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도시를 말하다]절망 표현한 폐쇄 공간 벗어나 광장문화 등 담으며 변화

"제가 대도시를 좋아해요. 대도시 속에 있어야 복잡다단한 공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이 더 잘 보여요."

지난주 인터뷰에서 소설가 조경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출간한 장편소설 <복어>의 배경은 서울과 도쿄. 두 도시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작가는 "한적한 시골에서는 사람들의 고독이나 정서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고 에둘러 말했다.

이는 작가가 도시에 삶의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자라고, 카페와 집필실, 도서관에서 집필하는 작가들. 그들은 2010년 한국의 도시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2000년 서울, 근대와 탈근대가 맞물리는 지점

2000년대 한국소설의 배경은 서울이 압도적으로 많다. 강남 형성사를 토대로 쓴 황석영의 <강남몽>을 비롯해 김미월의 소설집 <서울 동굴가이드>, 김종은의 <서울특별시> 등 서울 또는 서울의 지명을 제목으로 한 소설도 여러 권 출간됐다. 재작년 출간된 <서울, 어느날 소설이 되다>는 아예 서울을 모티프로 8명의 여성작가가 쓴 단편소설을 묶은 책이다.

그렇다면 서울은 문학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문학에서 도시성은 근대화 과정과 더불어 필연적으로 생긴 도시 고유의 속성을 말한다. 그러나 현 시대의 도시성은 근대와 탈근대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제 도시는 하나의 거대담론으로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근대적 속성과 시대의 새로운 양상인 탈근대성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인 공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국의 도시는 당연히 서울이다. 우리 문학작품에서 서울은 근대적 의미로서의 도시, 다시 말해 화폐가치와 대상의 물상화에 기반한 도시로서 상징성을 갖고 있고, 때문에 사회적 고립 상황이나 현대인의 비인격성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다른 한편으로 서울은 지역의 경계가 사라지고 글로벌화된 거대 도시의 상징이다. 모든 대상은 교환가치로 환원되고, 개인의 주체성은 사라진다. 탈주체화된 서울에는 각종 도시적 기호와 이미지들이 난무한다. 요컨대 근대와 탈근대가 맞물리는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작가들이 도시를, 특히 서울을 작품 속 메타포로 등장시키는 이유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최근의 문학작품은 김영하와 박민규의 소설이다. 조연정은 지난해 논문 <도시성의 문학 교육적 의미>에서 이들 작품을 토대로 2000년대 한국문학작품에 드러난 도시성을 설명했다.

김영하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 <보물섬>을 보면 도시가 개인들의 가치를 끊임없이 파괴하고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사진관 살인사건>에 등장하는 부부관계, <오빠가 돌아왔다>의 가족관계를 통해 작가는 근대 도시인들의 대화 단절과 고독, 불신을 드러낸다. 박민규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코리언 스텐더즈>에서 나타난 도시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철저히 작동하는 공간이다. 도시에 입성한 사람은 혹독한 진입과정을 겪어야 하고, 때로 그럴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도시로 대표되는 현 시대로의 진입을 거부하고 농촌행을 택한 사람에게는 철저히 응징하는 자본주의 권력의 힘을 알 수 있게 한다.

도시의 탈근대적 속성-기호와 이미지로 가득한 공간-은 김영하의 단편 <호출>과 장편 <빛의 제국>에서 드러난다. 박민규의 단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 가면 인간들은 기호로서 존재하다 어느 순간 주체를 이탈하는 양상을 보인다. 기린으로 변해버림으로써 자신을 타자화하고 무감정의 상태를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박 씨의 또 다른 단편 <카스테라>, 장편 <핑퐁>에서 인물들은 아예 세계를 부정하고 탈주체화해 버린다.

2000년대 도시문학 변화 곡선

2000년대도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국내 도시문학의 변화상을 그려보자.

90년대 후반, 세기말적 현상을 겪을 때쯤 문학계에서는 '베란다 문학'이란 말이 유행했다. 90년대 도시문학의 한 특징을 드러내는 말로, 아파트 베란다란 한정된 공간에서 자기 의미를 변주해서 쏟아내는 문학 작품을 말한다. 이런 현상은 200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다.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는 "당시 세기말적 문제와 연결되어 한정된 공간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들이 많이 선보였다. '인간의 복잡한 감각이 한정된 공간에서 어떻게 표출하는가'란 주제의 작품은 2000년대 초반까지 선보였다"고 말한다.

영화 <오발탄>
2000년대에 들면서 도시문학은 폐쇄된 공간의 형태로 그려진다. 김애란의 <노크하지 않는 집>, <침이 고인다>와 김미월의 <서울동굴가이드>, <여덟번 째 방>, 윤성희의 <레고로 만든 집> 등은 모두 폐쇄된 공간을 모티프로 쓴 단편이다. 편의점이나 원룸, 산동네부터 옥탑방, 고시원, 반지하방과 여관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궁핍하고 남루한 공간들은 2000년대 도시인들의 빈곤한 사회상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오창은 평론가는 "2000년대 젊은 작가들은 절망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폐쇄적 공간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발표된 소설은 폐쇄적 공간에서 벗어나 도시 자체를 그리고 있다. 김경욱의 <소년은 늙지 않는다>에서 도시는 유례없이 폭설에 뒤덮이고,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에서 도시는 물에 잠기며, 황정은의 <옹기전>에서는 급기야 무너져 내린다.

