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문학상 분석] 16개 문학상 18개 분야 수상작 통해 특징 등 살펴
문학상 A to Z
문화예술위원회의 지난해 문예연감에 따르면 국내 문학상은 211개로 나타났다.(2008년 기준) 시, 소설, 평론, 희곡 등 여러 부문에 걸쳐 '우승자'를 가리거나, 각 장르별로 수상자를 뽑는 종합 성격의 문학상이 98개, 시가 36개, 소설이 30개, 평론이 6개 분야다.
이 중 주요 문학상 16개의 최근 10년간 문학상 수상자를 분석했다. 수상자 분석에 앞서 한 가지 짚어둔다. 국내 문학상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기성문인의 발표작에서 수상작을 가리는 문학상과 신인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 성격의 문학상이다. 본지는 기성문인(시, 소설)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 중에서 심사위원 구성의 자립도, 운영 주최의 재정, 작품의 공신력, 전통 등을 기준으로 문학상을 선정했다.
우선 신문사 주최의 문학상으로 한국일보문학상(한국일보·소설), 동인문학상(조선일보·소설), 황순원문학상(중앙일보·소설), 미당문학상(중앙일보·시)이 있다.
문화예술 단체나 비영리재단, 지역에서 만든 문학상에는 김달진문학상(김달진문학관·시, 평론), 대산문학상(대산문화재단·종합), 김유정문학상(김유정기념사업회·소설), 이효석문학상(이효석문학선양회·소설), 오영수문학상(울산매일신문사·소설)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은 시, 소설, 평론 등 각 장르마다 수상작을 결정하는 바, 시와 소설 두 분야의 수상자를 각자 분석했다. 16개 문학상이지만, 18개 분야의 수상작을 분석한 셈이다.
수상자 스펙분석
먼저 수상자들의 나이와 등단년도 등 '스펙'을 분석했다.
뚜껑을 열기 전,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국내 문단에서 등단을 하는 형식은 크게 신춘문예 당선, 출판사의 신인문학상 수상, 문예지에 작품 발표, (아주 드물지만) 책 출간 등 크게 4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등단했지만, 신인작가가 등단한 장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문학작품을 선보이려면 다시 해당 장르의 '등단 시험'을 거치는 것이 관례처럼 돼있다.
일례로 김연수 작가의 경우 1993년 <작가세계>에서 시로 등단했지만, 이듬해 같은 잡지의 장편공모에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이번 분석에서는 작가의 활동 장르를 막론하고 첫 등단 해를 기준으로 삼았다. 시인의 경우 평론이나 희곡으로 등단한 후, 시 집필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활동 햇수를 정확히 산출하기 애매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뚜껑을 열어보자. 소설의 경우 98개 수상작에 수상자는 57명이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앞의 문학상 중 2회 수상한 작가는 모두 14명이었다. (공선옥, 권여선, 권지예, 김원일, 박범신, 방현석, 신경숙, 오수연, 윤대녕, 은희경, 이승우, 정이현, 조경란, 편혜영.)
3회 수상자는 5명(구효서, 김경욱, 김영하, 이혜경, 하성란), 4회 작가도 6명(김애란, 김연수, 김인숙, 김훈, 박민규, 성석제)이나 됐다. 수상자들의 평균 나이는 43.9세, 평균 등단 16년이 지난 후 수상했다.
다상 김연수, 비결이 뭔가?
문학상 수상작은 시대 감성을 드러내는 바로미터다. 2000년대 수상작의 공통점을 알아보면 현재 문인들의 미학적 감각, 사회가 추구하는 지향성을 두루 알 수 있다.
소설의 경우 수상작·수상작가와 문예지들의 문학담론이 일치된다. 쉽게 말해 평단에서 회자되거나 저널에서 많이 다룬 작품이 상도 많이 받았다는 말이다. 김연수와 김애란, 박민규는 얼마 전 한 주간지에서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2000년대 최고의 소설, 소설가로 선정됐다.
