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양혜규 개인전 <셋을 위한 목소리>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셋을 위한 그림자 없는 목소리, 2008
양혜규 작가의 '국위선양'이 그의 '유목성' 때문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양혜규 작가는 90년대 중반 이후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유수 비엔날레와 미술관에서의 전시 소식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국내에서의 개인전은 단 한 차례, 미술관이 아닌 폐가에서 열렸을 뿐이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셋을 위한 목소리>는 양혜규 작가에 대한 풍문을 확인할 수 있는 첫 기회다. 이제껏 해온 주요 작업과 신작이 고루 전시되었다.

양혜규 작가의 작업에 접근하는 열쇳말인 '유목성'은 섬세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국적 없는 자본이 국경을 무화하며 재편한 신세계에서 노동력의 이동성을 북돋기 위해 낭만화한 여건으로서의 유목성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양혜규 작가 작업의 유목성은 차라리 개별 존재의 감각적 특성이다. 작가 자신이 거처를 옮기며 겪었을, 장소에 대한 예민함, 시간의 혼란, 낯선 관습과 언어에 대한 이물감, 외로움과 불안함을 다스리려는 강박 같은 것들이 재료다. 동시대성도 이로부터 나온다.

그 밖에서, 2006
2004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양혜규 작가는 '스피커스 코너'라는 작업을 통해 자신에게 붙은 노마드라는 명찰을 '해명'한 적이 있다.

"많은 작가들이 현재 전시차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고 전시를 만드는데, 아마도 이는 학술회의 등에 자주 참석하는 학자들이나 거래를 위한 경영인들의 비즈니스 트립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이들을 노마드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는 기존의 집과 직장 사이를 오가는 통근 반경이 확대된 것일 따름입니다. 저는 아마도 이런 생활의 패턴을 가진 이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동시대의 여건 속에서 유목성과 마주하는 것은 미술의 처지이자 의무가 되었다. '장소 특정적' 작업이 현대 미술의 트렌드 중 하나가 된 까닭이다.

양혜규 작가의 작업의 보편성은 이런 아이러니와 이중성을 치열하게 돌파하는 데에서 얻어진다. 그리고 관객이 유목성을 최대한, 이지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다.

<셋을 위한 목소리>에 설치된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셋을 위한 그림자 없는 목소리'가 그 예다. 블라인드로 구획을 나누고 다양한 장치들로 빛과 향, 습도와 공기의 흐름을 조율한 이 작업은 관객을 각성시키는 동시에 몽환에 빠뜨린다.

전환하는 삼인자, 2008
이 공간에서 양혜규 작가의 대역들에 의해 '연설'이 읊어지는 것이 작업의 일부다. 연설이라지만 집요한 질문들이다. "제가 그리 절박하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자문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저는 모두에게 말을 걸 수 있을까요? 그들은 모두 누구일까요?"

유목성을 번역한 목소리이자, 양혜규 작가에 대한 국위선양 보도 이면의 실체다. 전시는 10월24일까지 열리며, 9월에는 양혜규 작가의 영화감독 마르그리트 뒤라스 오마쥬 프로젝트가 남산예술센터와 씨네코드선재에서 진행된다. 02-739-7067


소금기 도는 노을, 2010
평상의 사회적 조건, 2000-2001
서울 멋쟁이, 2010
신용양호자들, 2010
서울근성, 2010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