강지희 문학평론가는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실은 평론 '도시의 악몽을 빠져나오는 방법'에서 "젊은 작가의 소설들이 비관적 도시의 풍경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한다. 윤고은의 단편 는 도시 재개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담은 작품. 주인공 소설가는 Q 도시의 '문화산책도시 프로젝트'를 위한 장편소설 주문을 받지만, 재개발이 완성되면 자신은 쫓겨나리라는 생각에 무조건 도망친다.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은 대도시 재개발 건물을 배경으로 쓴 경장편 소설이다. 작가는 대도시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인물들에게 '그림자'란 알레고리를 통해 풍경을 재발견함으로써 이들이 개별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게 한다.

한편 2000년대 한국소설은 도시의 한 특징인 광장문화를 드러내기도 한다. 촛불집회를 모티프로 쓴 김선우의 장편 <캔들플라워>와 지난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연수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 대표적이다. <산책하는…>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타개책으로 산책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도시를 걷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거대한 산책의 무리를 만나게 된다. 그 거대한 산책의 무리가 바로 촛불 시위대다.

'그렇게 저마다 다른 곳에서 혼자서 걷기 시작해 사람들은 결국 함께 걷는 법을 익혀나간다' (<2009 이상문학상 작품집>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33페이지)

최근의 광장 문화를 통해 저마다의 고통이 결국 '소통'의 매개가 됨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폐쇄적인 공간에서의 자족적인 소통에 만족하는 젊은 세대가 있다면, 한 편에는 거리에서의 뜨거운 소통이 존재한다. 도시를 다루고 있는 최근의 문학은 이처럼 소통의 두 가지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농촌소설 쓰는 작가 있나요?

2000년대 시대 변화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지만, 한편으로 이들 도시문학이 실상 이전 시대 도시문학의 특성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조연정 문학평론가는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 작가들이 많은 주목을 받은 2000년대 문학에서 특별히 도시가 주인공이 된다고 할 만한 소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모두 도시를 전제로 하는 작가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2000년대 젊은 작가들은 '사회학적 문제'라고 할 만한 주제를 작품 전면에 노골적으로 배치하지 않는다. 김애란이나 박민규의 소설에서 도시와 관련해 '빈곤'의 문제가 노출되고 있지만, 그 문제를 다루더라도 세련된 미학적 장치를 통해 작품 속에 은유적으로 암시할 뿐이다.

오창은 평론가는 "도시문학은 공간의 특성이 문화적 영향력을 생산하고 있고, 이 영향력이 독자의 감성의 반영하면서, 작가에 의해 표출되는 것이 관건이다. 그 점에서 최근 문학작품에서 도시를 통해 표출되는 2000년대 공통감각은 이전 시대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례로 옥탑방, 반지하, 고시원 등으로 상징화된 도시의 폐쇄성은, 실상 공간의 폐쇄성이 아니라 실제로는 인간의 폐쇄성이다. 도시를 통해 인간의 폐쇄성을 표출하는 방식은 시대를 초월해 도시문학이 가진 보편적 특성이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세대마다 달라지는 도시 풍경

문학사에서 한국의 도시문학이 처음 등장한 때를 1930년대 전후로 본다. 1930년대는 근대적 모습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다. 이 시기 소설에서 도시의 형성과정과 지식인의 무력한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박태원은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도시의 풍경과 여기에서 부대끼는 자신-경성 만보객 구보씨-의 경험과 감정을 소설 속에 기록했다. 박태원의 <천변풍경>, 이상의 <날개>등은 이 시기 대표적인 도시문학으로 꼽힌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근대화, 산업화가 진행된다. 한국의 도시문학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시기다. 이때부터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모습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범선의 <오발탄>,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하근찬의 <삼각의 집> 등이 이 시기 발표된 소설이다.

<관촌수필>로 알려진 소설가 이문구도 초기, 도시에 관한 여러 작품을 남겼다. 첫 단편집 <이 풍진 세상을>(1972)을 시작으로 장편 <장한몽>(1972), 중단편집 <해벽>(1974) 등 이문구의 초기 소설에서 도시는 '삶을 위한 투쟁의 아수라장'으로 그려지며 등장인물도 대부분 고향을 떠나 도시에 정착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탈향민들이다.

90년대 도시문학이 또 한번 주목받는다. 1930년대와 1960년대 문학계가 각각 근대 조선의 성립과정, 산업화의 공간으로 도시를 주목했다면, 1990년대 문학계는 격변하는 매혹의 공간, 현대 소비문화와 욕망의 상징으로 도시를 그리고 있다. 이순원의 소설 <지금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가 대표적이다. 유하는 시를 통해 소비문화의 중심지 압구정동의 불빛이 우리를 유혹하는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이라고 말한다. 이런 유혹은 소비에 대한 우리의 강렬한 욕망이 있기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도시문학은 해외의 다른 도시문학 작품들과 비교해 어떤 변별점을 지니고 있을까? 당연하게도 우리의 도시문학은 '전통적 문화 현상'이 '근대 도시'에 흡수되면서 드러나는 특징을 드러낸다. 일례로 1970~80년대 도시문학을 그리는 데 탁월한 메타포는 아파트다. 아파트를 묘사한 조정래의 소설 <비탈진 음지>(1973)를 살펴보자.

'처음 이 아파트촌을 먼 발치에서 보고는 무슨 공장들이 저렇게 빽빽이 몰려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속에서 살림을 하고 산다는 것이다.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 그 머리 위에서 또 오줌똥을 싸고,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 사람이 사람 위에 포개지고 또 얹혀서 살림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근대 도시문명을 상징하는 아파트는 한국에서 입식이 아닌 좌식문화로 자리잡았고, 조정래 작가는 이를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라고 표현하고 있다. 전통과 근대가 맞물린 우리식의 도시 모습이다.

한국적 전통과 근대, 탈근대가 맞물리는 공간. 우리의 도시는 그 공통감각을 표출하는 장소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