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잉, 무한질주] <배틀 비보이>, <리턴>, <힙합 춤의 혁명!> 등 다양한 시도

'힙합 춤의 혁명!" 중 최종환 안무의 'WALK OR RUN' (사진제공=류재관)
7월 말, 부산에서 이색적인 춤 대결이 펼쳐졌다. 각 대륙을 대표하는 힙합 댄서들이 다른 장르의 춤으로 배틀을 벌인 것이다. 원래 배틀은 비보잉 대 비보잉, 팝핀 대 팝핀 등 같은 성격의 춤으로 승부를 가린다.

올해로 세 번째 해를 맞은 부산국제힙합페스티벌은 이번 대회부터 힙합을 구성하는 비보잉, 락킹, 하우스, 팝핑을 나누지 않고 '이종결합'시켜 3대 3 프리스타일 배틀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비보이와 하우스 댄서가 대결을 벌이고, 팝핀과 락킹의 경합도 가능해졌다.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진정의 춤의 재미를 알게 하려는 주최 측의 의도였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 비보이들의 위상이 높아지며 이처럼 국내에서도 해외 비보이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지난달 초 서울 올림픽공원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R-16 코리아 2010 페스티벌이 열렸다. 이 행사는 국적과 언어, 인종을 초월하는 도시 예술 축제이자 세계 비보이 대회다. 비록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예산은 반 토막이 났지만, 지속적인 대회 유치와 많은 해외 비보이들의 참여로 올해도 어김없이 비보이 강국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여름을 맞아서 비보이들이 자주 나타나는 곳은 해변이다. 비보이 페스티벌은 목포해양축제와 같은 지자체 행사의 한 프로그램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보령머드축제에서는 메인공연으로 <머드 비보이>라는 공연도 등장했다. 수영복 차림에 온몸에 머드를 바른 비보이들은 극장보다 더 자유로움 움직임으로 관객들을 열광시킨다.

사실 <머드 비보이>는 <배틀 비보이>라는 작품의 여름 버전이다. <배틀 비보이>는 비보잉 연습생인 남자와 한국무용을 하는 여자의 사랑을 큰 틀로 하며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옴니버스식으로 다룬다. <비사발>이 비보잉과 발레의 만남이었다면 <배틀 비보이>는 비보잉과 한국무용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비보이쇼 '배틀비보이'
원조 <비사발>도 여전히 공연 중이다. 한때 홍대를 지배했던 <비사발>은 2009년 이화여대 100주년 기념관을 거쳐 이제 잠실의 롯데월드 예술극장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차렸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다양한 비보이 퍼포먼스들이 있지만 <비사발>은 아직도 공연을 못 본 사람들에게 반드시 한 번은 봐야 하는 추천작으로 꼽히고 있다.

한편 <비사발> 초기 멤버였던 고릴라 크루의 한상민 팀장은 "대형 뮤지컬의 경우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를 해야 관객에게 계속해서 사랑받으며 살아남을 수 있는데, 기존의 비보이 퍼포먼스들은 한 작품을 가지고 너무 오랫동안 반복 공연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자평한다.

그는 최근의 비보이 문화의 침체도 그동안의 거품이 빠진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하나의 히트작에 너도 나도 달려들어 그 매력이 금세 고갈됐다는 것. 그래서 그와 고릴라 크루는 새로운 것과 변화를 원하는 관객들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새로운 작품을 기획해 돌아왔다. 제목도 이런 생각을 담아 <리턴(RETURN)>이라고 정했다.

한 팀장은 그렇다고 해서 <리턴>을 <비사발>의 후속작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리턴'한 것은 '고릴라 크루'이기 때문이다. <비사발>에서 보여준 남녀, 모던과 클래식, 부자와 빈자 등의 대비 대신 우리 스트리트 댄서들의 삶과 일상을 담는 데 주력했다."

<리턴>의 특징은 고릴라 크루 고유의 화려한 퍼포먼스다. 빛, 소리, 음악이 움직임과 융합된 역동적인 퍼포먼스에 드라마적 요소가 삽입되면서 가장 많은 무대 경험을 쌓은 비보이들의 연기도 새로운 재미를 준다.

'힙합 춤의 혁명!'중 이우재 안무의 '유희'
한때 고릴라 크루와 함께했던 1세대 비보이 이우재는 비보이 붐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는 무용과 박사 과정에서 학업을 계속하며 힙합 춤과 예술의 접목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동안 '힙합의 진화'라는 제목 아래 무용계에서 힙합 춤을 끌어들이는 시도는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중간 영역에서 비보잉을 다룬 예는 매우 드물었다.

지난 5월 <힙합 춤의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세 작품들은 모두 비보이 출신들이 안무를 맡았다. <에피데믹>을 안무한 박진성과 <유희>를 안무한 이우재, 그리고 의 최종환은 총연출을 맡은 이우재의 의도대로 힙합 춤의 예술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인상적인 작품들을 완성해냈다. 또 이날의 이벤트로 열린 현대무용가 류장현과 팝핀 현준의 배틀은 현대춤이라는 큰 틀 안에서 예술과 공존하는 힙합의 현재를 생각하게 했다.

초창기 비보이 공연들의 리뷰에는 공통적인 반응이 있다. 비보잉 기술은 멋있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사발>로 대표되는 몇 개의 선택지가 가진 한계이기도 했다. 이제 다양한 콘셉트로 시도되고 있는 비보이 공연은 관객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가히 '포스트 <비사발>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비보이 퍼포먼스 '리턴'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