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문화공간으로 변신]백화점, 문화공간으로 거듭나 미술전시·콘서트·연극·뮤지컬 등 펼쳐백화점 이미지 높이고, 문화 소비계층 고객으로 흡수

롯데갤러리 안양점. <맛있는 그림>전 모습
'어디 볼 만한 공연이나 전시회 없을까?' 나른한 주말. 굳이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기 위해 대학로를 찾을 필요가 없다. 음악회나 콘서트를 위해 격식을 차릴 필요도 없다.

편안한 복장으로 아이들과 함께 문화생활을 즐길 만한 장소로서 백화점이 급부상하고 있다. 쉽게 드나들 수 있고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전시회를 만끽할 수 있다. 백화점이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백화점, 문화공간을 확충하다

국내 유통업계가 문화공간에 눈을 돌렸다. 쇼핑을 위한 공간인 백화점들이 고객들을 위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까지 비워두고 있다. 최근 새롭게 개관을 했거나 앞둔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대대적으로 문화홀과 갤러리에 힘을 주었다.

최근 개장한 서울 청량리 민자역사내 롯데백화점 8층. 갤러리에선 <거장의 숨결-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전이 열리고 있다.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거장들의 오리지널 작품들이 백화점에 전시된 것이다.

신세계 부산 센텀시티점 갤러리
박수근 화백의 <노상의 사람들>, <마을>을 비롯해 이중섭 화백의 은지화 <아이들>, 김환기 화백의 <두 마리 새>, <항아리와 매화> 등 30 여 점이 따뜻한 조명 아래 들어섰다.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은 8월 20일부터 9월 26일까지 개관기념으로 거장들의 작품전을 개최했다.

300여 석을 보유한 문화홀에선 9월 한 달간 콘서트,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이 펼쳐진다. <유열의 팝 재즈 콘서트>(1일)를 시작으로 뮤지컬 <어린이 캣츠>(3일), 연극 <보잉보잉>(4~5일), <아우라 꼬레아 국악콘서트>(7일), <최정원의 뮤지컬 산책>(8일), <송대관, 김혜연의 한가위 콘서트>(10일), 뮤지컬 <넌센스>(11일), <해설이 있는 재즈댄스>(12일) 등이 연이어 진행된다.

청량리점은 '도심 속 오아시스를 꿈꾸는 휴(休)&미(美)'라는 슬로건 아래 갤러리뿐만 아니라 문화홀까지 갖추며 고객을 위한 문화공간을 확충했다. 문화홀과 갤러리가 동시에 갖춰진 약 6만㎡(1만 8000평)부지의 청량리점은 쇼핑과 외식에 더불어 문화까지 향유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8월 25일 개관한 부산 광복점 아쿠아몰은 더욱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광복점은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분수와 건물 외벽의 창호지 문양의 LED조명, 옥상 공원의 전망대 등으로 화려한 면모를 드러냈다. 역시 갤러리와 문화홀을 갖추고 문화센터 등의 활용에 비중을 두면서 고객들의 문화와 여가생활에 신경을 썼다. 광복점은 아쿠아몰 개장을 기념해 <1000일 수도, 부산과 미술전>을 9월 16일까지 연다.

롯데백화점은 오는 10월 일산점에 자리하던 롯데시네마를 없애고 갤러리를 개관할 예정이다. 기존의 소공동 본점의 에비뉴엘과 대전, 부산, 광주, 안양점까지 총 8개의 갤러리가 운영 중이다. 또한 12월에는 영등포점에 약 825m(약 250평) 규모의 문화홀을 열 계획이다. 앞으로 3년 안에 전국 9개 점포에 문화홀을 도입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롯데백화점 측은 "갤러리와 문화홀 등 문화서비스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2013년까지 지속적으로 문화서비스 시설을 준비해 확장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롯데 에비뉴엘 갤러리
현대백화점도 8월 26일 일산 킨텍스점을 오픈하면서 문화시설을 확충했다. 국내 백화점 중 최대인 1000㎡(약300평), 550석 규모의 문화홀을 마련했다. 최첨단 음향과 조명시설을 갖추고 있어 고객들에게 보다 나은 공연 문화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매달 특정 테마로 다양한 공연과 행사를 펼칠 예정으로, 9월에는 <김성녀의 연극인생>, <바비킴 콘서트>, 연극 <여보 고마워> 등이 무대에 오른다.

특히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과 연계한 갤러리도 상설운영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은 킨텍스점 오픈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대구점을, 2012년엔 청주점, 2013년엔 양재점, 2014년 광교점과 안산점, 2015년 아산점 등 점포수를 18개로 늘리면서 문화공간도 더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백화점들이 신규 점포를 오픈하면서 경쟁적으로 문화시설을 확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롯데백화점 측은 "고객 유치 전략이 문화마케팅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화 백화점'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롯데백화점은 고객들에게 상품 판매뿐만 아니라 문화를 향유하며 즐길 수 있는 쇼핑공간을 제공한다는 생각이다. 문화계의 큰 소비층으로 부상한 계층이 백화점 고객이라고 판단, 고품격 문화 백화점의 이미지를 높이고 차별화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말 문화사업팀 내에 갤러리 사업을 총괄하는 아트매니저직을 따로 둔 것도 문화 콘텐츠를 강화하려는 목적에서다. 문화사업팀 관계자는 "고객을 불러들이는 것 못지 않게 고객이 오랫동안 머무는 것도 중요해졌다"며 "고객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는 건 문화이다. 문화홀이나 갤러리가 고객들의 문화적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목동점에서 열리고 있는 과학체험전
백화점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에도 문화 서비스가 최상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백화점들이 오픈 기념 이벤트로 갤러리를 활용한 전시회나 문화홀에서의 연주회를 내거는 이유이다.

