격물치지> 전은 현대의 경관을 비추는 거울이다. 물론 그대로 비추는 것이 아니라 성찰의 지점들을 두드러지게 드러낸다. 전시 제목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해 앎에 이른다'는 뜻이다. 이 하나의 주제로 작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강제욱, 고정남, 구성수, 박형근, 오석근 등 11명의 사진작가가 매진한 결과를 모았다.

카메라에 담긴 장소들은 대부분 이미 유명한 관광지다. 하지만 그 시선은 문득 낯설고, 겸허하다. 장소에 깃든 일들을 헤아리며 오래 거닐다 어렴풋이나마 그 뜻을 알아 마음이 환해진 순간에 찍은 것 같다.

강제욱, 전라남도 순천치 낙안읍성
이들 사진의 아름다움을 '한국미'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 전시의 기획은 한국미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했다.

"<격물치지>는 문화적 형상이 내는 빛에서 우리 정신의 정수를 볼 수 있는가를 묻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소위 그간 한국미의 특성이라고 지적되어 온 내용과 그것이 동일한 것인지도 보고 싶었다. 그 특성들 중 예스럽다는 '고(古)'와 수수하다는 의미에서의 '질박(質朴)'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오래 돼서 예스러워 보이는 것의 본래 특성을 '예스러운'으로 표현하는 것은 무언가 이상하다. 수수하다는 것도 맞지 않는다. 인류가 만든 모든 주류 전통문화의 위상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안목으로 빚은 생활의 장식이자 권위에 속한 것이다."(강성원 일민미술관 기획의원)

한국미에 대한 선입관을 거두고 정직하게 대면하자 한국의 옛 경관들이 비로소 본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과 자연, 인공과 이치 사이 평균대 위에서 균형 잡은 듯 아름다우면서도 생각하게 하는 저 문화적 형상들은 당대인들에게, 심지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깊은 지혜를 제공하는 샘이다. <격물치지>는 그 작용과 과정을 겪도록 이끈다.

일민문화재단의 동명 시각문화총서 5권 출간과 함께 열린 이번 전시는 8월 22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일민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02-2020-2060.


구성수, 서울시 종묘
고정남, 서울시 창경궁
오석근, 전라북도 부안군 월명암
금혜원, 경기도 광주시 수원성
박정훈, 경기도 파주시 자운서원
장용근,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
박형근, 대전시 남간정사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