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r Road] 굴, 치즈, 생크림, 과일 등 와인보다 섬세한 맥주와 음식 마리아주

"그가 멀리 간다면 그것은 몇 구획 떨어진 곳이 고작이며, 자신의 무릎 위에 앉아 굴과 맥주를 마시는 가정부와의 소풍 정도이다."

조지 오웰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작품에서 레스토랑 접시닦이들이 애인인 가정부와 교외로 놀러가는 장면을 묘사했다. 여기에서 의외의 마리아주를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굴과 맥주의 매치다.

프랑스어로 결혼을 뜻하는 마리아주(marriage, 결혼)는 음식과 와인의 매칭이지만, 궁합이라는 단어의 뜻에 집중한다면 어디에나 이 마리아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우리나라로 따지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맥주의 짝, 치킨이 있다.

치킨과 맥주를 붙인 단어 '치맥'은 '소맥', '홍탁' 못지 않게 한국의 식문화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월드컵 기간 중 손석희 아나운서가 방송 중 치킨을 빨리 배달받는 노하우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둘의 결합은 공공연한 것이 되었다.

굳이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치킨과 무, 맥주의 조합이다. '치맥'과 함께 '반반 무 많이'(치킨 반, 후라이드 반에 무는 많이) 역시 한국 외식사에 빠뜨려서는 안될 중요한 단어로, 맥주가 있는 풍경 중 하나다.

독일에도 이와 비슷한 조합이 있는데, 바로 학센이라 불리는 돼지 족발과 피클, 그리고 맥주의 마리아주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익은 학센은 육류를 주식으로 하는 독일, 체코 등지에서 공통적으로 먹는 음식인데 목구멍을 꽉 채우는 고기의 묵직함이 저절로 맥주를 부른다.

밀로 빚은 맥주, 바이젠의 경우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지만 그래도 최고로 치는 것은 바이스 부르스트라고 부르는 송아지 고기로 만든 하얀 소시지와 둥근 프레즐의 일종인 브레제와 함께 먹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바이스 부르스트를 보며 바이젠의 부드러운 목 넘김을 그리워하고, 바이젠을 보며 브레제의 고소함을 떠올린다.

독일에도 삼합이 있다?

위에 열거한 몇 개의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맥주의 가장 좋은 짝은 육류다. 기름기와 고소한 육즙이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순간 시원하고 쌉싸래한 맥주 한 모금이 절로 생각나는 것은 만국 공통인 듯하다.

그러나 맥주의 다양성으로 눈을 돌리면 좀 더 다채로운 음식과의 마리아주를 꿈꿔볼 수 있다. 육류과 어울리는 맥주는 주로 라거 종류인데 국내의 맥주 안주가 치킨과 오징어, 땅콩 등으로 한정된 이유는 우리가 마시는 맥주가 모두 라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 맥주 박람회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맥주가 존재하는 벨기에에서는 맥주 카페에서 치즈를 자주 내놓는다. 치즈에는 한국식의 톡 쏘는 라거 맥주보다는 과일향이 많이 나고 도수가 높은 에일 맥주가 잘 어울린다.

초콜릿도 좋은 맥주 안주다. 초콜릿은 와인과는 좀처럼 어울리기 힘든 식품인데, 맥주 중에서도 묵직하고 쓴 맛이 적은 초콜릿 스타우트와 아주 잘 어울린다. 스타우트는 우리가 종종 흑맥주라고 부르는 어두운 색깔의 맥주로 아일랜드의 맥주 브랜드 기네스가 대표적이다. 초콜릿과 맛도 색도 똑 같은 초콜릿 스타우트는 초콜릿이 들어간 푸딩이나 케이크와도 좋은 궁합을 이룬다.

맥주 중 오트밀이 들어간 오트밀 스타우트는 생크림 케이크와 먹으면 좋다. 맥주를 만들 때 오트밀을 넣으면 질감이 부드러워지고 초콜릿이나 커피 같은 풍미가 나기 때문에 크림이 들어간 디저트 류와 매치가 잘 된다.

과일은 흔히 나오는 술안주지만 시고 달고 차기 때문에 의외로 어울리는 맥주를 세심하게 고를 필요가 있다. 독일의 바이젠은 사과와 잘 어울리고 색깔이 검고 맛이 무거운 둥켈 바이젠은 바나나와 잘 어울린다. 벨기에의 화이트 비어는 오렌지와 함께 먹으면 상큼한 맛이 배가된다.

오웰의 소설 속에 등장한 굴도 실제로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맥주 안주다. 특히 스타우트와 먹을 때 제 맛이 살아난다. 스타우트가 등장한 18세기에 굴은 펍에서 안주로 제공되던 값싼 음식이었다. 스타우트 중에는 맥주통에 실제로 굴을 넣어 만드는 경우도 있다. 물론 오이스터 스타우트는 굴의 향을 첨가한 것이다.

사진=임재범 기자
초콜릿, 생크림, 굴과 잘 어울리는 맥주

얼마 전 국내 한 백화점의 와인 가판대에는 1병에 6만 5000원인 스페인 산 이네딧 맥주가 올라왔다. 미슐랭 3스타에 빛나는 레스토랑 엘불리의 톱 셰프 페란 아드리아가 자기의 요리와 매치시키기 위해 직접 만든 맥주였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과 함께 할 음료로 와인 대신 맥주를 택한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는 엘불리의 셰프들, 소믈리에들과 함께 맥주회사 에스트렐라 담과 합작해 황금맥주 에스트렐라 담 '이네딧'을 만들었다. 최고급 호프와 광천수를 사용했다는 이 맥주에 대해 페란 아드리아는 까다로운 음용 방법을 설명했다. 먼저 얼음이 든 버켓에 맥주를 넣어 차게 만들고 이후 와인 잔에 따라 블렌딩하면서 마시라는 것.

소파에 구겨져 박혀 짭짤한 땅콩에 곁들이는 싸구려 맥주든, 한 끼에 수 백 달러를 호가하는 레스토랑에서 송아지 고기에 마시는 고급 맥주든, 분명한 것은 맥주에는 다른 술이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 점점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는 맥주에 맞춰 그에 어울리는 독특한 안주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서적: <맥주수첩> 이기중, 으듬지, <맥주의 세계> 원융희, 살림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