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새로운 미학의 발견] 옥인 콜렉티브<콘크리트 아일랜드> 등 화폐 가치가 잠식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기민한 반응

작가 그룹인 옥인 콜렉티브의 작업은 지금 미술 속에서 논의되는 '가치'가 탁상공론이 아닌, 생존과 연계된 문제임을 상기시킨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 옥인아파트를 따서 지은 것으로, 재개발 계획에 의한 철거가 시작되자 이 아파트에 살고 있던 한 작가가 동료 작가들을 초대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개발 논리와 삶의 연속성 간, 경제와 역사 간 가치가 충돌한 현장 한가운데에서 작가들은 마음껏 고민하고, 의논하고, 놀았다. 공사가 멈춘 시간, 미처 포클레인이 닿지 못한 틈틈이 작품을 설치하고 퍼포먼스를 했으며 부서지고 버려진 것들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가치의 난장에서 옥인 콜렉티브가 보여준 것은 세상에 다양한 가치가 공존한다는 원칙이었다. 도시계획 속에서는 쓸모없는 건물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구심점이거나 놀이터거나 박물관 혹은 전시장이라는 당연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주 잊히는 사실 말이다.

이후 1년 여간 이어진 옥인 콜렉티브의 활동은 다양한 가치들을 두루 살피고 조율하는 과정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작가로 살아남기라는 과제를 직접적으로 수행하는 것이기도 했다. 몇몇 스타 작가를 제외한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부업을 해야 하고 제도에서 도태되는 데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상황 속에서 직업 작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거대해진 시장과 제도화된 공적 지원, 화폐 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문화예술적 기준 사이 불균형한 구도 속에 놓인 작가들의 상황은 곧, 화폐 가치가 거의 모든 가치들을 잠식해가는 한국사회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삶을 토대로 한 옥인 콜렉티브의 작업은 문화와 예술, 정치와 역사, 인간다움을 구성했던 다양한 영역이 축소되는 경향에 대한 기민한 반응이다. 그들의 작업이 올해 제주인권회의에서 사회권을 고민하는 한 사례로 논의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7일 옥인 콜렉티브의 작가들 중 이정민, 진시우 작가를 만났다.

지난 9월 열린 전시 <콘크리트 아일랜드>의 작업들이 흥미로웠다. 화폐와 제도 바깥의 다양한 교환, 관계 맺기 방식을 보여준 것 같다.

-작가로서의 삶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미술이 매개되고 움직이는 판 자체를 볼 필요가 있다. 미술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어떤 위치에 놓이는지와 밀접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가 작가들 자신에게 미친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스스로 미술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헤어 디자이너들이 화폐가 아닌 다른 것들을 받고 커트를 해주는 오프닝 퍼포먼스를 마련했는데 어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커트 비용으로 냈다.(웃음) 정해진 유통 구조 속에서 매겨지는 미술의 값과는 달랐다. 맥락에 따라 가치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옥인 콜렉티브는 개별 작가가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데 비교적 자유로운 그룹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작가들이 이 그룹에 기대하는 바도 다양할 것 같은데.

-이를테면 느슨한 공동체다. 주축이 되는 건 네 명이지만 프로젝트에 따라 유동적이다. 특정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작가들 각자가 판단한다. 집단성을 강조하지는 않지만 옥인 콜렉티브는 우리에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여서 중요하다. 작가라는 위치에 대한 불안감, 작업에 대한 비평과 미술판 이슈 등 진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관계다. 단순한 친분 관계와는 좀 다르다. 함께 하는 전시는 이런 고민을 의미화하고, 개별적으로 시도하기 어려운 틀을 구현해 보는 하나의 과정이다.

옥인 콜렉티브 활동이 작가들 개별 작업에 미치는 영향은.

-전시 공간이나 형식에 있어서 기존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다 보니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제도 안 스타 작가를 향한 약육강식의 과정이 아닌 다른 생존 방식으로 눈을 넓히게 되기도 한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