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살리기'로 촉발… 환경문제 관련 강의ㆍ공연 등 잇따라

복합장으음악극 <나무>G20 정상회의 기념 문화행사
생태 사상은 비단 현재뿐 아니라 20세기부터 줄곧 화두였던 담론이다. 사람들은 생태주의를 '자연 보호' 운동의 다른 이름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환경오염에 따른 천재지변이 이어지며 녹색환경 조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국내의 경우 환경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대운하 사업이었다. 사실상 이름만 바꾼 '4대강 살리기'를 둘러싸고 담론이 조성되면서 환경 문제는 이제 환경운동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동시대인의 현안이 됐다.

최근 문화계도 4대강 살리기에서 촉발된 생태주의 운동을 시작으로 녹색환경에의 의지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구를 바꾸자'라는 거대한 메시지는 다양한 문화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까.

자연이 먼저, 인간은 그 다음이다

소비의 시대,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로 옮겨가고 있다. 기업은 끊임없이 상품을 대량 생산해 전시하며 소비를 부추긴다. 사람들은 기업들의 판매 전략에 넘어가 필요하지도 않은 소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소비 자체가 행복을 가져다줄까.

김선이프로젝트 <쓰레기 섬>
이 의문에 <미래를 여는 소비>의 작가인 안젤라 로이스턴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공산품의 생산방식은 자원을 소모할 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고, 사람들의 일상적인 소비 역시 쓰레기와 폐기물을 양산해 온난화를 가중시킨다는 것. 로이스턴은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일상에서의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비문명>의 저자인 일본의 생태평화운동가 마사키 다카시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환경 파괴와 자원고갈을 초래한 서구문명과 단호하게 결별하고 자연과 일체가 될 것을 촉구한다. 자연과 공존하는 문명으로의 변화를 권유하는 것이다.

인간 중심의 문명에서 생명 중심의 문명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한 이는 생태신학자인 토마스 베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그의 저서 <위대한 과업>에 이어 얼마 전 <우주 이야기>를 번역, 출간한 대화문화아카데미는 지난 15일 토머스 베리의 생태사상을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위대한 과업>을 번역한 이영숙 한림대 교수와 <우주 이야기>를 번역한 맹영선 고려대 교수가 발제를 맡고 았다.

이영숙 교수는 "토마스 베리는 인간이 주제넘게 지구를 망가뜨려서 생태계가 엄청난 위기를 맞았고, 당장 대처하지 않으면 결국 모두 공멸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살아있는 존재들은 절대적인 상호의존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구를 망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이 망쳐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맹영선 교수는 "현재의 생태계 위기 상황의 극복을 위해 토마스 베리가 대안하는 것은 '생태대(Ecozoic era)'로의 비약"이라고 설명했다. 생태대는 현재의 신생대 이후 지구에 등장할 지질학적 시기. 베리는 생태대가 전 지구 공동체(earth community) 구성원들의 친교를 바탕으로 황폐해진 지구를 치유하는 시기라고 본다.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
맹 교수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이 제한된 자연 속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베리의 주장을 전하며, "지구 공동체에 인간 활동을 통합시키는 것이 우리가 생태대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실천이 모여 거대한 지구 바꾼다

지난달 26일 국립국악원에서는 이색적인 공연이 열렸다. 국악원이 여는 테마음악회인 '다담 콘서트'에서 '우리 음식'을 주제로 토크쇼를 마련한 것. 이날 초대손님은 최근 방송 출연으로 잘 알려진 <마음이 그릇이다 천지가 밥이다>의 저자인 였다.

최근 각종 먹을거리 파동이 빈번해지는 가운데 그의 자연요리 철학은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의 요리철학은 '우리 땅에서 나는 모든 재료가 우리를 위한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는 "서구화된 입맛으로 식생활도 많이 변했지만 우리 몸에 가장 좋은 음식은 우리 자연에서 나오는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 음식은 종합예술이며 과학이고 보약'이라고 예찬한다.

있는 그대로의 음식 상태를 예찬해온 그는 이날도 현대인들이 자연과 너무 멀어지고 있다며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태도에 경종을 울렸다. 그는 "풀 한 포기나 열매 한 개 등 자연에서 무언가를 얻을 때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또 감사한 마음으로 요리를 만들고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감사 요리법'이라고 명명된 이 자세에선 새삼 자연의 위대함과 중요성이 다시 느껴졌다.

