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아트] '금천-삶 이야기' 등 커뮤니아트 프로젝트 활발히 전개

박능생 작가의 '금천-삶 이야기'
한국화를 그리는 박능생 작가는 지난달 금천예술공장 작업실에 특별한 손님들을 초대했다. 지역에 거주하는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와 자녀들이었다.

작가는 그들에게 붓을 잡고 색을 칠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내 고향 집', '내가 꿈꾸는 집'이라는 주제로 타일에 그림을 그리게 했다. 어머니들은 자신이 떠나온 집을 그렸고, 아이들은 살고 싶은 집을 그렸다.

다문화 가정의 상처와 꿈을 엿볼 수 있는 이 타일그림들은 7월 중순 금천예술공장의 벽에 '금천-삶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전시된다.

이처럼 작가가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만드는 예술 작업을 '커뮤니티아트'라고 한다. 작가와 참여자의 관계가 민주적이며 과정이 강조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들이 예술의 정의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까지 바꾸고 있다.

커뮤니티아트, 최첨단의 상호작용 예술

정은혜 작가의 '뜨개질 프로젝트'
"커뮤니티아트야말로 최첨단의 예술이 아닐까요?"

정은혜 커뮤니티아티스트는 커뮤니티아트의 의의를 상호작용에서 찾는다. 커뮤니티아트는 현대의, 거의 모든 사회문화 현상의 화두인 관계성과 관련한 예술 장르다.

작가의 작업은 상호작용의 출발점 혹은 매개이며, 작가와 관객의 수직적 관계는 작가와 참여자의 수평적 관계로 바뀐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거나 문화 소외 계층이나 주민이 참여하는 많은 공공 프로젝트들이 커뮤니티아트를 표방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예술이 일상과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뜻일 뿐 아니라 예술의 형태와 성격이 일상과 닮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선영 미술평론가의 지적대로 커뮤니티아트는 "지역, 주민 맞춤형" 예술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닌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임을 설파해온 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1998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지역의 공부방, 복지관, 도서관 등의 일상적 공간에서 사람들이 문화적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도록 돕는 프로젝트들을 해 왔다. 이 작업들에서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예술 관련 전문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만들어낸 작품도, 삶의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타난 지역적 특성도 적절한 이름을 붙이면 꽃이 되었다.

유알아트의 매물도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매물도 사람처럼!'
유알아트가 최근 진행한 경남 통영 매물도에서의 마을 디자인 '매물도 사람처럼!'이 좋은 사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가고 싶은 섬' 사업의 일환인 이 작업은 매물도의 삶의 풍경을 자연스럽고 아기한 설치 미술로 돋보이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섬이다 보니 물을 저장하는 물탱크가 많다는 점에 착안, 물탱크마다 물에 기대어 사는 생물의 모습을 만들어 얹기도 했다.

정은혜 작가는 만들기와 명상, 요가와 대화를 총동원한 워크숍을 진행해 오고 있다. 작가의 작업에서 치유와 창작은 떼려야 뗄 수 없고 일상을 북돋는 활동들이다. 참여자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존중감이다. 정은혜 작가의 커뮤니티아트는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창의적이고 즐겁게 살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문화민주주의의 정치적 올바름

정치적 올바름은 커뮤니티아트가 각광받는 또 하나의 이유다. 대중이 문화예술을 스스로 만들고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강조하는 문화민주주의를 구현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정책적으로 커뮤니티아트를 지원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작년과 재작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을 중심으로 '북아현동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추계예술대학교 미술학부 정원철 교수는 "커뮤니티아트는 다수에 의해 억압되거나 소외된 소수를 배려하는 대항적 예술"이라고 말했다. 다수를 대상으로 효율을 내세워 만들어지는 정치∙사회∙문화 제도의 '구석'을 돌보는 행위라는 뜻이다.

