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작가와의 대화] 서경식, 박노자, 아다니아 시블리 등 국내외 지식인 6명 이틀간 토론

한국작가협회가 주최하는 <제17회 세계작가와의 대화> 첫날 동숭동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해외작가 3인(박노자, 와타나베 나오키, 아다니아 시블리)의 발표가 있었다
해마다 10월이면 노벨문학상 기사가 줄을 잇는다. 국내 원로작가들이 유력후보로 소개되고, 언론은 각종 외신보도를 인용해 이 추측에 무게를 싣는다.

몇 년째 반복되는 기사를 접하다 보면 영화나 음악 등 다른 장르 보다 유독 문학은 '세계의 눈'을 너무 의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세계'는 우리 문학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에 대한 지식인들의 대화가 열렸다. 한국작가회의(이사장 구중서) 국제위원회(위원장 정은경)는 11월 4, 5일 '내가 만난 세계문학, 내가 만난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제17회 세계작가와의 대화>를 열었다.

올해는 서경식, 박노자, 와타나베 나오키, 아다니아 시블리, 김상봉, 박경미 등 모두 6명의 국내외 지식인들이 참여했다.

광장에서 빛의 제국까지

둘째 날 동숭동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작가 3인(김상봉, 서경식, 박경미)의 발표가 있었다.
첫째 날은 와타나베 나오키 무사시대학 인문학부 교수, 아다니아 쉬블리 소설가(팔레스타인),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가 참여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는 최인훈의 <광장>과 김영하의 <빛의 제국>을 한국적 상황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낸 소설로 꼽았다.

그는 "루카치의 유명한 테제대로 문학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현상 뒤에 숨겨져 있는 본질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며 "최인훈이 1950~60년대 냉전형 분단국가 건설 초기의 한국 상황을 묘파했다면, 김영하는 1990~2000년대 즉,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로의 전환 초기의 한국 상황을 그렸다"고 말했다.

"(최인훈의 <광장>에 대해) 한반도 전체와 주인공 개개인의 내면을 위에서 조감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밀착해서, 미시경을 보듯이 세부적으로 분석하는 작가의 시선은 개별적 현실들과 거리를 철저하게 두려는 중립의 시선입니다."

그는 <광장>에 대해 "대한민국이 수많은 학살을 배경으로 해서, 외세의 절대적 후원 하에서 세워진 지 12년 만에 쓰인 대한민국 초창기에 대한 결산보고서"라고 평했다. 김영하의 <빛의 제국>에 대해서는 "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 1997년 환란까지 지속된 남한 사회의 신자유주의화에 대한 결산보고서"라고 평했다.

와타나베 나오키 교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소통과 연대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사회의 기본 골격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빛의 제국>이 시사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젊은 작가 아다니아 시블리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바탕으로 한국문학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그녀는 "<토지>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봉건주의 시대에서 근대로 전환되는 과도기부터 계급과 정치투쟁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중요한 순간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며 "<토지>는 한국인의 무의식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세계성은 어디서 오는가

이튿날에는 서경식 도쿄 게이자이 대학 현대법학부 교수,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박경미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의 대화가 이어졌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디아스포라(경계인) 지식인인 서경식 교수는 한국문학에 대한 기존의 협소한 정의를 부정하고 '민족문학'이라는 개념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경식 교수는 "만약 시인 윤동주가 해방 후에도 생존하여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살고 있었다면, 그는 한국문학에 속하는가? 중국문학에 속하는가? 한국문학에 속한다면 현재 연변에서 활동 중인 조선인 문학자들은 모두 한국문학에 속하는가?"라고 질문하며 "한국이라는 나라의 틀을 뛰어넘는 조선민족의 문학이라는 의미에서 '민족문학'이라고 부르는 편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세계문학에 대해 그는 "글로벌자본주의가 석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보편성에 저항하는 쪽의 세계적인 보편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민족의 삶의 현장이 식민지 지배, 분단, 이산을 경험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이라는 그 사실만으로도 거기에서부터 오늘날의 세계문학이 태어날 가능성은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조선민족의 이러한 경험은 20세기 이후 인류의 경험이 집약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작가와의 대화>는 매년 해외 작가들이 참여했지만, 올해는 박노자, 김상봉, 박경미 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지식인들이 발제자로 참여한 것이 특이했다.

최근 <마몬의 시대 생명의 논리>를 내며 한국기독교를 비판한 박경미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는 '이야기 속 비유'를 모티프로 기독교 성서와 톨스토이의 작품을 비교, 소개했다.

"예수의 비유는 아무리 짧아도, 설사 한 줄짜리 비유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이야기입니다. 물론 구전전승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복잡한 이야기 구조는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히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등장인물이 있고, 사건이 있고, 줄거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을 구상적인 언어를 통해 인상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지닙니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윤동주의 시를 통해 일제시대 지식인의 자아를 분석해 눈길을 모았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인들 가운데 주체의 자기분열과 자기상실을 윤동주처럼 명백하게 자각하고 시적으로 형상화한 시인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다른 고향', '길', '새로운 길', '자화상' 등 대표작들을 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면서 이 시기 한국문학의 특징에 대해 소개했다.

