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관한 새로운 보고서]자살공화국 실태 조사, 사례분석·의식개선 책 출간 등 다각적 해결책 찾기

소지섭이 박용하의 운구행렬 앞에 영정사진을 들고 장례식장을 나오고 있다.
이은주, 정다빈, 안재환, 최진실, 최진영, 그리고 최근 박용하까지 스타들이 줄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몇 년 사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바위에서 몸을 던져 대한민국은 큰 충격과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이젠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소식이 뜸하던 연예인이나 유명인사의 이름이 올라오면 덜컥 겁부터 먹게 된다.

OECD 회원국 중 최고의 자살률로 자살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쓴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사태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국내의 자살률이 급증한 시기는 경제위기로 힘겨웠던 1997년 IMF 관리 체제 이후다. 당시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자살 원인에 상당 부분을 차지했지만 이제는 환경적, 심리적, 유전적 요인이 고루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통계청에서 시행하는 사망원인 통계조사에 따르면, 전국 16개 시도에서 인구 십만 명당 자살률은 2005년 26.1명에서 2006년 23명으로 다소 떨어지더니, 2007년부터 26.6명, 2008년 27.7명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10년 전보다는 2배 이상 늘었다.

자살문제의 심각성이 나날이 더해가자 자살에 대한 사회적 금기의 봉인은 어느 정도 풀렸지만 지금껏 변변한 논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미디어에서 자살은 선정적인 사건의 하나로 다뤄졌고 학계에서는 구체적인 자료를 근거로 하기보다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논의에 머물러 왔다. 자살을 골칫덩이 '사회문제'의 범주에만 가둬두었던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피상적으로 머물던 자살에 대한 담론이 최근 좀 더 심도 있게 이루어지고 있다. '죽음을 향한 급행열차, 자살을 막을 방법은 없는가, 얼마나 심각한가'에 대한 각계의 심각한 인식공유와 해결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노력이다.

지난 8일,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학병원 등 전국 14개 병원이 18세 이상의 성인 남녀 65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는 사망 후에 드러나는 자살의 위험성이 빙산의 일각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사 결과, 평생 한 번이라도 자살을 고민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1000명에 육박했고 실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100명 중 3명에 달했다. 충동적인 자살 시도보다는 계획적인 자살이 약 2배 가까이 높았다. 여성이 남성보다 자살 계획을 세우는 비율이 2배가량 많았으며,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비율도 여성이 남성보다 50% 정도 많았다.

이는 우울증이 남성보다 여성이 2배 정도 많이 발생하는 것과 비례한다. 자살을 시도한 이들은 자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지 1∼2년 뒤에 자살을 실행에 옮겼으며, 그 이유는 가족 간의 갈등, 경제적 문제, 별거 및 이혼, 질병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죽음으로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을 고발한 아이의 유서
우리나라의 자살 실태를 대규모로 분석한 첫 사례인 이 조사결과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이 상당한 시간을 두고 자살을 고민한다는 것과 그 원인이 상당 부분 관계의 갈등과 단절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시간을 두고 자살을 준비하는 이들에게선 그 징후가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다만 자살을 직접 언급하는 것 외에 공격적이거나 무기력한 행동 등을 통해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 가족과 친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데 심각성이 더해진다.

자살은 막을 수 있는가

국내 생사학 분야의 개척자인 한림대 철학과의 오 진탁 교수(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소장)는 "자살률 증가도 문제지만 자살충돌자, 자살예비자가 양산된다는 것이 더 심각하다"고 강조하며 꾸준히 자살 예방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자살자들이 1~2년 전부터 자살 징후를 보인다는 데 주목한 그는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군인,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 교육을 통해 충분히 자살 시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분석한 자살 원인은 개인적 동기, 경제난 등의 사회적 문제, 자살과 죽음에 대한 오해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특히 세 번째 원인에 의한 자살 유형이 교육을 통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세 번째 원인은 '자살을 통해 생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기대감'에서 비롯된다.

