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 셰프 마스터즈>, <철인 요리왕> 등 맛 대결 부추겨

애드워드 권의 'YES! CHEF'
요즘 셰프들은 '전투 중'이다. 같은 업종의 다른 셰프들과, 심지어는 일반인들과도 누구 음식이 맛있냐며 싸운다. 서로 자신이 만든 음식이 더 훌륭하다고 주장하는 데는 경력과 나이를 불문하고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물론 TV 푸드 프로그램 안에서다.

TV 속 음식 프로그램들은 음식을 놓고 자웅을 겨루는 대결 구도를 기본 포맷으로 한다. 이름하여 '셰프 배틀(Chef battle)'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송사들은 셰프들을 카메라 앞에 모셔다 놓고 싸움을 종용한다.

케이블 위성 리얼 엔터테인먼트채널 QTV에서 매주 월화 요일에 방영하는 최고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탑 셰프 마스터즈'를 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들이 모여 요리의 왕중왕을 펼치는 푸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진행은 배틀 방식. 출연진 24명의 스타 셰프들은 회당 4명씩 모두 6회에 걸쳐 즉석대결과 결승진출이라는 두 번의 요리 대결을 갖는다. 각 예선전을 통과한 6명의 결승 진출자들은 각자가 선택한 자선단체를 위한 기부금 10만 달러를 획득할 수 있는 마지막 1인이 되기 위해 혈전을 펼친다.

이들의 대결에 재미를 더해 주는 것은 배틀이라는 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요리 대결이라면 신선한 식재료와 완벽한 주방 기구들이 갖춰진 조건에서 갖는 것이 상식인데, 이 프로그램은 정반대다. 출연하는 셰프들은 열악한 장소, 제한된 시간 내의 까다로운 미션으로 까칠한 심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일례로 자판기에서 뽑은 재료로 에피타이저 만들기, 통조림 재료만으로 인기드라마 '로스트' 스태프들을 위한 최고의 요리 만들기 등이 있다.

'헬스 키친'
원래 이 프로그램은 미국 채널 브라보 네트워크(Bravo Network)에서 제작한 것으로 최고의 푸드 리얼리티로 큰 인기를 끈 '탑 셰프(Top Chef)'의 스핀오프 시리즈다. 출연 셰프들 중에는 '탑 셰프 시즌 1'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했던 사람들도 있을 만큼 전세계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셰프들로 구성돼 있다. 첫 방송부터 스타 셰프 마이클 슐라우, 팀 버르, 휴버트 캘러, 크리스토퍼 리가 출연해 까칠한 꼬마 손님, 4명의 걸스카우트를 위한 디저트를 만들어 보이며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 프로그램의 MC는 한국계 리포터이자 푸드 저널리스트인 캘리 최(최은영)가 맡아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 국내 케이블채널의 VJ로도 활동한 바 있는 켈리 최는 미국 NYC-TV채널의 인기 푸드 프로그램 'Eat Out NY'의 진행으로 에미상 후보에 오를 만큼 유명한 인사이다.

셰프들이 TV속에서 싸우도록 부추기는 것은 비단 미국에서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방영된 요리 배틀 프로그램 '철인 요리왕'은 일본에서 탄생한 수작이다.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80여 국에 판매되며 세계적 히트를 기록한 요리 대결 포맷 '철인 요리왕(Iron Chef)'의 원작인 '철인 요리왕 Japan'은 요리를 스포츠의 경지로 끌어올린 전설의 시리즈로 통한다. 프로그램은 1993년 '요리의 철인'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처음 태어났다.

'철인 요리왕 Japan'에서는 '철인 요리왕'에서 일본 요리의 거장으로 등장하는 모리모토 마사하루가 나오고 중국 요리의 첸 케이치, 프랑스 요리의 사카이 히로유키, 이탈리아 요리의 코베 마사히코 등의 거장들이 출연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수많은 셰프들이 평생의 내공이 담긴 요리를 선보이는 형식이다.

철인 요리왕과 도전자는 미션으로 주어진 주재료를 갖고 1시간 내에 애피타이저, 앙트레, 디저트에 이르는 풀코스 요리를 완성해야 한다. '철인 요리왕 Japan'은 일본편 시리즈인 만큼 도미, 고등어, 오징어 등 해산물과 두부, 낫토 등 일본적 재료들이 주로 등장한다. 전문 심사위원들은 직접 두 요리사가 만든 요리를 시식한 후 맛, 장식, 독창성 등의 항목별로 점수를 매겨 승자를 결정했다.

'철인 요리왕 japan'
이 프로그램은 세계 최고 수준의 요리사들이 등장해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등 요리 대국의 다양한 요리들을 선보이며 10년간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방송기간 내 총 308번의 배틀이 진행됐고, 1만 4000여 개의 요리를 선보였다. 요리에 들인 비용만도 8억 4000만엔( 113억원)이다. 그 결과 한국을 비롯, 미국, 영국, 핀란드, 덴마크, 홍콩 등 전세계 80여개 국에 수출될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철인 요리왕 Japan'과 '철인 요리왕' 프로그램의 시청 포인트는 역시 '배틀'이라는 요소이다. 요리라는 장르에 스포츠적 역동성을 가미해 요리 프로그램을 보지 않던 남성 시청자들 사이에서조차 컬트적 인기를 끌었다.

