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진의 무한 변주]백승우, 이혁준, 이준, 노순택 등 새로운 다큐멘터리 형식의 접근 시도

백승우 작가의 utopia 시리즈 제공: 일우스페이스
다큐멘터리는 기록이지만 동시에 해석이기도 하다. 이는 사진이 탄생한 이후 줄곧 변함없는 진실이었지만 오랜 시간 사진은 곧 사실(fact)로 인식됐다.

1950년대, 프랑스 파리의 '일상의 사진가'로 시대를 풍미한 로베로 두아노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은 한 남자 교사를 해직시키기에 이른다. 로베로 두아노는 바에서 한 여성을 바라보던 남성을 찍었을 뿐이지만 신문사로 옮겨간 사진에는 '매춘부를 유혹하는 남자'란 사진설명이 달렸다.

교사로서의 윤리적 사명감을 잊은 몰염치한 남자로 '보여진' 그를 대중은 용서하지 않았다. 사진에 시대적 상황과 이데올로기, 작가 혹은 편집자 주관 등이 개입될 수 있다는 대중의 인식이 자리 잡은 건,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대중의 시야는 넓어졌지만 이는 곧 젊은 사진작가들에게 숙제와 부담으로 안겨졌다. 현실의 재현이라 여겨졌던 사진에서 전통적인 기록성을 제외하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이제 그들은 사진을 촬영하는 시간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미지를 해체하고 조합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고 있다. 기록보다는 해석에 더 많은 비중을 싣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작년과 올해 다큐멘터리의 다양한 변주와 관련한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가나포토페스티벌이 <왓 이즈 리얼>이란 테마를 선택했는가 하면, 김영섭사진화랑의 6주년 개관 기념작은 이 같은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그룹전, <인사동에서 사진아트를 만나다>였다.

이준 작가의 별경 제공: 갤러리 룩스
최근 갤러리 룩스에서도 <달라진 사진들>의 4인전을 비롯해 새로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의 영역을 확장하는 작가들의 개인전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리얼월드(real world)', '블로우업(blow-up)', '유토피아(Utopia)' 등의 일련의 연작으로 잘 알려진 백승우 작가는 현실과 가상의 모호한 경계를 다큐멘터리의 틀을 빌려 탐구한다. '리얼월드' 연작을 통해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사실을 폭로했다면 북한의 이미지를 담은 '유토피아' 시리즈는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유토피아에 조소를 던진다.

그가 '유토피아' 시리즈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북한 당국에서 촬영한 사진을 일본을 통해 구입한 것이다. 백 작가는 북한이 외부에 드러내고자 '선별한 이미지'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인위적으로 재배열해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는 이혁준 작가의 '숲'도 마찬가지다. 세계 곳곳에서 숲을 촬영해온 이 작가는 각각의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콜라주 기법을 이용해 하나의 이미지로 재구성한다. 어디에서나 보았던 숲의 모습이지만 어디에도 없는 숲은 단편적 기억만을 재현하는 사진의 한계를 극복하고 종합적인 기억을 살려내는 작업이다.

미니어처 분경으로 근대사진 속 풍경을 재현하는 이준. 언뜻 보면 거대 자연을 흑백 촬영한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니어처 분경임을 알 수 있다. 이 작가는 작품에 '별경(別憬)'이라는 이름을 붙여, 일부 혹은 가짜 풍경일지라도 자연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노순택의 얄읏한 공 시리즈 - 2006 Daechuri 출처: 노순택 작가 블로그
도시의 건축물과 도로를 충실히 카메라에 담아내는 박승훈 작가는 그러나 그것을 재편해 작품을 완성한다. 영화용 필름으로 촬영하고, 현상이 끝난 필름을 조각내는 그는 마치 씨줄과 날줄로 직조하듯, 혹은 모자이크를 하듯 이미지의 파편을 어긋나게 조합한다. 건축과 도시 이미지의 재배치를 통해 박 작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곳을 향한 시선에 새로운 렌즈를 끼워주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작가들이 다큐멘터리의 틀만을 유지한 채 이미지에 과감한 메스를 들이댔다면, 노순택은 고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을 이어받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식을 과감히 도입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2000년대 초부터 한국사회의 현재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오고 있는 노 작가는 분단 현실과 한국전쟁 등 한국현대사의 근원적 갈등구조와 사회적 폭력의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대추리 주민들의 일상의 기록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들춰낸 <얄읏한 공>. 3년 동안 작가는 주민들의 일상과 함께 레이돔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레이돔은 레이더(radar)와 돔(dome)의 합성어로, 레이더의 덮개를 뜻한다. 레이돔 속의 레이더는 전쟁의 경우를 대비해 정보를 광범위하게 탐색하고 수집하고 있지만 대추리 주민들은 그것의 쓰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마치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추리작가인 듯 레이돔을 프레임에 담은 그는 레이돔을 달빛, 골프공, 물탱크 등으로 변주한다.

박승훈 작가의 TEXTUS_Puzzle#004_100x125cm_digital print_2008 제공: 김영섭사진화랑
사진평론가 박평준 씨는 '효과적인 개념화', '추리기법의 도입', '생략과 집중의 효과 극대화', '자유분방한 포맷과 앵글', '캡션의 효과적 활용' 등 다섯 가지 측면에서 노순택 작가의 일련의 작품이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소통 방식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