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의 재발견] 가난 상징 벗고 로하스적 라이프스타일로 각광

최성훈 작가의 토끼 베개
'훌륭하고 가치 있는 것은 모두 시간과 공이 들게 마련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미국의 동화작가 타샤 튜더 할머니. 그녀는 한국에서 동화작가보다 '코기 커티지'로 불리는, 자신의 집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바구니를 짜고, 도자기를 굽고, 옷을 짓는다.

텃밭을 가꾸고 그곳에서 난 재료들로 요리하는 할머니는 동화책에도 자신의 삶을 닮은 글과 그림을 그린다. 늘 쓰임새를 생각하고 필요할 때마다 물건을 만들어내는 그녀는, 손을 거쳐야만 완성되는 노동의 고귀함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낮엔 베틀을 짜고, 도자기를 굽던 손은 밤이 되면 호젓한 불가에서 바늘과 천으로 향한다. 자신의 드레스는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의 목덜미와 손을 감싸줄 목도리와 장갑을 만드는 시간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절하고, 타인의 삶까지도 따스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그녀의 손. 그 손은 한국의 젊은 여성들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천 조각, 잘 드는 가위, 바늘, 색색의 실, 핀 쿠션, 그리고 줄자와 같이 소박한 재료에서 시작되는 바느질은, 과거 가난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삯바느질'의 묵은 때를 벗겨냈다. 바느질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카페만도 수백 개를 헤아리고 회원 수는 많게는 십만 명을 훌쩍 넘겼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바느질 인구가 대략 100만 명에 이르리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몇 해 걸러 한두 권씩 출판되던 바느질 관련 서적의 출판도 늘었다.

지난해와 올해 사이 탤런트 김현주가 쓴 <현주의 손으로 짓는 이야기>를 비롯해 <리넨스타일 천연 소품 DIY> <어느 오후 손바느질하다> <바느질하는 남자 놀아형> 등 수 권의 도서가 서점가에 등장한 걸 보아도 그 인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손맛에 빠진 이들은 비단 한국인만은 아닌 듯하다. 손바느질하던 이들에게 재봉틀 사용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지는데, 몇 해 사이 발표된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연구자료는 흥미롭다. 2005년 당시, 미국에서는 이미 수년 동안 가정용 재봉틀의 수요가 증가해왔고, 2008년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가정용 재봉틀 매출 역시 급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업계의 전문가들은 이런 트렌드에 대해 최근 산업 전반의 화두인 친환경 움직임의 적극적인 반영과 DIY(Do It Yourself)시장의 인기의 결합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지난해 호주에 대한 한 연구자료는 가정으로 회귀하는 'Domestic Hedonists'(가정적인 쾌락주의자) 트렌드가 호주 여성들의 뜨개질, 수공예와 같은 여가생활의 증가를 가져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내에선 미국의 마샤 스튜어트나 한복디자이너 이효재 등 살림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유명 살림꾼들을 통해 하찮은 일로 여겨지던 집안 살림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젊은 여성들이 스스로 바늘과 실을 잡게 된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탤런트 김현주가 자신의 바느질 취미를 저서 <현주의 손으로 짓는 이야기>로 펴냈다. 사진제공=살림LIFE
바느질 중에서도 재봉틀을 이용하지 않는 손바느질은 '손맛'을 극대화한다. 반 고흐가 자신의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궁핍함을 드러내는 움푹 팬 볼도 아니고, 시꺼먼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한 줄기 희망도 아니었다. 그들의 손이 드러내는 노동의 정직함. 램프의 불빛 아래에 놓인 일용할 양식을 향해 뻗은 손은 그들의 노동과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고 보았다.

손바느질도 마찬가지다. 한 땀 한 땀은 곧 시간이고 정성이다. 노련한 손바느질은 재봉틀로 만든 옷과는 달리 옷 태부터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부드럽다고 한다. 게다가 바늘과 실의 소리 없는 움직임에 몰두하다 보면 평정심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 바느질 마니아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바느질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해외 사례에서도 분석되듯, 친환경과 맞닿게 된다.

알록달록 새 천을 사서 바느질을 하던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리폼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다. 살이 쪄서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청바지를 뜯어 가방으로 변신시키는 일, 늘어진 티셔츠를 인형의 피부로 둔갑시키는 일, 유행이 지난 원피스를 조각내 화장품 파우치로 용도 변경하는 일은 새 천으로 만들어내는 생활 소품보다 더 많은 창의력을 필요로 한다.

"대도시화되면서 오는 단절에 대한 반발이자, 인간관계의 회복에 대한 욕구의 하나"로 해석되는 핸드메이드(수공예). 처음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작은 실패와 천 조각, 바늘, 손의 정직한 노동력에 몸을 맡긴 이들은 자연스럽게 로하스(LOHAS, lifestyle of health sustainability)적인 라이프 스타일에 빠져들고 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