경기문화재단이 추진하는 경기 북부 지역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
지난 2007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펴낸 '커뮤니티아트 진흥 방안 연구' 보고서는 대중의 예술 창작과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아트는 개개인의 창의력과 감수성, 비판적 사고능력을 길러주는 동시에 소외 계층의 심리와 환경 변화를 이끌어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 구성원의 창의력은 창조 산업의 동력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양극화가 진행되고 이에 따른 비용이 증가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커뮤니티아트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창작공간을 비롯해 도시 재생 사업과 연관되어 만들어진 국공립 레지던스들에서는 이런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곤 한다. 금천예술공장은 올해 를 비롯해 이수영, 리금홍 작가의 '가리봉동네 한바퀴', 장석준 작가의 '사마리스의 벽'을 커뮤니티아트 작업으로 선정, 지원했다.

'가리봉동네 한바퀴'는 조선족이 많이 사는 가리봉동의 풍물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며, '사마리스의 벽'은 금천구 일대 풍경을 다양한 시선으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지난 8일에는 금천 지역 특성에 부합하는 커뮤니티아트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포럼을 열었다.

금천구 주민이 직접 금천구의 현황과 주요 이슈를 소개했고, 입주작가의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 진행 경험과 전문가의 제언이 이어졌다. 오는 22일에는 국내 커뮤니티아트 성공 사례를 분석하는 2차 포럼이 열린다. 11월에는 같은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이 예정되어 있다.

경기도미술관의 <우리시대 다문화> 전 중 '아웃도어 프로젝트'
공공기관과 자생적 지역 문화의 상생

경기문화재단과 경기도미술관 역시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끌어 안는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를 지원해 왔다. 서울의 주변이라는 특성은 경기도에 여러 역사적 사회적 현안들을 남겼다. 경기도의 문화예술은 자연스럽게 지역에서 상징적으로 불거진 미군 기지, 이주, 개발과 환경 문제 등을 포괄해 왔다.

지난달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린 <우리시대 다문화> 전이 한 예다. 경기도미술관이 위치한 안산은 '국경 없는 마을'이 조성되어 있을 정도로 이주민들이 많은 곳. 이런 특성을 성찰하고, 이주민과 공존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이 전시의 의의였다. 미술관에 전시를 마련할 뿐 아니라 국경 없는 마을에 컨테이너 전시장을 설치해 주민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들을 접목한 '아웃도어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했다.

이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5월까지 경기도미술관의 레지던시인 경기창작센터와 프랑스 현대미술관 팔레드도쿄의 레지던시 팔레드도쿄의 작가와 큐레이터들이 교류한 결과물이었다. 이들은 안산과 파리를 오가며 안산의 다문화적 환경의 현황과 사회적 의미를 연구했다.

경기문화재단은 지난해 말 경기 북부 6개 시군에 적합한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를 개발, 발표하기도 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지역 각각의 상황과 현안이 무엇이고, 문화예술에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군 기지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 동두천시는 주민 스스로 시의 역사를 새로 쓰는 '동두천 현대사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포천시는 댐 건설로 수몰되는 교동마을의 70년 된 가옥인 '도롱이집'을 해체∙이주시키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문화적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남양주시는 지역에 거주하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주민과 함께 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마을작가 탐방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들 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집행 여부에 따라 내년에 추진될 예정이다.

이들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는 공공기관과 자생적으로 활동하는 지역 기반 커뮤니티아티스트들 간 상생이 중요하다. 정원철 교수가 강조하듯 "구석진 곳에 관심을 갖고 배려하기 위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대형 시스템이 직접 운영하기보다 지역에 뿌리 내리고 밑으로부터 이슈와 지향을 체득해 온 작가와 작업을 지원하는 것이 취지에 맞을 수 있다. 경기도미술관의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들은 안산에 위치한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와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작업해 온 믹스라이스 등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공동성에 대한 질문