노 전 대통령 유서
실제로 두 달 전에 출판된 그의 저서 <삶, 죽음에게 길을 묻다>에서 교육을 통한 인식개선의 사례가 다수 등장한다. 많은 학생과 일반인들이 오 교수의 강의를 통해 자살 시도를 그만둔 것. 이들 사례는 '죽음이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음'을 인식시킬 필요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인 박형민 씨는 자살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1300여 건의 자살 사례와 자살자들이 남긴 405건의 유서를 분석했다. 자살자들 중 약 3분의 1 정도가 남기는 마지막 편지인 유서를 통해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까지 소통하고자 했던 이들의 내면을 추적한다.

이들에 대한 분석은 최근 그의 저서 <자살, 차악의 선택>을 통해 잘 나타난다. 그는 그동안 자살을 정신질환과 비정상적인 행위로 인식하며 자살자를 '이해 불가'의 존재로 몰아세우던 것에서 벗어나 그들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해법의 첫걸음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죽을 용기로 살겠다"는 쉬운 한 마디가 자살자들과의 소통을 영영 막아버리는 것이며, 그들을 영원히 이해받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유서를 남긴 이들은 주로 관계적 욕구가 강한 저연령대에 많이 나타나며 직업군으로는 사무/영업, 판매/서비스직 등 상대적으로 의사소통의 훈련과 기회가 많은 집단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자살자 내면의 문제보다는 그 원인이 타인과 연관되어 있을 경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또한 이들의 죽음은 충동이 아닌, 오랜 성찰의 과정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살자들이 심각한 사회 부적응자도, 한 번의 실패로 삶을 내던지는 무책임한 이들도 아니었음을 분석을 통해 밝힌 박형민 씨는 이 결과가 결코 그들에 대한 옹호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먼저 간 이들과 같은 상황에서 죽음을 고민하는, 현재 살아 있는 자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정부의 자살 예방 정책이 단지 예방의 차원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그들에게 '죽음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박형민 씨가 오랜 탐구를 통해 내놓은 결론이다.

서울시 자살예방 센터
슬퍼도 슬퍼할 수 없는 자살자 유족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듯, 자살은 죽음으로 모든 상황이 종료되지 않는다. 그동안 수면 아래 가려져 보이지 않던 거대한 빙산 중 일부분은 자살자 유족(가족, 친척, 친구, 동료 등)들의 몫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보통 다섯 단계의 애도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처음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인하는 상태이다가,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우울증과 자기연민->무력함에서 오는 분노를 겪은 후엔 죽음을 현실로 인정하는 단계에 이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살자 유족은 극심한 슬픔에도 스스로 제대로 된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 가족의 자살은 감히 입 밖으로 낼 수조차 없는 금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서울시자살예방센터에서는 자살의 또 다른 피해자인 자살자 유족을 이해하고 조명하는 포럼을 개최했다. 그들은 적게는 자살 사망자 수의 3배에서 많게는 20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자살 가능 고위험군에 속함에도 슬픔을 속으로만 삭히는 그들을 보듬어야 한다는 인식이 서서히 자라나고 있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는 2008년부터 가족이나 친구의 자살로 상처받은 유족을 대상으로 '자작나무(자살유족의 작은 희망 나눔으로 무르익다)'를 운영 중이다. 이 모임은 유족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조 모임을 지원하고 전문가가 참여해 '자살자의 심리',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대한 이해 및 대처방안', '유족의 애도 과정'등을 교육한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번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이영문 아주대학교 의료원 정신건강연구소장은 "자살한 사람의 유족은 일반 유족과는 다른 방식으로 슬퍼하며, 우울증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들은 "사회적 낙인, 수치심, 당혹감이 더해지고, 자살 동기를 추측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들 중 어린 자녀를 잃은 부모는 도덕적·사회적인 곤경에까지 빠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살 예방뿐 아니라 극심한 슬픔에도 슬퍼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자살자 유족에 대한 관심과 이해와 도움 역시 시급한 지금이다.

참고서적
<자살, 차악의 선택> - 박형민 저
<삶, 죽음에게 길을 묻다> - 오진탁 저
<그들의 자살, 그리고 우리> - 조성돈, 정재영 공저
<자살 전서> - 마르텡 모네스티에 저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