작가와 소설을 올림픽처럼 등수 매기는 것이 민망한 일이지만, 어쨌든 이들의 작품이 2000년대 한국 문학계를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결과는 말해주고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대중적인 작품보다는 어느 정도 문학성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도 잘 읽히는 소설들이 수상작이 됐다는 말이다.
대표적인 작가가 김연수이다. (1970년 생, 1993년 등단/ 2003년 동인문학상, 2005년 대산문학상, 2007년 황순원문학상, 2009년 이상문학상 수상.) '다상'(多常)이란 별명처럼, 그는 2000년대 국내 주요 문학상을 거의 다 휩쓸었는데, 그의 소설은 인문학적 요소를 두루 갖추면서도 가독성이 있고, 20~30대 젊은 독자들이 공감하는 사랑, 연애 등 정서를 작품 모티프로 자주 등장시킨다.
다상 작가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자기 브랜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김연수 이외에 김훈과 박민규, 김애란 등도 모두 확고한 독자층을 가진 작가들이다. 이광호 평론가는 "이 작가들은 자기 문학의 브랜드를 제도권 안에서 인준받음으로써 상징적 브랜드를 갖게 됐다"고 평했다.
복수 수상 작가 중 이들과 변별점을 지는 작가는 성석제(1960년 생, 1986년 등단/ 2001년 이효석문학상, 2002년 동인문학상, 2004년 현대문학상, 2005년 오영수문학상 수상)와 김인숙(1963년 생, 1983년 등단/ 2000년 현대문학상, 2003년 이상문학상, 2006년 대산문학상, 2010년 동인문학상 수상)이다.
또한 성석제의 작품이 2000년대 문학계 특징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구술문학의 전통에 기반한 문체, 유머 코드, 특유의 유연성을 가진 작품들을 발표해 왔다. 작가 특유의 문학 세계는 탈권위주의 코드가 각광받는 최근의 문학 코드와 비교했을 때도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박혜경 평론가는 "김인숙 작가 역시 80년대 초 등단해서 쉬지 않고 작업한 집념이 있는 작가다. 오래 활동하면 어느 순간에 평가를 받는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최근 소설분야 문학상 수상작의 특징은 수상 작가의 나이가 젊고, 특히 등단 10년 내 상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김애란(1980년생, 2003년 등단/ 2005년 한국일보문학상, 2008년 이효석문학상, 2009년 신동엽창작상, 2010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의 경우 등단 2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첫 작품집을 묶기 전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고, 한유주 역시 27세에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이광호 평론가는 "소설 문학상은 젊은 작가에게 호의적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작가에 대해 시 보다 빨리 (권위를) 인준해주는 듯하다. 이유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문학상을 4회 이상 수상한 소설가 중 김인숙은 제외시키더라도 나머지 5명은 전부 베스트셀러 작가다.
상 받으려면 20년은 써야…
이에 반해 시 분야 문학상의 경우 여전히 중견, 원로 시인들이 상을 받는 경향이 강하다. 2000년대 시단에서 가장 큰 이슈는 미래파(2000년 전후 등단한 시인들의 파격적인 시 경향의 하나)였지만, 정작 미래파로 거론된 시인 중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은 김경주와 김언 정도였다. 문학계 담론과 문학상 수상 여부가 별개로 작동한 셈이다.
조강석 문학평론가는 "수상작은 실험성이나 서정에 있어서 변혁보다는 안정적이고 일상적인 서정을 세밀하게 다른 작품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수상자 평균나이 48.7세, 평균 등단 연도는 22.5년'이란 사실은 시단의 보수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왜 이런 결과가 났을까?
