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명맥 유지
지난해 10월 영화감독이자 개그맨 심형래는 '제1회 대한민국 희극인의 날' 제정 회견장에서 축사를 하면서도 못내 씁쓸해 했다. 개그 프로그램들의 폐지와 후배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웃음이 살아나야 나라도 발전하고, 웃음이 있어야 경제가 좋아진다"며 개그 프로그램에 대한 부활을 외쳤다.
그로부터 1년 후. 얼마 전 7년간 방송을 탔던 SBS <웃찾사>가 폐지됐고, MBC <꿀단지>도 방송 4개월 만에 문을 닫는다. 희극인의 날을 제정했지만 1년의 발자취는 변화한 것이 없다. 어쩌면 개그맨들의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안방극장에서 대놓고 웃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던 개그 프로그램들의 폐지는 우리에게 쓸쓸한 헛웃음만을 남긴다.
"코미디가 사라진 건 업보다."
2010년 코미디의 위기론이 대두되면서 개그맨을 포함한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반응은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웃음을 주기 위한 코미디가 시청자, 즉 대중에게 전혀 다가가지 못한 점이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운명을 낳았다는 말이다.
"한 방송사의 경영진과 코미디의 활성화에 대해 논의를 한 적이 있다. 개그 프로그램이 연간 25~30억 원을 까먹는다고 한다. 시청률 1~2%대의 개그 프로그램이 (광고 수익 등의) 돈이 안 되고 적자를 보니 없어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씨는 코미디의 위기를 인정하면서도 코미디가 처한 환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제 코미디의 현실은 방송국에서 마다하는 상황까지 야기된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방송사 입장에선 개그 프로그램이 미운 오리가 되어버렸다.
결국 현재의 코미디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포함돼 리얼 버라이어티로 양산되며 대체됐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개그 프로그램과 달리 출연진의 꾸밈없는 일상들이 더해져 있는 '날 것'의 영상이 전파를 탄다. 중견 개그맨들이 말하는 정통 코미디(시사 코미디)가 갖는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기란 힘들다.
왜 코미디가 이런 상황으로까지 내몰린 것일까.
"현재의 코미디는 일명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스러운 것) 코미디다. 시청자들의 수준은 날로 높아져 '조크문화'를 만들고 있는데 그 수준을 코미디가 따라가지 못했다. 최근 세계적인 트렌드는 스탠딩 코미디다. 시사 코미디가 가미된 스탠딩 코미디는 조크문화를 양산하는 우리 대중에 맞는 형식으로, 시청자의 정서와 공감하려면 변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90년대 <주병진쇼>와 <서세원쇼>, <시사터치 코미디파일> 등의 방송작가로 참여했던 SBS ETV 김경남 PD의 말이다. 코미디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개그콘서트>의 '왕비호' 캐릭터 등이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리얼한 스탠딩 토크 형식의 개그라는 점이다.
게스트를 앞에 두고 실명을 거론하며 신랄하게 풍자하는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신인이 출연하면 "누구?"라고 말하고, 과거의 사건사고에 휘말린 적이 있는 연예인에게 "그때 그랬지?", "이제 그러지 마"라며 촌철살인 같은 말들을 쏟아낸다.
김 PD는 이를 두고 시청자의 높은 기대치를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며, 각박한 사회에서 조크문화를 만들어가는 대중의 높은 수준을 다시 한 번 꼽았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을 모두 담아내야 하는 코미디 말이다.
개그맨 최양락씨도 최근 발행한 웃음의 노하우를 담은 에세이 <두말 할 필요 없이, 인생은 유머러스-최양락의 인생 디자인>에서 시대적으로 변화된 씁쓸한 코미디의 이면을 드러냈다.
"남을 인신공격하면 쉽게 웃길 수 있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까지 웃어야 진짜 개그다"라며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폭로전'과 '막말' 논란에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잠깐 동안 웃음을 주고 내내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할 거라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낫다.
날카로운 말끝이 어느 순간 자신을 향하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말이다"며 "거친 예능이 대세라고 해서 나까지 맞장구 치며 서로에게 칼날을 세우는 말을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내 나이에 맞는 개그를 하면 된다는 것을 안다"고 언급했다. 일회성 코미디를 지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엄용수씨도 "시청자가 웃지 않는 코미디는 더 이상 코미디가 아니다"며 대중과의 공감과 더불어 의미를 담은 코미디를 1순위로 꼽았다. 그러면서 정통 코미디의 부활이 시급함을 전했다.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코미디를 만들어야 한다. TV 속에는 젊은 개그맨들만이 출연해 웃음을 전달한다. 하지만 가족 코미디에는 젊은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중견 개그맨들에서부터 신인 개그맨들이 함께 서는 무대가 진정성 있는 코미디를 낳을 수 있다. 그래야 대중이 웃음을 이어갈 수 있다."
"기획사 시스템 문제… 방송사들 개그맨 포용해야"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했든가. 올해 '희극인의 날' 1주년은 의미 없이 지나갈 판이다. 지난해 성남시청에서 진행됐던 행사는 얼마 전 성남시 비리사태로 빛조차 볼 수 없게 됐다. 말 그대로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코미디가 기를 펴지 못하니 우리는 더욱 웃을 일이 없어졌다. 어떻게 하면 코미디를 더 활성화할 수 있을까.
코미디의 위기라고 한다. 대체 어떤 점이 문제로 부각됐다고 보는가.
코미디협회장으로서 코미디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이 있는가. |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