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유하 쑤언페 개인전 <Holy Melancholy>

The Beach, 2010
사진의 주인공은 빨간 모자에 빨간 외투를 걸친 흰 수염 난 남자다. 그렇다, 전 세계 어린이들의 친구 산타클로스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떠올리는 모습은 아니다.

루돌프는 어디다 떼어 놓았는지 홀로 호수를 응시하는 그의 등은 하염없다. 영락없이 세상사에 찌든 중년 사내다. 다른 사진에서는 심지어 오필리아처럼 물에 둥둥 떠 있기도 한다. 시체놀이까지 할 정도라니 마음이 심히 우려된다.

저 정도면 우리 아이에게서는 좀 떼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상태는 점점 악화된다. 산타클로스는 지쳤는지 애먼 사람을 겁주기도 한다. 일련의 사진들 속에서 다정한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저 빨간 옷과 흰 수염만 봐도 무서울 정도다. 루돌프도 겁에 질려 떠났을지 모른다.

산타클로스의 정체를 폭로한 이는 핀란드 작가 유하 쑤언페다. 핀란드의 상징과도 같은 산타클로스를 비틀어 작가는 상업 논리에 의해 낭만화된 자국의 정체성에 이의를 제기한다. 산타클로스의 출생 배경에 한 다국적 콜라 회사의 마케팅 전략이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옷과 흰 수염도 광고 일러스트 작가가 만든 것이다.

그의 푸근한 인상과 풍채는 거의 한 세기 동안 크리스마스의 상업화를 눈가림하는 방패로 쓰였다. 크리스마스 이브, 할아버지의 축복을 기다리며 잠든 아이의 모습 앞에서 어느 부모가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있었을까.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값진 선물을 사는 것은 만국 공통의 풍습이 되었다.

The Legend, 2009
그러므로 유하 쑤언페의 사진은 상업 논리에 동원되느라 탈진한 산타클로스의 내면 풍경인지도 모른다. 만국에 가짜 온정을 파느라 정작 자신은 황폐해졌다. 그동안 핀란드라는 국가도 덩달아 팔려 나갔다. 마냥 순수한 자연의 이미지로 고착되었다.

그것이 오늘날 다국적 자본에 의해 만국 공통의 상식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소비에 대한 찬양은 미디어의 주된 레퍼토리다. 상업적 이미지는 우리에게 소비자로서 누릴 수 있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세뇌한다.

많은 역사적 진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들, 인류가 가꾸어 온 다양한 문화와 관계 맺는 방식이 사고 파는 메커니즘에 포섭되어 편평해졌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어려서부터 당연히 사랑했던 산타클로스야말로 진정 무서운 인물임에 틀림없다.

유하 쑤언페의 개인전 는 10월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종로6가에 위치한 대안공간건희에서 열린다. 02-554-7332


Melancolique, 2009
Santa with white paper, 2010
Hades, Finland, 2010
Santa Ophelia, 2009
Cursing, 2009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