조강석 평론가는 "평단에서 젊은 시인들의 변혁이 주목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시가 '주류로 인정받을 만한 수준까지 와있는가?'에서 아직 승인되지 못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문학상 취재과정에 만난 전문가들은 "소설보다 시가 자기 세계를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고 현재의 시 문학상이 중견·원로 작가들의 공로 잔치라는 말은 아니다. 2000~2010년 3회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나희덕, 송찬호, 최승호 시인은 현재 우리 시단의 지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박수연 문학평론가는 "이 4명의 특징은 자신의 시 세계를 일관되게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시적세계, 완성도, 사유의 깊이에서 뛰어나다. 이들 작품은 형식이 파격적이지 않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혜순 시인이 좀 다르긴 하지만, 넓게 보았을 때 서정시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평했다. 조강석 평론가는 "각각의 경로에서 끝까지 가려고 질주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김혜순 시인(1955년 생, 1979년 등단/ 2001년 소월시문학상, 2006년 미당문학상, 2008년 대산문학상 수상)에게는 언어와 이미지가 중요하다. 언어와 이미지의 힘을 발휘하면서 삶이 연동되는 미학을 보여준다. 감각적인 시는 시간이 지나면 탄성이 떨어지기 쉽지만, 김혜순의 시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힘이 갖기 때문에 시단에서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다.
나희덕 시인(1966년 생, 1989년 등단/ 2001년 김달진문학상, 2003년 현대문학상, 2008년 소월시문학상 수상)은 작년 출간한 시집<야생사과> 새 시집에서 일정 정도 변모하는 양상을 보인다. 시에서 삶에 대한 성찰, 지혜의 말을 하는 대신 자기를 성찰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는데, 이 부분이 '진정성' 측면에서 호소력을 갖는다는 평가다.
이광호 평론가는 "소설은 어느 세대든 문학성을 인정하는 기준이 공통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이에 반해 시는 기성세대가 인준하는 시인과 젊은 비평가, 세대가 주목하는 미학에 격차가 있다. 시의 문학성을 평가할 때 평균적인 동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문학상에도 그런 결과가 나온 듯하다"고 말했다.
문학상이 작가, 독자, 출판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우선 문학상 자체가 갖는 의미를 정리해 보자. 문학상은 제도다. 제도는 보수적인 성격이 있고,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기보다는 기존 흐름을 확인하거나 사후승인 하는 성격이 강하다. 특히 국내 문학상은 새로운 에너지를 표출하기보다는 제도권 안에 들어온 문학트렌드를 승인하는 측면이 강하다. 때문에 작가에게 문학상은 자신의 작품세계의 수월성을 공인받는 순간이다. 조강석 평론가는 "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작가도 있지만, 문학상은 '이런 방식으로 써도 된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통로이다. 작가 스스로 상당한 자신감을 갖게 되고, 안정적으로 작품을 쓰는 계기가 된다"고 말한다.
문학상 수상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출판사다. 책을 홍보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수상 작가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상당한 도움을 받는다. 수상 작가를 보유한 출판사뿐만 아니라, 문학상을 주최하는 출판사의 경우 '수상작품집'을 펴내며 얻는 이득도 쏠쏠하다.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앞서 말한 선별의 기능뿐 아니라, 지식상품으로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이상문학상 수상집>, <현대문학상 수상집> 등은 해마다 스테디셀러로 팔린다. 문학계에서는 이 시작을 출판사 문학사상의 <이상문학상 수상집>으로 보고 있다. 문학작품도 책으로 출간되면 지식상품이 된다. 시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문학상 심사에서 작품의 문학적 역량을 우선으로 치지만, 최근에는 작가 브랜드와 작품의 가독성도 염두한다. 문학상이 파격적인 수상자를 선정해 스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박혜경 평론가는 "수상 때문에 지명도가 생기기도 하고, 지명도가 있기 때문에 상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국내 문학상은 200개가 넘지만, 수상하는 작가들은 대개 정해져 있다. 박혜경 평론가는 "잘 쓰는 작가라는 인식이 생기면 평단이 그 작가의 작품을 주목하게 되고, 고정관념이 형성되면 분위기를 타고 간다"고 말했다. 박수연 평론가는 "한국문학계에서 가장 큰 한계는 문학상의 이념부재, 한편으로 심사위원의 정실이 작용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광호 평론가는 "가장 근본적인 아쉬움은 다양성의 부족이다. 특징을 갖기보다는 평균적인 미학적 모범성을 지닌 작품에 상이 주어진 경우가 많다. 어떤 작품은 그 상이 아니면 주어질 수 없다든가, 특별한 개성에 주는 상이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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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