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르타주] 안재성 소설가 전 한진 노조 위원장 의문사 관련 유족 인터뷰 따라가 보니…

소설가 안재성 씨가 고 박창수 씨의 동생 황인선 씨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제대로 글 쓸 르포작가가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막상 르포작가로 활동하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취재해야 할지 몰라 글을 못 쓰는 이가 많다. 르포는 어떻게 취재하고 쓰는 걸까?

안재성 소설가의 취재 현장에 동행하기로 했다. 안재성 작가는 <타오르는 광산>, <청계 내청춘> 등 르포와 <파업>, <황금이삭>, <경성트로이카> 등 장편소설, <이현상 평전>, <박헌영 평전> 등을 썼다.

최근 그는 1991년 전 한진중공업노조 위원장 박창수 씨의 의문사를 배경으로 한 르포물을 쓰고 있다. 지난 달 부산에서 직장 동료 등 지인 24인을 인터뷰했고, 지난주 유족들을 만나 1차 취재를 마무리했다.

나는 많이 듣는 편이에요

화요일 오후 3시. 분당 서현역에서 안 작가를 기다렸다. 이날 작가는 용인에서 박창수 씨의 동생 황인문, 황인선 씨를 만나기로 했다. 점심을 못 먹은 기자와 작가는 용인으로 가는 차 안에서 김밥으로 대충 늦은 점심을 때웠다.

소설가 안재성 씨가 고 박창수 씨의 동생 황인문, 황인선 씨를 인터뷰하고 있다.
이번 취재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한 두 달 쯤 됐어요. 처음에 한진중공업노조 측에 자료를 달라니까 유인물 몇 장 주더라고요. 부산에서 함께 일한 사람들부터 만났는데, 각자 만나서 얘기하는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갖고 있는지 물어보면서 자료를 수집했죠. 본인의 행적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취재와 주변인물 인터뷰를 동시에 진행해요. 지금은 자료가 1미터 이상 쌓였어요."

르포를 처음 써보는 분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이 인터뷰하는 부분이거든요. 기자나 유명인이 아니고서 인터뷰 잡기 힘들죠. 사안에 따라서 말을 안 하려는 분들도 많고요. 이럴 때 어떻게 하세요?

"여건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존중해요. 꼭 설득해야 된다면 하겠지만, 꼭 그 사람이 아니라도 취재를 하다 보면 주변에서 다 나오는데요 뭐."

인터뷰할 때 원칙이 있나요?

15일 목요일 오후 평택에서 황인갑 씨를 기다리는 안 작가.
"나는 많이 질문하기보다는 많이 듣는 편이에요. 다들 할 말들이 있는데 질문 계속하거나 내 생각을 말하면 그분들 말이 막힐 때가 있어요. 취재원들이 기억하는 것까지만 듣죠."

4시. 황인선 씨의 집에 도착했다. 거실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었다. 오빠 인문 씨가 회사에서 돌아와 인사를 나눴다.

"저희는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는데…."(황인문)

"박창수 씨와는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셨죠? 어떤 형이었나요?"(안재성)

"부모님께서 맞벌이로 낮에 일 나가시니까 저희한테는 오빠이고, 엄마이고 아버지 같은 존재였죠."(황인선)

안 작가가 황인갑 씨를 만나 근처 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이후 박창수 씨에 관한 히스토리가 저녁 7시 40분까지 계속됐다. 어린 시절 기억에서부터 수학여행에서 만난 오빠 사연, 사망 후 일련의 사건까지 여러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안재성 작가는 녹음기를 켜둔 채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가끔 부산에서 박창수 씨와 일했던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일은 어머니 뵈러 성남으로 간다고 말씀 드렸는데, 몇 시쯤 찾아 뵈면 될까요?"

"오후 2시쯤이 좋겠네요. 어머니께는 제가 연락드리죠."

문학과 저널 사이

기자는 다른 취재로 수요일 성남 인터뷰에 동행하지 못했다. 대신 목요일 고 박창수의 또 다른 동생, 황인갑 씨를 취재하는 현장에 동행했다. 오후3시 4호선 안산역에서 작가를 만나 황 씨가 일하는 평택 공장으로 향했다.

인터뷰하는 안 작가.
"여기서 아이스크림 생산 관리를 담당해요."(황인갑)

"저도 예전에 빵 공장에서 일한 적 있는데, 아직도 2교대로 근무하나요?"(안재성)

황 씨는 유년 시절 형의 신혼집에서 공장을 다녔던 이야기와 형 사망 전 한 사찰을 방문했을 때 일 등을 말했고, 인터뷰는 7시가 가까워서 끝났다.

"20년 전 일이라 형에 대해서 갑자기 기억하려니까 많이 떠오르지 않네요. 제가 그동안 그 생각만 하면서 생활할 수는 없었으니까요."(황인갑)

"그럼요. 박창수 씨 부인은 인터뷰를 안 한다고 하셨어요. 아마 그때를 자꾸 떠올리는 게 곤욕스러운 가봅니다. 오늘로 1차 취재는 끝났습니다. 초고 쓰거나 추가 취재 때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안재성)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수요일 취재 이야기와 앞으로 집필 방법에 대해 물었다. 르포 한 편을 쓰는 데 만나는 사람은 수십에서 수백 명에 달한다. 이번 르포를 취재하며 안 작가는 28명을 인터뷰했고, 추가로 3명을 더 만나볼 계획이다. 지난 <박헌영 평전>을 집필하며 만난 취재원은 80여 명이었다.

어제 만난 어머니는 어떠신가요?

"한 4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요. 박창수 씨가 5월 6일 사망해서 7월 1일 장례를 치렀거든요. 60일 장례기간 이야기에서 책을 시작해서 성장배경, 이후 사건들을 쓰면 어떨까, 어제 취재하면서 그런 구상을 했죠."

이렇게 1차 취재하고 나면 그 다음 작업은 어떻게 되나요?

"연도별로 굵직한 흐름이나 사건을 정리해두고 자료 맨 위에서부터 한 페이지씩 열면서 인상 깊은 이야기를 추가시키는 거죠. 이걸 '일보'라고 하는데, 전체 흐름을 만들면서 내 생각이나 가공할 만한 표현을 넣는 거죠. 그거 시간 많이 걸려요. 원고지 만 페이지도 넘죠. 일보 정리하고 나면 초고를 쓰는데 이때는 문학적 형식이나 기법도 넣는 거죠. <박헌영 평전> 때는 일보랑 초고 쓰는 데 9달 걸렸어요."

르포가 '재현'이란 면에서 문학장르이지만, 또 사실을 기록한다는 면에서는 저널에 가깝거든요. 이 균형을 어떻게 맞추세요?

"일단 사실은 그대로 다 써야 하죠. 그건 왜곡시키면 안 되죠. 그리고 문장 표현이나 서술에서 이미 작가의 가치판단이 들어가요. 헤밍웨이 작품의 문체가 독특하다고 하는데, 사실 저널에서 많이 쓰는 방식이잖아요. '형용사 부사 빼고 주어 동사로만 써라.' 쉽고 간결하게 쓰는 게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르포 집필, 앞으로 계획 알려주세요.

"사실 이렇게 사람 만나고 자료 조사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아주 쉬운 일이라고요. 문제는 결론을 내리는 부분인데…. 박창수 씨가 자살인지, 정부 기관 타살인지는 2001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때 결국 '의문사'로 남았어요. 자살과 타살 주장하는 쪽 모두 논리가 있었는데 지금 취재를 해보면서도 그래요. 그 결론을 어떻게 마무리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