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까지… 사활 건 작명

<아저씨>
예비 관객에게 가장 중요한 영화 선택의 기준은 뭘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송강호 출연처럼 '묻지마 선택'을 하게 하는 절대 요소도 있지만, 대체로 관객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것은 역시 '제목'이다.

많은 영화 관계자들은 촬영 못지않게 영화 제목 짓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제목은 영화의 얼굴이자 관객을 끌어들이는 첫 번째 무기라는 생각 때문. 그래서 대본 상태의 영화 제목이 바뀌는 것은 다반사이고, 심지어 개봉 직전에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이제까지 제목을 잘 지은 영화들은 그해 흥행은 물론이고 이후 방송에서 무한 반복되며 오랜 인기를 누렸다. <조폭 마누라>,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선생 김봉두> 등은 최근까지도 오락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며 잘 지은 제목의 위력을 실감시키고 있다.

제목으로 흥미를 끌기 위해서는 우선 그 자체로 관객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한때 끝까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긴 제목들이 유행을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은 영화보다 제목으로 더 유명했다.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는 이 부분의 '레전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제목이 길다고 해서 반드시 흥행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는 긴 제목과는 달리 극장에 걸린 시간은 극히 짧았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지나치게 다 설명하는 대신 호기심을 끌도록 적절한 연상 효과를 주는 제목이 '흥하는 제목'이다"라고 말한다.

<거북이 달린다>
이런 영화로는 지난 2006년 개봉한 <호로비츠를 위하여>(원제 <나의 피아노>),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원제 <보고 싶은 얼굴>) 등이 있다. 이 영화들은 다소 모호한 원제 대신 적당한 설명과 호기심을 함축시킨 제목으로 잘 바꾼 사례로 꼽히고 있다.

반면 오히려 짧은 제목으로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제목들도 있다. <섬>, <폰>, <령>, <시> 같은 한 글자 작품은 일단 제목에 영화의 소재와 배경, 장르 등이 모두 함축된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는 해당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을 배제한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한때 충무로에 다섯 글자 흥행불패 신화가 있었다면 최근 몇 년간은 세 글자 영화의 전성시대다. 2008년의 <추격자>, <미인도>, <쌍화점>이나 지난해 <해운대>, <전우치>에 이어 올해에도 <하모니>, <의형제>, , <해결사>, <무적자>, <퀴즈왕> 등 세 글자 제목 영화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글자 수와 관계 없이 영화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제목이 제일 좋은 제목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것이 <올드보이>. 이 영화가 원래의 <야수>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면 당시와 같은 대성공은 어려웠을 것이 영화계의 중론이다.

최근에도 잘 지은 제목들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터닝포인트>에서 <파이팅 조형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바뀐 , <아열대>에서 이름을 바꾼 등은 영화 내용이나 배우, 캐릭터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악마를 보았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