커뮤니티아트의 효용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진행할 때 제기되는 것 중 하나가 전시성 행사로 그칠지 모른다는 우려다. 커뮤니티아트의 핵심인 참여자들 간 상호작용은 측정하기 어렵다. 그 경험이 피상적인 즐거움으로 그칠지, 각자의 삶의 태도와 감각을 바꾸는 데까지 이어질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많은 전문가들이 성과를 요구하는 문화예술 지원 정책이 커뮤니티아트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유알아트의 김영현 대표는 프로젝트를 통해 참여자들이 각자 나름의 문화적 역할을 만드는 것을 목격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가족을 대상으로 한지등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작업과 어른들이 해야 하는 작업이 섞여 있었다. 예를 들면 나무 톱질하고 못 박는 것은 주말인데 쉬지도 못하고 끌려 나와 잔뜩 부어 있는 아버지들의 몫이었다.(웃음) 막상 톱질이 시작되니 아버지들은 아버지들대로 몸을 새롭게 움직이는 데 즐거움을 느꼈고,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보더라. 평소 맡지 않는 새로운 역할들을 통해 새롭게 관계 맺는 것이다. 시골의 조손가정을 대상으로 한지공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할머니들이 어려서 공책을 끈으로 엮어본 경험을 살려 실력발휘를 하자 손주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봤다. 예전에는 할머니를 창피해하던 아이들도 친구들에게 자기 할머니라고 자랑하더라. 할머니들도 자존감을 회복하는 눈치였다. 이렇듯 문화예술 활동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게 만든다."

참여자들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들에게도 자신을 돌아보고 예술관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된다. 박능생 작가는 '금천-삶 이야기' 프로젝트에 대해 "예술을 향유할 모두의 권리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는 금천예술공장의 벽에 벽화로 전시된다. 참여한 지역 주민들 모두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지난 8일 금천예술공장에서 열린 포럼에서 이수영 작가는 '가리봉동네 한바퀴'를 진행한 경험에 대해 "커뮤니티아트란 커뮤니티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예술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아트라는 말에 전제되어 있는 커뮤니티, 즉 '공동성' 은 쉽게 국가, 민족, 국민 등으로 번역되지만 실제 특정 지역에 형성되어 있는 삶의 풍경을 세심하게 들여다 보면, 그런 상식은 무너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수영, 리금홍 작가가 돌아본 가리봉동은 이주의 역사가 층층이 쌓인 곳이다. 조선족들의 커뮤니티에서 한국어는 중국어와 뒤섞여 있고, 음식을 비롯한 생활 문화는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낯선 질서를 갖추고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국가와 민족, 국민의 뜻은 옆 동네에 사는 누구와도, 월드컵 한국전 때 시청 광장을 메운 누구와도, 김연아 선수 혹은 천안함 사태에 흥분하는 누구와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엄연한 한국사회의 한 면이다. 이수영 작가는 "학습된 추상적 공동성에 의문을 던지고 새로운 공동성, 보다 민주적이고 예술적이고 즐겁고 구체적인 공동성을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커뮤니티아트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실질적 방법으로서의 예술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를 둘러싼 사회 주체들 간 관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정치성을 견제하고 작가와 참여자 간 지속적이고 민주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구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선영 미술평론가는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가 전시성 행사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이 주도하기보다 지역에 토대를 둔 시민단체와 긴밀히 결합하는 식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원철 교수 역시 "앞으로는 작가가 아닌 지역 커뮤니티 중심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아티스트의 작업은 네트워크 형성이라는 것이다.

줄리어드 음대 예술교육학 교수이자 연극배우인 에릭 부스는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술의 어원을 살펴보면 이 말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임을 알 수 있다. '짜 맞추다'를 뜻하는 동사로 결과가 아닌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정의는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 커뮤니티아트에 잘 들어맞는다.

삶과 사회 속에서 예술의 과정과 맥락을 재조명하고 새롭게 위치 지으려는 이 최신의 시도들은 결국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확실하고 실질적인 방법"을 찾는 것으로 귀결된다. 커뮤니티아트는 예술은 아름다움을 만들고 겪으며 살 수 있는 모두의 권리를 일깨운다.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예술을 "섹스처럼 전문가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