토마스 베리의 생태사상 간담회
같은 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도 특별한 강의가 열렸다. 강의의 주제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공사'를 환경책 읽기를 통해 생각해보는 것. 이 자리는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올해 초부터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인문학 스터디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환경 문제는 몇 년 전만 해도 재미없는 주제였지만 이제는 독자들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이 시대의 화두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닉네임 '골드문트'를 쓰는 독자는 알라딘 게시판에 "<강은 살아있다>를 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냥 눈감으려 했던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서요"라는 반성의 글을 올렸고, 닉네임 '동수'도 "강의를 듣고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이 우리의 강을 파괴하고 있었습니다"라고 감상을 남겼다.

'4대강 개발'을 비롯해 '인간과 동물', '경제성장과 행복' 등의 테마로 강의를 맡은 최성각은 풀꽃평화연구소를 운영하며 녹색평론 등에 생태 관련 글을 꾸준히 써온 생태주의 작가. 그는 이번 강의를 통해 경제성장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망상이며, 자연 훼손의 결과는 결국 인간종의 위기라는 지구의 경고를 수강생들과 나눌 계획이다.

이번 강의를 기획한 박태근 MD는 "최근 4대강, 녹색 비즈니스 등 생태환경 논의가 꾸준하지만, 우리가 마땅히 지키고 가꾸어야 할 가치들은 모두가 동의해도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는 것들이었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이 시대의 과제이자 교양이 된 생태환경 문제를 인문학 스터디라는 장에서 다루어보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녹색환경을 외치는 예술

'지구를 담은 사진전'<내셔널 지오그래픽전>
현실에 대한 풍자를 내밀하게 표현해왔던 예술도 그동안 환경 문제 만큼은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각 장르의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지구의 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움직임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오는 9일부터 이틀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나무>는 '녹색성장'과 '물'을 테마로 연극과 무용, 미디어 아트, 국악,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복합장르음악극이다.

연극 연출가 김아라가 총연출을 맡은 이번 공연에서는 안무가 박호빈, 국악 피아니스트 임동창, 미디어 아티스트 최종범, 재불화가 홍현주와 정동환, 남명렬, 권성덕 등 연를 비롯해 중요무형문화재 오지윤 명창과 프랑스, 브라질, 말레이시아, 토고 출신의 다국적의 예술가 30인이 특별 출연한다.

<나무>가 그려내는 것은 결국 나무 한 그루를 키우는 과정이지만, '나무 한 그루'로 형상화되는 '물의 순환'을 통해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로운 세상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 몸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물'은 인간 생존을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인류 문명이 물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을 정도로 생태학적으로 뗄 수 없는 요소다.

공연 관계자는 "인류의 진화와 함께하며 문학, 철학, 미술과 사회학의 주제로 계속 등장해온 물을 통해 21세기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환경'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오는 18일부터 LIG 아트홀에서 공연되는 <쓰레기섬>은 환경 문제에 연극적 요소와 음악적 요소를 접목시킨 현대무용이다. 김선이 프로젝트 그룹의 '섬 시리즈' 중 지난해 공연된 <괴짜섬>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된 <쓰레기섬>은 북태평양에 있는 한반도 면적의 7배 크기의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모티프로 했다.

이 작품은 버려진 쓰레기에 뒤엉켜 죽어가는 바다 생물들의 모습과 돌연변이 현상을 표현하며, 오염된 생태계가 인간에게 책임을 묻는 과정을 그릴 예정이다. 김선이 안무가는 "예술이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 사회에 대해 경고하며 행동을 촉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한편 현재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는 '지구를 담은 사진전' <내셔널 지오그래픽展>이 열리고 있다. 1888년 창간돼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과 세계 곳곳의 모습을 담아온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이번 전시에서 인간에 의해 파괴된 환경과 훼손된 자연을 담아 생태 보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진 180여 점을 선보인다.

사진전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위기에 처한 지구 환경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하고 있다.

얼마 전 내한한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는 생태계 파괴의 주 원인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한 태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구상의 가장 똑똑한 생물체인 인간이 왜 지구를 망가뜨리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은 그는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진정한 지혜는 오늘 내가 내린 결정이 훗날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감안해 판단하는 태도"라고 말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