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의 유혹] 불멸의 섹시 아이콘 먼로 패션

마릴린 먼로가 활약하던 1950년대는 바야흐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토대인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이 확립되던 시기였다.

잭슨 폴락, 앤디 워홀 등 주요한 아티스트들이 등장했고 미국인들은 유럽을 흉내내는 대신 이것이 우리 스타일이며, 그 나름대로 꽤 멋지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자신의 주요 필모그래피를 써 내려간 먼로의 외견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취향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벌어진 빨간 입술, 게슴츠레 뜬 눈, 만져 보라는 듯한 살결…도무지 창피함이라고는 모르는 듯 대놓고 섹스를 말하는 먼로의 모습은 자본주의, 산업주의, 정신보다는 육체, 고매한 늙음보다는 싱싱한 젊음을 숭배하는 미국 문화의 상징이었다.

그녀의 백금발, 그것도 인위적으로 탈색해서 만든 눈부신 금발 머리는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치는 프랑스 인들의 눈에는 세련되지 못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당시 미국은 프랑스보다 잘 나갔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패션에 관심 없는 패션 아이콘?

오드리 헵번, 재클린 케네디, 제인 버킨, 트위기, 클로에 셰비기니 등 당대의 패션 아이콘들과 마릴린 먼로는 어떤 식으로든 구분될 필요가 있다. 그녀들이 무엇을 입었느냐가 중요했다면 먼로는 무엇을 입지 않았느냐가 더 중요했으니까. 게다가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녀가 패션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마릴린 먼로의 전기부터 그녀가 직접 쓴 자서전까지, 그 어디에도 옷에 대한 애정이나 패션 디자이너들과의 친분은 언급되지 않는다. 동시대에 활약했던 오드리 헵번이 지방시와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었고, 매 영화마다 철저하게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해 과민하게 구는 바람에 담당 디자이너가 그만 둔 적도 있으며, 실제로 그녀의 스타일에 모든 여성들이 열광해 새로운 유행을 탄생시킨 것과는 대조적이다.

헵번은 당시 아무도 쓰지 않았던 코 끝까지 감춰지는 큰 버블 선글라스를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유행하며 그녀를 떠올리게 만드는 아이템이 되었다. 패션지는 그녀가 영화에서 보여준 모디쉬 룩을 두고 '서른이 넘으면 긴 치마를 입고 머리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에게 오드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평했다.

이런 식의 패션계와의 교류는 모든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일 아이콘들의 공통된 특징이지만 먼로는 달랐다. 결과적으로 다른 패션 아이콘들이 스타일을 남긴 반면, 먼로는 얼굴과 표정, 그리고 몸을 남겼다. 지금 누군가 '먼로 스타일'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미국적 분위기 또는 섹시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지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어 축적된 구체적인 패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녀가 외모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화장술, 특히 색조를 사용하는 기술이 뛰어났고 치아를 교정했으며 턱에 있는 점도 모조리 뺐다. 당대의 패션을 충실히 반영한 것은 물론이다. 어디 반영뿐이랴, 그녀는 그 시대의 풍만한 아름다움을 누구보다도 잘 표현할 수 있는 적임자였다.

2차 세계대전 중 군인들의 사기를 충전시키기 위한 핀업걸 스타일로 말하자면 그녀는 핀업걸의 실사판이었다.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라인을 부드럽게 드러내는 하이 웨이스트에 로우 레그 타입의 핫 팬츠는 다른 모델들을 머리 속에서 싹 지워버릴 만큼 먼로에게 잘 어울렸다.

전쟁이 끝난 후 크리스챤 디오르가 주도한 여성스러움과 화려함 역시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사치와 꾸미기에 목 말랐던 사람들은 코코 샤넬의 미니멀리즘을 잠시 잊고 디오르의 뉴룩에 열광했다.

'우리는 복싱 선수만큼이나 건강한 체격에다 제복을 입은 여군들로 가득 찬 전쟁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다…. 나는 꽃 같은 여성들을 디자인했다.'

디오르가 비망록에서 회고한 꽃 같은 여성이 바로 먼로였다. 둥근 어깨, 높이 도드라진 가슴, 가느다란 허리, 크게 부풀린 엉덩이. 모자와 장갑, 힐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성장하는 여성스러운 복장을 그녀는 아주 우아하면서도 섹시하게 소화했다. 새틴, 벨벳, 뷔스티에, 드레이퍼리, 리본, 개더 등 온갖 화려한 쿠튀르 장식 속에서 그녀는 그것들보다 더 화려하게 웃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새로운 유행을 만들거나 주도하는 역할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고, 옷은 그녀의 가슴과 다리를 드러내거나 또는 감질나게 감추기 위한 도구였다. 어떤 디자이너의 옷을 입던 간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은 흰 살결과 그에 어울리는 눈부신 백금발, 글래머러스한 몸매일 뿐이다. 트위기가 미니 스커트를 표현하기 위해 존재했다면, 환풍구 앞에서 뒤집어진 먼로의 화이트 홀터넥 드레스는 그녀의 다리를 드러내기 위해 존재했다.

딱 하나, 먼로가 패션을 선택하게 만드는 내면의 원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열등감이었다. 1948년 스튜디오 드라마 코치인 나타샤 리테스 앞에 섰을 때 먼로는 빨간색 울로 만든 웃옷과 가슴이 너무 깊이 파인 굉장히 짧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리테스는 그걸 두고 '화냥년 패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감의 부족이라고 분석했다.

"그녀에게는 인간으로서의 불굴의 용기라는 게 전혀 없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그림자를 무서워하는, 너무 심하게 자신감이 없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그녀가 나에게 물었죠. '난 뭐라고 말해야 돼요?'"

먼로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을 때 자기에게 쏟아질 여자들의 분노를 두려워하고 자신을 섹스 심벌로만 보는 세상의 시선에 몸서리치면서도 때론 그것을 잘 활용하는 면모를 보였다. 파티에서 그녀는 너무 딱 달라 붙어서 앉을 수조차 없는 드레스를 입고 어린애 같은 목소리를 내며 업계의 유력자들에게 추파를 던졌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머리 꼭대기 위에 앉은 강자로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벗으라는 명령에 속절 없이 순종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마릴린은 자신 있었던 섹스 어필을 제외하고는 진짜 자기 자신을 부인했죠. 그녀는 그게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파티 다음날 그녀와 마주친 이웃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패션은 검은색과 흰색의 체크 무늬가 있는 무릎 바로 아래까지 오는 바지에 꼭대기까지 단추가 채워진 흰색의 촌스러운 블라우스, 그리고 낮은 단화였다.

참고서적: <마릴린 먼로, The secret life>
사진 출처: www.handbag.com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