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테라피] 문학·사학·철학 등 이용한 치유… <2010 인문치료 국제학술대회> 열려

인문치료 국제학술대회
"은유, 이미지, 소리, 리듬, 활동적인 동사들, 줄 바꿈, 패러독스, 침묵, 운율 등 시적 요소들은 활기찬 삶을 이끌어주는 치료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단상 위에서 열정적으로 발표를 하고 있는 연사가 치유제로서의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두 발로 서 있지만 그의 다리 한 쪽은 진짜가 아니다. 어린 시절 병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그 후 찾아온 혼란을 이겨내기 위해 그가 찾은 것은 시였다. 자신의 영혼의 치료제였던 시 덕분에 한쪽 다리가 없는 소년은 쓰러지지 않고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될 수 있었다.

그 자신이 시 치료의 성공적 사례가 된 주인공은 미국 문학치료학회(NAPT) 회장을 역임한 존 폭스 교수다. 그의 병은 마음의 병이었기에 의학의 힘으로도 고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정신건강을 회복하고 삶의 행복을 되찾은 데는 시의 힘, 인문학의 힘이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이른바 인문학을 통한 치유였던 것이다.

군부대에서의 인문치료
인문치료는 어떻게 태어났나

지난 9일과 10일, 강원대 60주년 기념관에는 폭스 교수를 비롯한 7개국 30여 명의 학자들이 모였다.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인문한국(HK) 사업단(단장 이대범 국어국문학과 교수)이 주최하는 <2010 >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삶, 행복, 그리고 인문치료(Life, Happiness and Humanities Therapy)'라는 주제로 열린 이 학술대회는 세계 최초로 인문치료학을 창설한 강원대 인문한국사업단의 노력의 결과이다. 2007년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 사업에 선정된 사업단은 인문학 여러 분야의 교수들이 모여 인문학 치료 패러다임을 연구해 왔다.

'인문치료'란 건강한 마음과 행복한 삶을 위해 인문학 각 분야와 연계 학문들의 치료적 내용과 기능을 학제적으로 통합해 사람들의 정신적ㆍ정서적ㆍ신체적 문제들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이론과 실천이다. '인문'에는 문학ㆍ언어학ㆍ사학ㆍ철학ㆍ종교학ㆍ미학 등이 포함되고, 인문학과 한 뿌리였던 예술, 심리학, 의료인문학 등도 관련된다.

특히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의료인문학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고, 의료계 외의 여러 곳에서도 인문학의 치유적 기능을 일찍 간파해 다양하게 차용하고 있다. 문학의 치유적 기능은 상담학, 사회복지학, 아동학, 교육학 등에서 독서치료, 이야기치료, 저널치료(쓰기 치료), 연극치료 등에 활용되고 있다.

인문치료의 한 분야인 연극치료 /사진=임재범 기자
철학의 치유적 기능도 생철학ㆍ현상학ㆍ실존주의 철학의 성과를 활용해 게슈탈트 심리치료나 로고테라피(Logotherapy) 등이 활성화되고 있다. 지금도 사이코드라마는 인문학적 기법과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정신 치유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자 기존의 의학치료와 심리치료 외에도 음악치료, 미술치료, 놀이치료 등 테라피로 통칭되는 많은 치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인문학 내에서도 어문학 배경의 문학치료와 독서치료, 언어치료가 활성화되었다. 철학상담 혹은 철학치료는 1980년대부터 독일에서 시작되어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역사학계에서도 정신분석학적 역사학 등을 토대로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움직임들이 논의되고 있다.

창의적 글쓰기로 인문학의 가치 일깨워

현재 인문치료에는 인문학에서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문학과 철학이 치료학문으로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정신분석이나 동작치료와 연계한 연구가 눈에 띄었던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문학치료와 철학치료 연구 논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자로 나선 대만 보인대의 버나드 리 총장은 '인문 의약으로서의 철학상담'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철학상담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설파했다. 리 총장은 "인간 치료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철학상담에 근거해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철학적 카운슬러가 철학적 언어와 논리에 있어서 좋은 능력을 갖고 있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 사고방식이나 삶을 변화시키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크리에이티브 라이팅 센터의 셰리 라이터는 시 치료에 대해서 "반드시 시여야만 시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야기, 만화, 인용구도 시 치료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영화도 대본을 필요로 한다. 시 치료에 임하는 최선의 방법은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와 시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인문치료의 여러 방법론들은 국내에서 아직 시도된 사례가 적은 만큼, 흥미로운 해석들도 돋보였다.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의 유건상 HK연구교수는 영국의 시인 예이츠가 자신의 노쇠를 어떻게 수용하고 극복했는지의 과정을 인문치료적 관점에서 살펴봤다. 유 교수는 예이츠의 창의적 글쓰기에 주목하며 그것이 시인을 어떻게 치유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분야별로 치료 과정은 다르지만 인문치료의 공통점은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혼란을 분명히 인식하고 머릿속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강원대 인문한국사업단은 그동안 군부대, 교도소, 새터민, 인문학교 등에서 인문치료를 통해 참가자들의 정신건강을 유지시키며 인문학의 실용적인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