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다시 날다] <이상 다시 살다>, <이씨의 출발> '제비다방' 모티프 7人의 작품들 눈길
이곳에 초대된 손님들은 물처럼 맑은 술을 마시고 달콤한 음식들을 이어 맛보고는 이상한 소스로 버무린 문어 샐러드를 질겅질겅 씹으며 시인의 말을 곱씹어 본다. 가득 찬 것보다 빈 것이 더 많은 테이블 위에서 진짜 만찬이 기다리고 있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루나윤경 작가는 이상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인의 만찬'이라는 이름의 푸드 퍼포먼스를 마련했다. 파리와 서울의 '공간 해밀톤'에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재현된 이 퍼포먼스를 위해 서울에도 조촐한 식탁이 차려졌다.
수박과 문어와 초콜릿 소스, 그리고 까만 먹 케이크. 미각, 후각, 청각, 촉각, 시각을 자극하는 이 만찬의 출발은 '뱃속의 허기가 영혼을 맑게 한다고 생각했던 시인의 탄생 100주년에 무엇을 먹어야 할까?'였다고 파리에 있는 루나윤경 작가는 설명했다. 이들 오감을 자극하는 만찬은 곧 시인 이상의 시상의 재현과도 맞닿아 있다.
8월 18일 열린 이 퍼포먼스는 <2010 Paris/Seoul 이상 다시 살다>의 행사 일환으로 펼쳐졌다. 같은 장소에서 지난 8월 5일부터는 <직선은 원을 살해하였는가>라는 테마의 전시도 열리고 있다. 이상의 탄생 100주년을 조명하는 세미나, 전시, 퍼포먼스 등이 어우러진 행사의 진원지는 애초 서울이 아닌 파리였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다른 시대를 산 이상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사실 외국인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종종 수학적 외형을 띠며, 한국어와 일어에 더해 불어, 독일어, 영어, 라틴어까지 시어로 끌어들인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한국인에게도 암호해독과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무한히 열려 있는 텍스트라는 점. 이것에 헤롤드 쉐링스, 유희숙, 구민자와 김연수, 제라르 파레시스, 박창현, 이혜란 등 파리와 한국의 실험적인 작가들이 매혹됐다. 이상의 예술을 독창적으로 해석한 두 차례의 행사, <파리로 간 이상-1부>와 <이상 다시 살다-2부>에서 그들은 문자 그 자체의 시에서 벗어나 이를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예술로 탄생시켰다. 시 낭독부터 사운드 아트, 음악, 영상설치, 퍼포먼스 등을 통해서였다.
"이상은 유럽의 아방가르드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 명백하며, 유럽과 한국의 문화적 유대의 시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공동기획자 엠마뉴엘 페렁)
이상의 아방가르드적 예술을 다각적으로 조명한 행사에 두 달 앞서 대안공간 눈에서는, 이상이 금홍과 함께 2년 남짓 운영했던 제비다방을 모티프로 7명의 작가가 각자의 시선으로 작업했다. 제비다방은 이상의 아지트이기도 했지만 예술인들이 치열하게 예술혼을 피어올린 장소이다. 구본웅을 중심으로 한 화가들의 모임인 목일회와 김기림, 정지용, 이상을 중심으로 한 구인회가 제비다방과 출판인쇄소 창문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영상 속에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하는 김민 작가는 <날개> 속의 문구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를 모티프로 영상 자화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상의 삶이나 예술을 해석하는 자체가 현대 작가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위한 영감이 되는 것과 달리 내달 열리는 <木3氏의出發 (이씨의 출발)>(2010. 9. 17~10. 13, 아르코미술관)은 이상의 삶과 예술, 나아가 그가 살아가던 1930년대의 모더니티를 다원적이면서도 치밀하게 탐구한다. 1937년, 스물 여덟 해의 불꽃 같은 삶을 마감하기까지, 건축가, 화가, 소설가, 시인으로 살며 하나의 '신화'가 된 이상.
<이씨의 출발>은 이상이라는 천재를 확대경으로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문학, 미술, 건축, 디자인 등 동시대적인 맥락 속에서 조감한다. 1930~40년대 다방면에 재능을 보인 르네상스 인간형의 작품 세계 재조명을 통해 동시대 예술에서 그의 작품의 존재 의미를 되새김질해보는 자리인 셈이다.
전시는 제비다방과 경성, 백화점과 극장 등 이상이 주로 머물던 공간을 중심으로 이상의 탄생부터, 성장 배경이 되는 1920~30년대 모더니티로 전개된다. 일본을 통해 서구의 모더니즘이 급속히 유입되던 당시의 경성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등장으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유행했다. 그 안에서 살던 이상이 다면적 모습이 그려진다.
이상의 말랑말랑한 일상도 전시장 안으로 들여놨다. 그가 동료 예술가들과 자주 드나들었던 백화점과 옥상정원, 그리고 영화보기를 즐겼던 그의 취향이 반영된 극장이 그곳. 그가 심취했던
이상을 비롯한 모더니스트들의 파장은 현대예술가들에게도 이어진다. 모더니스트 페인팅을 재해석한 현대미술작가 바이런킴의 페인팅 7점, 이상의 텍스트를 재해석한 정영훈의 미디어 작업과 차지량의 영상이 근대의 대표적인 미술가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된다.
근래 현대미술에 대해 할 얘기가 많았던 조영남이 지난 6월 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상의 시 해설서를 펴냈다. 40년을 묵혀오면서 '죽기 전에 꼭 쓰고 싶었다'던 이상의 시 해설서다. 단편적 논문은 넘치지만 너무도 난해해 흥미를 유발하는 해설서 한 편 없었다던, 이상의 100여 편의 시를 창작년도에 따라 수록하고 해설을 곁들였다. 이상의 최초의 시 <이상한 가역반응>을 '이상의 5초짜리 남녀관계의 시'라고 해석하거나 어려운 한문으로 가득한 <오감도 Ⅱ> 시제 7호에 대해서는 형벌처럼 부여받은 인간의 고독감이라고 설명한다. 이상에 대해 지독하게 공부하고 써온 책임에도 다분히 조영남식의 해설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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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