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로 사는 법] <슈퍼스타K2> 출연 커밍아웃 박우식 씨, 게이 코러스라인 공연 등 눈길

<슈퍼스타K 2>에서 커밍아웃한 박우식 씨
서구에서 동성애자들은 우리 사회만큼 핍박받는 존재가 아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나 문화인, 예술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밝히고 살아간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예술계의 소위 '잘 나가는' 인물들 가운데 이 같은 게이(레즈비언 포함)들이 있다. 이들은 소위 게이 이슈가 등장하면 가장 먼저 언론의 관심을 받는 이들이다.

지금은 주로 레스토랑 CEO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연 홍석천은 오랫동안 한국의 게이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모든 게이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채, 혹은 커밍아웃을 한 후 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평범한 동성애자들은 더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게이는 "홍석천 씨는 한국에 게이 문화를 가져온 분이기는 하지만, 게이에 대한 전형을 만들기도 했다. 일반 사람들은 이제 모든 게이들이 홍석천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를 봐라. 외모나 행동으로는 일반 이성애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설명한다.

게이에 대한 이성애자들의 편견은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전형에서 비롯된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게이 담론은 대개 두 가지로만 다루어졌다. 하나는 유명인 위주의 대 사회적 활동의 언급이다. 연 홍석천을 비롯해 영화감독 김조광수, 이송희일, 한겨레21의 신윤동욱 등은 대중에게도 친숙한 셀러브리티(celebrity) 게이다.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이들의 말투나 행동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형이 되어 '일반적인 게이'로 굳어진다.

G-Voice 공연 모습
다른 하나는 유명하지 않은 게이 개인들에 대한 조명이다. 이성애자 대중의 오해와 편견을 키운 것은 이 부분이다. 이제까지 이들 '작은 게이'들에 대한 조명은 주로 '게이바 잠입 취재'나 에이즈 관련 뉴스와 연관지어서만 이루어졌다. 음지의 영역만 다루어지는 패턴에서 게이들의 운신은 더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엔 이들 작은 게이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당당한 선언을 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주한 미국 대사관은 GLIFAA(Gay and Lesbian in Foreign Affairs Agencies, 대사관 내 동성애자 모임) 회원들이 '동성애자 인권 간담회'를 열고 한국의 동성애자들을 초청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행사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6월을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달'로 정하는 대통령 선언문을 발표한 데 따라 마련한 자리. 원래 이 행사는 올림픽 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시설을 관리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이 행사의 성격을 안 후 행사 승인을 거부함에 따라 장소가 급히 변경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화제의 방송인 <슈퍼스타K 2> 예선에서는 '대국민' 커밍아웃도 있었다. 노래 실력보다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당당히 알리기 위해 출연했다는 박우식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커밍아웃 이후 최근 동성애 비난광고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SBS 교양 프로그램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에 출연해 게이로 사는 삶에 대해 말하는 등 게이로서의 당당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16일에는 한국 유일의 게이 코러스인 G_Voice의 공연이 동덕여대에서 열린다. 최근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합창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면, G_Voice는 일종의 '게이의 자격' 합창단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올해는 최초로 여성 객원 단원 6명과 함께 혼성곡을 부를 계획이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G_Voice의 이종걸 단장은 "무엇보다 공연을 통해 자신을 대중 앞에 드러냄으로써 게이로서의 당당한 자긍심을 느끼고, 대중에게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점이 이 합창단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일반 관객과 소통하고 있는 게이 커뮤니티 활동
G_Voice는 2003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 내 소모임 합창단으로 출발해 7년 동안 성 소수자로서의 삶이 당당하다는 것을 공연으로 보여주고 있다. 올해 공연에서는 기존 멤버 외에 신입 회원을 받아 20~40대 초반의 학생과 직장인으로 합창단을 구성했다. 이 단장은 "합창이라는 콘셉트는 게이 간의 유대감을 고취시키고 무엇보다 공연을 통해 당당하게 커밍아웃하는 계기도 되는 좋은 의미가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벅차게, 콩그레츄레이션'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올해 공연은 최근 불거진 동성애 논란이 채 식지 않은 상황에서 열리는 터라 더욱 의미가 있다. 게이들이 세상을 살면서 겪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 속에서 서로의 모든 것을 축하하고 격려하자는 의미이기 때문.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공연에서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오 해피 게이', '페임(게이 버전)' 등 주제를 재치 있게 함축시킨 노래들이 많아 관객들의 호응이 예상된다.

이제까지 게이 코드의 문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성애자들에 의해 선정적으로 다루어지며 왜곡됐다. 하지만 게이 커뮤니티 내의 작은 목소리들이 서서히 볼륨을 키우며 게이 문화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