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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얼음 폭포를 오르는 이유

[지상갤러리] 유갑규 개인전 <빙폭을 그리다>
어떤 이들은 끝끝내 산을 올라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유명한 산악인들의 등정 소식도, 언론의 호들갑도, 에베레스트와 안나푸르나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만큼이나 멀고 어려운 이야기다. 우뚝한 산은 막막할 뿐이다.

가끔은 박영석, 엄홍길, 오은선 대장의 '승전보'에 감히 왜냐고 묻고 싶어진다. 그들의 고단함과 집념에 대해서는 각자가 진 일상의 하중에나마 미루어 짐작한다 치더라도, 산에 대한 매혹과 의지는 예사롭게 설명할 수가 없다. "거기 산이 있어 올랐다"는 간명한 서사는, 엇비슷하게 반복되는데도, 새삼스럽다.

왜 인간에게는 결국 다시 내려와야 하는 정상을 향해 어떤 혹독함이라도 뚫으며 가고 또 가는 운명이 있는 것일까. 흙을 딛고 바위에 오르는 것도 모자라 깨지고 무너질까 두려운 얼음까지 헤쳐나가는 이들은 불가사의하다.

시인 박시우는 산악인들에게 빙벽을 오르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대답 중에는 "아이스바일과 크램폰으로 얼음을 찍는 행위가 인간의 잠재된 파괴 본능을 충족"시켜준다거나 "자신이 직접 루트를 개척하는 모험이기 때문"이라는 분석, "얼음에 박힌 피크 감각이 뇌리에 믿음으로 전달되었을 때의 안도감"과 "아이스바일을 얼음에 찍었을 때 파르르 떨리는 피크를 통해 전해지는 짜릿한 손맛"에 대한 강조도 있었다.('그들은 왜 빙벽을 오를까?' <리얼리스트 100> 홈페이지 중)

하지만 아직도 석연치가 않다. 누군가가 위험을 감정하고 감수하는 기준은 나름의 삶의 방식이다. 삶 각각에 고유한 논리가 있는 이상 어떤 단편도 복합적이다. 한 마디의 설명이 빙벽을 대면한 사람의 좌표를 뚜렷이 고정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유갑규의 작품들을 보자. 첩첩의 빙폭이다. 땅의 결이 매섭고 반반한데, 얼음의 결은 흐드러지는 듯 일렁이는 듯 하다. 아름답다. 그러나 앗, 빙폭 끄트머리에 홀홀히 찍힌 사람들을 발견하는 순간 이는 마땅히 보고 즐길 만한 풍경만이 아니다. 저 작은 몸과 걸음에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태세다. 혹은 그를 꼼짝 없이 가둔 형국이다.

이를 인생에 대한 비유로 읽는 것은 쉽지만 따분한 일이다. 그보다는 저 세밀한 표현과 구도, 위치와 시선, 그리고 저 사람의 심정과 결단으로 닥쳐올 앞날 같은 것들을 헤아리며, 막막하면 막막한 대로 최선을 다해 있어 보는 편이 낫다. 거기에야 우리가 산악인들의 전형적인 승전보에 번번이 경탄하는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유갑규 개인전 <빙폭氷瀑을 그리다>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가가갤러리에서 열린다. 02-725-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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