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언소> 등 눈길 잡아

연극 < B언소>
최근 몇 년간 공연 무대에선 익숙한 제목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연극의 경우는 새로운 창작극보다는 흥행작을 장기 상영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뮤지컬은 시간을 두고 흥행작을 계속해서 재공연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장르와 달리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에서는 기존 작품을 업그레이드하며 제목도 살짝 바꾸거나 '시즌 X' 혹은 부제를 더하는 식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더러운 세상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변소'라는 공간에서 풀어내는 연극 <비언소(蜚言所)>도 1996년 초연 이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하다 최근엔 로 이름을 바꿨다. 풍자 내용은 당연히 바뀌었지만 주제는 변함이 없다. 이는 아무리 외양을 바꿔도 더러운 변소는 변소일 뿐이라는 생각이 담긴 것.

10년 가까이 장기상영을 하고 있는 '비행' 코믹극 <보잉보잉>은 올해 <뉴 보잉보잉>으로 제목을 바꿔 누적 관객 수 60만 명을 넘겼다. 원작 에서 1992년 <누가누구?>를 거쳐 2002년부터 <보잉보잉>으로 바뀌는 개명의 과정을 거친 결과다.

지난해 <살인마 잭>이란 제목으로 공연됐던 <잭 더 리퍼>는 올해 다시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국내에선 아직 낮은 인지도 때문에 국내 제작진에 의해 원작과 다른 이름으로 공연된 것. 올해는 새로운 음악을 추가하는 등 보다 세련된 내용과 이름으로 재연됐다.

연극 <낮 병동의 매미들>
반복 공연되는 작품들에는 흥미롭게도 다섯 글자 제목들이 많다. 영화에서처럼 너무 짧은 제목들은 공연 장르의 특성상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하기 어렵고, 너무 긴 제목은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 그래서 다섯 글자는 작품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숫자인 셈이다.

이런 작품들로는 <라디오 스타>, <두 드림 러브> <김종욱 찾기>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두 드림 러브>(Do Dream Love)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제목에 효과적으로 담아낸 제목으로 자주 회자된다. '두드림'이라고 붙여 읽으면 '사랑을 두드리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고, 영문 'Do Dream'으로 읽으면 '사랑을 꿈꾸다'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

한편 글자 수와 관계없이 절묘한 작명 센스로 관객을 유혹하는 작품들은 오히려 사회풍자극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표적인 작품이 <날 보러와요>. 이 제목은 아직도 미궁에 빠진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향한 것으로, 그에게 '연극을 보러오라'는 의미가 담겼다. 옆자리에 어쩌면 진범이 관람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연극의 묘미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미국쌀 수입 반대 등 당시 사회 이슈를 코믹하면서도 통렬하게 풍자한 <삼도봉 美 스토리>는 원작 제목인 <아! 삼도봉 컨피덴셜>을 적절하게 바꿔 내용을 제목에 그대로 담아냈다. <낮 병동의 매미들> 역시 예술가 아파트를 통해 권력과 자본에게 억압당하는 현 사회를 절묘하게 묘사한 제목으로 평가된다.

이밖에 요리나 가족의 일상이 나올 것 같은 연극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은 짜릿한 서스펜스와 스릴러를 반전으로 증폭시키며 인상적인 제목으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가 <고스트 하우스>라는 제목의 뮤지컬로 만들어질 예정이어서 바뀐 제목이 원작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할까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