신세계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최근 백화점 내의 문화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신규고객의 수가 크게 늘고 있다. 상품 구매가 목적이 아니라 문화홀이나 갤러리, 문화센터를 이용하기 위한 고객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며 "백화점들은 고객의 충성도가 높아진 만큼 그에 걸맞은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경쟁할 것이다"고 말했다.

백화점 문화공간, 지역적 특색에 맞춰지다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문화 서비스가 중요합니다."

8월 31일. 마에스트로 금난새가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10층 문화홀의 무대에 섰다.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현악 4중주단 제스퍼 스트링쿼텟, 피아니스트 루실 정 등과 함께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곡을 연주하며 친절하게 해설까지 들려주었다. 300여 명의 관객들이 음악에 흠뻑 빠졌다.

현대백화점 일산 킨텍스점 오픈
신세계백화점은 개점 80주년을 기념해 8월 30일부터 9월 5일까지 <신세계 뮤직 페스티벌>을 진행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이번 공연을 문화홀과 명품관 3층에서 펼치며 VIP고객 1300여 명을 초대했다. 일주일간 펼쳐진 연주회는 좌석을 가득 메운 고객들의 반응만 보아도 뜨거웠다. 신세계백화점은 매달 클래식 공연을 2~3회 진행하고 있다.

연주회에서부터 성악, 오페라 등 다양하다. 문화홀은 본점, 경기점, 부산 센텀시티점 등 세 곳에만 갖춰져 있다. 본점은 강남과 강북권의 중간 지점에 있기 때문인지 클래식 공연의 수요가 가장 높다. 신세계백화점 고객전략팀의 조태희 팀장은 "신세계 본점은 특성상 고객들의 클래식 선호도가 높다. 매달 클래식 공연 프로그램을 2회 이상 넣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선 SO(S-Office)클럽 회원들을 위한 문화홀 공연도 진행된다. SO클럽은 '신세계 오피스클럽'을 뜻하며, 20~40대 직장인들을 위한 클럽이다. 본점을 이용하는 고객에게만 적용되는 서비스 상품이다. 조 팀장은 "본점은 인근에 오피스 건물들이 많아 직장인들의 이용도 무시할 수 없다"며 "이들을 위해 문화홀에선 오후 7시 이후에 공연을 시작하는 프로그램을 매달 2회 정도 시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롯데백화점 안양점도 지역적 특색을 고려해 문화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안양점의 갤러리는 개성 있고, 특색 있는 미술품들을 전시하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1년 중 기획전이 90%를 차지할 정도로 다양한 계층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난 5월에는 가정의 달 특별기획전으로 을 터키문화원과 연계해 전시했으며, 6월에는 미술과 토이(toy)의 결합인 전을 개최했다. 7월엔 일본의 화가 <이와사키 치히로: 동심-그 순수함을 말하다>전을, 8월에는 여름방학 특별기획 <맛있는 그림전>을 열었다.

신세계백화점 문화홀의 스티브비리캇 재즈 공연
9월 10일부터 27일까지는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판화가인 나가이 가즈마사의 작품이 전시된다. 여기 소개될 작품들은 주로 동물을 이용해 그린 유머스럽고 아기한 그림들로, 모든 계층의 관람객이 즐길 수 있다.

롯데갤러리 안양점의 나민환 큐레이터는 "안양은 미술애호가들이 많은 지역은 아니다. 백화점이나 갤러리 이용객의 계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게 특징"이라며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많아 그에 맞게 아이들도 즐길 수 있는 교육적 측면이 담긴 전시기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연·예술계, 부담 없는 백화점 공연에 맛 들다

"백화점이라고 해서 음향시설이 형편없거나, 무대가 좁지 않아요. 오히려 그 이상이죠."

최근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에서 콘서트를 진행한 한 대중가수의 말이다. 그는 1년에 2회 이상은 백화점의 문화홀에서 공연을 갖는다. 300석 남짓의 좌석을 구비한 백화점 문화홀은 이제 웬만한 공연장 못지않은 무대 시설로 양질의 공연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낮 1~2시간대 공연은 아티스트와 관객들에게 보다 편안한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또한 발레나 오페라, 연극, 뮤지컬 등도 장장 3~4시간의 긴 호흡이 아닌, 90분 정도의 하이라이트 공연이나 갈라 형식으로 한결 부드러운 호흡을 내뿜는다. 평일 낮 시간대 아이들과 함께 문화홀을 찾은 관객들이라면, 부담 없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클래식, 재즈 등 연주회도 관객들과 거리를 좁히며 만남의 횟수를 늘리고 있다.

한 공연기획사 측은 "백화점 문화홀에서의 공연은 관객과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했다는 데 특징이 있다. 오페라나 연극, 뮤지컬도 하이라이트의 막간 공연으로 홍보 마케팅을 펼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백화점 덕분에 어린이 관련 공연도 장소 섭외의 제약이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콘서트를 자주 여는 아티스트들의 경우 백화점 문화홀은 기존의 공연장보다 훨씬 저렴하게 대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는 백화점들이 문화홀을 증축하거나 확대하는 등 규모를 넓히고 있어 사정이 더 나아졌다.

신세계백화점 측은 "각 백화점의 문화홀이 예전의 열악한 환경을 벗고 새 단장을 하면서 아티스트들에게 주목받고 있다"며 "신세계의 경우 문화사업, 즉 메세나 기업활동을 꾸준히 해오면서 문화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신세계에서의 공연이 차별화된 이미지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