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디자인 탐방', '성북동을 걷다 - 예술가의 길' 참가

호림아트센터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일상을 미술 체험으로 바꾸어주는 답사 프로그램 두 개를 골라 참가해 봤다.

일상 보는 눈 넓혀주는 '건축&디자인 탐방'

서울문화재단의 서울문화예술탐방프로그램 중 '건축&디자인 탐방'은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건축상에 빛나는 랜드마크', '600년 역사를 지닌 서울 대표 거리', '전통 한옥의 변신' 등의 주제로 매주 마지막 목요일에 진행되었다.

답사 행렬을 진두지휘한 이는 한양여자대학교 인테리어디자인학과 정원주 교수. 전통적인 건축부터 혁신적인 건축까지, 서울의 가지각색 경관을 유려하게 풀어주는 해설사다.

10월 28일 진행된 올해 마지막 '건축&디자인 탐방'의 주제는 '한국 전통의 미의 재해석'이었다. 강남구 신사동 근처 빌딩과 를 둘러보는 코스다.

로열앤컴퍼니
"저 문 보이시죠? 정면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들어가는 방향으로 약간 틀어져 있습니다. 마치 우리를 맞이하는 것처럼요. 들어갈 때마다 어쩐지 다정하게 느껴지겠죠?"

정원주 교수는 이해하기 쉬운 비유로 빌딩의 특성을 설명해준다. 민현식 건축가가 설계한 이 건물은 부지의 경사를 살려 "땅에 안긴 듯" 지어졌다. 경사면의 모티프는 건축물 곳곳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내부 계단들도 수직, 수평이 아닌 어슷한 각도의 선들로 구성되어 있다. 덕분에 공간 전체가 매우 역동적으로 보인다. 꼭대기인 6층으로 올라가자 건물이 두 개로 나뉘고 그 사이에 마당이 들어앉아 있다.

"한국 전통 건축에서 마당은 어울리는 자리입니다. 안동 병산서원에 가보면 확실하게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민현식 건축가는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도 이런 공간 구성을 보여줍니다. 승효상 건축가도 마당의 모티프를 자주 활용하죠. 수백당이라는 건물이 대표적입니다."

참가자들은 다음 답사 과제라도 되는 듯, 열심히 받아 적는다.

다음 건물은 호림박물관을 중심으로 세 개 건물이 이어져 있는 . 외관에서부터 토기, 도자기 등 전통 공예품을 소장한 호림박물관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호림박물관 건물에 쓰인 세 가지 색은 흙을 굽는 온도에 따라 나타나는 색들입니다. 그 오른쪽 건물은 빗살무늬 토기를 연상시키지 않나요?"

내부 공간은 연꽃을 모티프로 구성됐다. 호림박물관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좁고 길고 어둡다. 참가자들이 "한밤중 연꽃잎 사이 개미처럼" 줄지어 갔다.

이런 체험이 참가자들의 보는 눈을 한 뼘 더 넓혀줄 것이 분명하다. 시간이 갈수록 참가자들의 질문이 많아졌다. 이들에게는 앞으로 어떤 건물도, 어떤 거리 풍경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매일 오가는 길이 어떤 의도로, 어떤 효용을 노리고 짜여졌는지 잠시나마 멈추어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정원주 교수는 "서울에는 시민들이 모르는 공간이 아직 많다. 이번 프로그램이 시민들에게 서울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답사 내용을 모아 책으로도 출간할 계획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서울문화예술탐방 프로그램은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열린다.

예술사의 향취 속으로, '성북동을 걷다-예술가의 길'

"원래는 환기미술관도 성북동에 생길 뻔 했대요. 김환기 화백이 40~50년대에 성북동에 살았거든요. 부인인 김향안 여사가 미술관 터로 가장 먼저 꼽은 곳이 성북동이었는데, 그동안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포기했다고 하더라고요. 대신 옛 성북동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부암동으로 갔죠."

지난 10월27일 정오 무렵, 성북동에 위치한 소설가 이태준 고택. 황미애 도슨트가 술술 풀어놓는 옛 이야기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10여 명의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 성북구립미술관이 진행하는 답사 프로그램 '성북동을 걷다-예술가의 길'에 참가한 일행이다. 아침 10시부터 시작된 일정 중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참이다. 이야기는 이어진다.

"김환기 화백이 살던 집이 수향산방인데요, 김환기의 호인 '수화'와 아내 김향안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이에요. 전 주인은 화가이자 수필가였던 김용준이었는데 그때는 늙은 감나무가 있는 집이란 뜻의 노시산방이라고 불렸대요. 지금 그 집은 없어졌어요. 집터로 몇 군데가 거론되고 있는데 확실하진 않아요."

예술가들의 역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딸려 나온다. 성북동의 역사가 그만큼 두텁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둔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체력 보충들 하셨으니 이제 한용운이 살았던 심우장으로 가볼까요?"

사람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길을 나선다. 성북동의 오래된 골목은 가을 향취로 가득하다.

'성북동을 걷다-예술가의 길'은 시작도 하기 전에 입소문이 났다. 10월27일부터 11월25일까지 매주 수, 목요일에 진행되는데 참가신청을 받기 시작한 10월20일 이후 일주일 만에 11월 둘째주 일정까지 마감됐다.

그만큼 코스가 알차다. 성북구립미술관과 간송미술관, 운우미술관 등 인근 미술관과 화가 장승업, 미술사학자 최순우, 소설가 이태준과 시인 한용운의 자취는 물론 서울성곽까지 포함되어 있다. 가을에 따라 걷기에 더할 나위 없다.

게다가 성북동의 골목길은 그 자체가 문화재 감이다. 좁고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아직도 서울에 이런 길이 남아 있냐"고 놀라던 참가자들은 불쑥불쑥 나타나는 소소한 생활의 흔적에 즐거워한다. 누군가가 하수구를 뚜껑 대신 장판 조각으로 덮어 놓고 "가져가지 말라, 가져가면 나쁜 사람"이라고 쓴 것을 발견하자 일제히 웃음을 터뜨린다.

언덕빼기에 있는 심우장에 도착하자 "이런 곳에 살면 시가 절로 써지겠다"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마당에서 성북동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유서 깊은 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그 틈으로 새가 날아간다.

도슨트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 집이 북향으로 지어진 이유는 남쪽에 조선총독부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당치 않은 속세를 등지고 앉아 한 문장 한 문장을 벼려냈을 한용운의 꼿꼿한 뒷모습이 스쳐간다. 참가자들은 지금 예술이 태어난 자리에 있다.

성북구립미술관은 올해 답사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내년부터 다양한 코스를 개발, 진행할 예정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