얼마전 케이블 TV를 통해 방영된 키친 서바이벌 프로그램 'YES! CHEF(예스 셰프)'가 있다.

"쓰레기통에 버린 파프리카, 다 주워 먹어!!"라고 모질게 고함치는 셰프 에드워드 권이 출연해 주방은 군대보다 더 험한 곳임을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 프로그램을 지켜본 이들은 "어! 고든 램지랑 비슷하네"라고 말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요리계의 강마에' 고든 램지는 이미 오래 전 비슷한 콘셉트로 떴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친 입담과 냉혹하지만 예리한 판단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세계적인 여행가이드북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셋을 받은 고든 램지는 런던의 레스토랑 8개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25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스타 셰프다. '고든 램지의 신장 개업', 등 TV 프로그램 진행을 통해 국내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고든 램지의 신장개업 USA'
굳이 배틀 형식은 아니지만 고든 램지는 TV 프로그램 '고든 램지의 신장개업 USA(원제: Ramsay's Kitchen Nightmare USA)'에서 폐업 직전의 레스토랑이 그의 냉혹한 평가와 도움을 받아 눈부신 발전을 일궈내는 성공 스토리를 보여준다.

시종일관 시니컬한 태도로 경영자의 마인드에서부터 인테리어, 음식의 맛과 질 등 레스토랑 운영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며 날카롭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모습은 기본이다. 때론 지나치게 악랄한 비난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다. 하지만 그가 요리 세계나 대중들에게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그의 지적을 받아들인 레스토랑들이 실제로 놀라운 변화로 성공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고든 램지도 '헬스키친 2'(원제: Hell's Kitchen Sr.2) 프로그램에서는 독설과 지옥훈련을 방불케하는 험한 지시들을 쏟아낸다.

이 역시 오직 최후의 1인에게만 주어지는 최고급 레스토랑 수석주방장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셰프 대격돌 형식의 프로그램.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12명의 도전자들이 고든 램지의 혹독한 훈련 속에서 최고의 1인이 되기 위한 과정을 그린다. 도전자들은 각각 남성팀, 여성팀으로 나뉘어 매회 치열한 요리 경쟁을 펼치는데, 대결에서 진 팀은 팀원 1명을 잃게 되고 주방의 온갖 허드렛일을 맡게 된다.

치열한 서바이벌을 통과한 최고의 1인에게는 라스베이거스의 '레드락 리조트 스파 & 카지노'의 수백만 달러짜리 레스토랑 '테라 로사'의 수석주방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세계적인 요리 프로그램을 넘어서 2008년, 같은 타이틀의 PC 게임으로 선보였고 이후 닌텐도 DS와 Wii 게임 타이틀 역시 제작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TV 속 음식 프로그램에서 배틀이 주제가 되는 것은 국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까지 인기 프로그램 자리를 구가했던 SBS의 '대결 맛대 맛' 또한 전형적인 배틀 형식이다. 종전까지는 중년의 여성 요리 전문가가 나와 가운데 서서 음식을 만들고, 옆에서 진행자나 보조 진행자가 거드는 형식이었다. 이런 모습은 이제 많은 시청자들에게 진부하게 인식되고 있다.

'철인 요리왕'의 바비 플레이
반면 셰프 배틀 형식은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처럼 관전하는 재미를 더해준다. 승자와 패자가 있고 극적효과가 있다. 최근 방영 중인 SBS E!TV의 '쉐프의 키스' 역시 아이돌 그룹 유키스 멤버들이 함께 하는 100% 리얼 푸드 배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푸드 프로그램에서 배틀 형식이 시청률 확보에 만능인 것만은 아니다. 이미 문을 닫은 SBS의 '대결 맛대 맛'이 보여주듯 시청자들은 언제 어느 때든 식상해 할 수 있다. 배틀 형식을 벗어나 SBS E!TV가 최근 '양희은의 요리쇼 식객'을 시작하면서 스타의 몸에 맞는 제철 맞춤 식품을 공개하고, MC 양희은이 현장에서 직접 요리를 만들어 보이는 신개념 요리 토크쇼 형식을 취한 것은 새로운 시도이다.

한편으로 셰프 배틀 프로그램이 부작용을 안고 있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TV 배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유명한 일식 셰프는 배틀에서 패배하자 출연진 및 제작진과 심각한 갈등을 겪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감히 내가 만든 음식을 놓고 패널진들이 '졌다'고 선언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셰프 배틀 TV 프로그램이야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 목적이고 배틀이란 것이 굳이 실력만의 평가가 아님에도 당시 제작진은 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어쨌든 최근 국내 TV 푸드 프로그램에서 여전히 주류로 남아 있는 셰프 배틀의 열기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궁금증으로 남아 있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