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집과 디자이너 위한 인문학 강의 통해 디자인 문화 정립 노력

최범 디자인평론가에게 한국 디자인의 '정처 없음'은 오랜 화두다. 그는 평론집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서문에서 오늘날 한국의 디자인이 "구호에서 시작하여 포장이 되고 어느덧 쇼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세계화와 디자인 혁명과 경쟁력의 논리가 빚어낸 것은 과장된 제스처이거나 스펙터클로서의 디자인뿐이다. 디자인은 급기야 산업의 도구를 넘어 정치적인 선전선동의 도구가 되고 있다. 디자인이라는 이름의 애드벌룬이 두둥실 허공으로 떠오르고, 사람들은 모두 머리 위를 쳐다본다."

디자인이 삶의 자리에 스며들지 못하고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휘둘려 떠돌아다니는데 디자인 문화가 자라날 리 없다. 일상에 디자인에 대한 말은 많아도 좋은 디자인을 경험할 기회는 별로 없다. 말을 만들어내는 제도 속에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최범 평론가는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을 농사에 비유했다. 씨를 뿌리고 다듬어주고 돌봐주고 기다리는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호와 포장과 쇼로써 전파된 디자인 문화는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벼를 꽂은 격"이어서 자생력이 없다. 매일 먹는 밥이 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일상성을 존중하지 않고 디자인의 특이함을 말하는 모든 시도에 반대한다. '디자인 서울'에 대해 쓴 소리를 가장 많이 한 사람도 그다.

그가 해온 모든 작업은 결국 디자인의 적절한 자리를 찾는 것이다. 디자인을 부풀리고 띄우는 일을 비판하는 한편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일상적 풍경에 디자인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작년부터 KT&G상상마당에서 진행하고 있는 디자이너를 위한 인문학 강의도 그 일환이다. 아직도 기술자에 가까운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문화적 역할을 일깨우고 격려하는 것이 강좌의 취지다.

지난 11월 10일 '디자이너란 무엇인가-디자인의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강의에서 최범 평론가는 새삼스럽게도 디자이너의 사회적 자리를 다시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여러분들의 삶은 드라마나 영화 속 디자이너의 삶과는 다르죠?(웃음) 가장 큰 차이는 그들보다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그만큼 노동량이 많죠.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현대사회가 노동 중심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얻고 싶게 만들고, 따라서 더 많은 노동을 하도록 부추긴다는 거죠. 욕망을 적절히 조절하면 적당히 노동해도 먹고 살 수 있는데 말입니다."

자신이 사회의 일원임을 자각하는 디자이너라면 소비를 부추기려는 목적으로만 디자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욕망의 적절한 수준이 어디인지, 디자인이 삶의 방식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할 것이다. 디자인 문화는 이렇게 사람들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최범 디자인평론가를 만나 한국 디자인의 현실에 대해 물었다.

디자이너를 위한 인문학 강의를 마련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학교 교육 과정 내에 인문학적 접근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나요.

"인문학적 접근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한국 교육 제도는 디자인을 기술로 가르칩니다."

디자인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이유 중 하나겠네요.

"그 때문에 디자인계가 기능적 집단이 된 것 같습니다. 내부의 성찰과 논의가 활발하지 않으니 문화에 대한 고민도 많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정치·경제 영역이 '디자인 문화'를 부르짖는 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데요.

"시민들이 민주적으로 만들어내고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는 아니지요."

지난 평론집 제목이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지금 한국 디자인은 어디에 있나요.

"소비 대상 혹은 정치적 도구로 양분되어 있는 것 같아요. 문화가 빠져 있고, 일상과는 괴리되어 있죠. 서울디자인한마당 같은 행사가 그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원래 행사 이름이 '올림픽'인데다 스타디움에서 열렸어요. 디자인이 스포츠처럼 정치적 의도에 동원되었다는 인상이에요. 원래 삶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생존을 향한 몸부림만 있을 뿐 어떤 공동체적 감수성도 이웃에 대한 배려도 없는 간판만큼 한국사회의 난민사회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고 지적하면서 간판문화를 바꾸는 노력을 해오셨습니다. 최근엔 지자체들도 간판 정비 사업을 하고 있는데, 성과가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성과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업이 관 주도로, 획일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문제입니다. 그런 방식 자체가 비문화적이죠. 문화는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한국사회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디자인으로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부대찌개처럼 전통적인 것, 현대적인 것, 서구적인 것이 결합한 키치한 디자인을 들 수 있겠죠. 저는 예식장, 모텔, 대학 캠퍼스를 3대 키치 장소로 꼽아요.(웃음) 서구에 대한 모방 심리와 한국사회에 대한 콤플렉스가 대단히 강하게 나타나는 디자인이에요. 우리가 무엇을 욕망해 왔는지가 드러나죠."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에서는 "세계화가 한국 디자인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는데요.

"세계적인 것을 지향하는 흐름 속에서 지역적인 것, 동네적인 것, 골목적인 것이 간과되고 있잖아요. 세계적인 문화가 어느 날 머리 위에서 뚝 떨어지길 기대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문화는 동네와 우리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에요. 외국의 세계적 문화도 대부분 그렇게 만들어졌고요. 우리의 삶부터 정직하게 담지 않으면 한국 디자인은 세계화될 수도 없고, 설령 세계적이더라도 우리에게 아무 쓸모가 없어요."

일반인이 문화의 주체로서 한국 디자인에 대한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자신의 삶의 면면과 환경이 곧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은 디자인을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전문가더라도,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은 모두의 몫인 것처럼 전문가가 아닌 누구라도 충분히 디자인을 누릴 권리가 있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디자인을 다루는 언론의 시각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요.

"피상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거의 몇 가지 정형화된 담론에서 벗어나지 않지요. 주로 기업과 도시의 경쟁력을 강조하는 경제적 입장을 취합니다. 디자인의 일상 문화적 측면을 보는 감각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좋은 디자인이란 뭘까요.

"적어도 좋다고 써붙이고 소리치는 것은 아니지요. 그보다는 몸에 맞는 옷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