"동요에 가까운 시들을 제외하면 그의 시편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주체의 자기상실과 자기분열입니다."

한국작가회의의 <세계작가와의 대화>는 국제위원회가 해마다 개최하는 행사다. 그 동안 가타라니 고진, 아리엘 도르프만, 바오닌, 여화, 자카리아 무함마드 등 많은 전 세계의 저명한 작가들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

한편 이번 행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보조금 없이 진행됐다. 지난 2월 예술위가 보조금 지급 대가로 '불법집회' 불참 확인서를 요청했고, 이를 작가회의가 거부함에 따라 3400만 원이 지급되지 않았다.


"외국서 볼 때 남북문제, 이산경험 등이 한국적으로 느껴지는 소재"

와타나베 나오키 무사시대학 교수는 1980년대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 '일본판 386세대'다. 동국대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를 비롯해 국내 작가들의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 소개해 왔다.

일본의 한국문학 연구자 중 비교적 젊은 세대에 속하는 와타나베 교수는 2006년부터 한국의 학자들과 함께 <인문평론>, <국민문학>, <신시대> 등 일제시대 조선 문인들이 출간했던 잡지를 읽는 모임에 참여했고, 이 연구를 모아 지난달 <전쟁하는 신민, 식민지의 국민문화>(소명출판)을 냈다. 그에게 해외에서 본 한국문학에서 대해 물었다.

4일 아다니아 시블리가 <토지>를 읽었다고 했을 때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웠다. 박경리, 고은, 황석영의 작품 외에도 김연수, 김애란, 박민규 등 지금 한국에는 다양한 작품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볼 때 한국문학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만큼 한국의 발전이랄까 시대변화가 빨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령 외국 사람에게 한국작가 중 노벨문학상 후보가 누구냐고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고은 시인이나 황석영 작가를 말한다. 이 분들의 중요한 작품은 거의 다 번역되기도 했다. 황석영 작가는 세계에서 읽혀지는 것을 의식해서 작품을 쓰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작가들을 검증됐다(번역되어서 독자를 확보했다는 의미에서),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일본에서 재일문학을 볼 때 어떤 정형화된 틀이 있다. 격한 어조로 쌓인 한을 푸는 문학. 이것이 재일한국문학이 될 수도 있고, 한국문학의 특징으로 보여질 수 있다고 본다."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는 한국작가와 작품은 무엇인가? 이유는 뭔가?

"한국학 연구자이기 때문에 특정작가의 작품을 편애하기보다는 한국의 문단 상황을 보면서 화제를 모은 소설을 읽는다. 외부에서 작품을 읽지만, 한국 언론에서 화제가 된 작품을 중심으로 보게 된다. 굉장히 몰두해서 읽는 작가는 아니지만, 김영하 작가는 능력이 다양하고, 앞으로도 활동할 것이고, 외국에서도 많이 읽혀질 작가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읽혀지는 방식과 외국에서 읽히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신경숙 소설가도 그렇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배수아 소설가는 직접 작품을 옮기기도 했다. 굉장히 내성적이랄까, 개인의 자아를 전심으로 복잡하게 쓴 작품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재미있었다."

80년대 대학을 다녔다고 했는데, 그때와 비교해 지금 일본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나?

"꾸준히 번역물은 나오는데, 반응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그렇게 많지는 않고 대중적인 면이라고 한다면, 문학작품보다는 영화나 드라마의 반응이 더 크다. 김훈의 <칼의 노래>와 공지영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최근 문고판이 나왔다.(일본에서 흔히 대중성을 염두할 때 문고판이 출간된다) 영화 <서편제>가 개봉되면서 이청준의 소설 문고판이 나왔지만,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문학이 일본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알려진 이유에 대해 흔히 한국인들은 번역의 문제를 꼽는다. 작품은 뒤떨어지지 않는데, 번역의 질이나 인력이 모자란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온전한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한국문학을 연구하며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한국문학 번역원에서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문학작품을 심사하다 보면 10권중 8,9권은 한국인이 번역했고, 1, 2권을 일본인이 했다. 전자는 원어민이라면 쓰지 않을 일본어 표현들이 종종 있고, 후자는 작가와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구문들이 있다. 그 점에서 한국문학작품을 해외에 알릴 때, 번역이 더 발전해야 한다는 말은 틀린 것은 아니다. 번역은 꼭 필요하지만 충분하진 않다.

남북의 문제, 이산의 경험, 일제 경험 등은 한국의 신세대가 구문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외국에서 볼 때 '이게 한국적인 것이다'라고 느끼는 적당한 소재다. 외국에서 기대하는 작품과 본인이 이런 것을 읽어주었으면 꼽는 작품이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적당한 사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 한국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문학보다 영화나 드라마다. 한국문학의 가능성이 이런 곳에서도 나올 거라고 본다. 이창동 감독이 <박하사탕>을 만들 수 있던 것은 그가 과거 소설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