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 생활의 재발견] 무한경쟁, 과로, 일 중독 등 현실 반성과 여가에 대한 성찰 필요

여가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 여유롭고 창의적인 삶. 대부분이 공감하고, 동경하는 삶이지만 실제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대신 무한경쟁과 과로, 일중독 속에서 행복과 개인적인 삶을 희생당한다. 과로사,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도 빈번이 발생한다. 생산성과 창의력 등 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척박한 여가문화에 대한 성찰의 요구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욕구이자 반성이다. 또, 지식기반 사회에서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중독에 걸린 사회

스펙 쌓기와 과도한 취업경쟁의 현실에 내몰린 대학생들에게 낭만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취업이라는 치열한 관문을 통과하고 난 후에도 여유로운 삶이 기다리는 건 아니다.

<일중독 벗어나기>를 쓴 고려대 경영학과 강수돌 교수에 따르면 주5일제가 확산되고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졌지만 실제 노동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22개국의 평균보다 40%나 더 많이 일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노동시간은 OECD국가 중 단연 최고를 기록한다. 이로 인해 직장인의 약 70%가 스트레스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스펙 쌓기에 올인하고, 긴 노동시간과 숨막히는 경쟁을 해야 하는 현실을 사회구조의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다. 외부의 압력보다는 스스로 이러한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을지대 여가디자인학과 유진룡 교수는 "유교문화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노는 것을 죄악시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스스로 일중독에 빠진다는 것이다. 일을 그만둬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지만, 하던 일을 그만두면 큰일난다는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실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또, 주말에도 불안해서 쉬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많다.

일중독은 일이 삶에서 지배적인 비중을 차지하면서 일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도 병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갈수록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높은 성과를 내야 만족할 수 있는 병적인 현상이다. 일을 중단하는 경우엔 견디기 어려운 불안감과 상실감을 느낀다.

이처럼 일중독이 일반화돼 있는 사회에서 제대로 여가를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09' 자료를 보면, 여가활동 시간은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증가했지만 OECD 회원국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여가 및 문화활동 지출비는 우리나라가 4.5%로, OECD국가 중 아이슬란드(9.9%), 영국(8.6%)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고, 우리보다 지출비용이 낮은 국가는 아일랜드(3.6%) 정도였다.

여가가 왜 선택 아닌 필수인가

그런데 성공신화를 꿈꾸며 일에만 매달린 결과는 생각보다 긍정적이지 않다. 2007년 기준으로 OECD국가 가운데 노동시간은 가장 길지만, 생산성은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가 전문가들은 일 중심의 삶이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증가시키고, 자신감 과 행복감을 저하시킨다고 우려한다.

심하면 과로로 인한 사망과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1월, 삼성전자 이 모 부사장이 '업무가 너무 과중해 살기가 힘들었다'는 메모를 남기고 투신자살했다. 이 부사장은 실적 문제와 본인의 인사와 관련해 회사 내부에서 갈등을 겪으면서 평소 우울증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사회의 성과주의, 무한경쟁, 과도한 업무가 초래한 어두운 면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유머가 없는 각박한 사회분위기도 여가의 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유머 코치로 활동 중인 최규상씨는 "돈과 성공을 좇느라 여가를 즐길만한 여유가 없는 사회에서 유머의 가치를 상실하고, 그 결과 남을 배려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무한경쟁, 승자독식주의가 팽배한 사회일수록 타인에 대한 신뢰감도 낮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선진국대열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도 일만 하고, 놀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미학 박사'인 명지대 김정운 교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돈과 성공을 위해 모두가 똑 같은 지점을 향해 경쟁을 벌이다 보니 문화적 다양성이 없다. 그래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따라서 여가활동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을 찾는 것이 사회경쟁력 차원에서도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일 중심 사회는 소비부진으로 이어져 국가의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을지대 유 교수는 "여가활동을 단지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필요한 부수적인 활동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여가는 창의성, 생산성, 행복감, 사회적 유대감 등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