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아이돌
K-POP 신한류 일등공신, 학문적 접근 시도

음악페스티벌
아이돌 장악한 대중매체의 대안적 창구 기능


가수 지망하는 보통사람들의 희망 안고 인기

최근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에 대해 일본의 한 시사주간지가 "한국 걸 그룹의 침공"이라는 표현을 써서 화제가 됐다. 올 한해 국내에서 전개된 아이돌 전성시대의 클라이막스라 할 만한 일이다.

성황을 이룬 것은 아이돌 산업만이 아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줄줄이 이어진 음악페스티벌이 수만 명을 불러 모았다. 무대를 찾아 섬과 바다, 산과 공원을 찾아다니는 것이 새로운 대중음악 문화가 되었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한편 금요일 밤마다 TV에서 진행된 한 공개 오디션은 "당신도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환풍기 수리를 하며 행사장에서나 가끔 노래하던 청년이 스타의 기회를 거머쥐며 산 증인이 되었다.

이 와중에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아이돌을 꿈꾸게 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음악 때문에 눈물을 흘리거나 사랑을 결심했는지, 얼마나 많은 밴드가 해체를 선언했는지는 집계되지 않는다.

2010년 한해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 여파를 정리해 봤다.

연구대상이 된 아이돌

올해 아이돌 그룹이 '침공'한 것은 우리의 귀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눈과 관심, 대화와 정보망까지 장악해 버린 이들의 영향력은 단지 열풍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소녀시대
누구라도 TV만 켜도, 인터넷에 접속만 해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아이돌에 대한 새 소식에 포위되는 바람에 의 한승연이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7.5등신이라거나 티파니의 부상으로 가 당분간 8인조로 활동한다는 '정보'가 불과 몇 시간 만에 상식이 되는 시대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아이돌 그룹이 세력을 넓힐수록 이 현상을 둘러싼 궁금증도 늘어났다. 기획사의 사업 다각화 전략의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그에 조응한 사회 전반의 욕망이 있을 것이다. 아이돌에 대처한 우리의 열광적 자세에는 우리 자신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있을지 모른다. 이런 이유로 아이돌 그룹은 문화연구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는 작년 9월부터 팀을 꾸려 아이돌 팝문화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해 왔다. 그 내용을 3월부터 7월까지 문화사회연구소 월례발표회에서 공개했고 내년 1월에는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이 책에는 90년대 이후 한국 아이돌의 역사와 브라운아이드걸스 나르샤, JYP엔터테인먼트 정욱 대표의 인터뷰도 실린다.

세미나의 내용은 아이돌 문화가 일상에 얼마나 속속들이 파고들었고 한국사회의 병리적 증상과 새로운 습성을 어떻게 매개해 드러내는지를 보여준다.

슈퍼스타K
예를 들면 10대 걸 그룹에 환호하는 30~40대 남성들의 팬 문화를 일컫는 '삼촌팬덤'을 사회의 경쟁적 분위기, '초식남' 현상 등과 결부지어 이해하는 식이다. 아이돌의 사생활까지 '콘텐츠'로 팔리게 된 바람에 24시간 내내 카메라 앞에 자신을 노출해야 하는 '아이들'의 감정노동, 2PM 멤버 박재범이 팀을 탈퇴한 과정에서 불거진 민족주의 논란 등도 포함됐다.

요즘은 아이돌 그룹을 내세운 K-POP 한류의 실체가 뜨거운 감자다. 국위선양의 이미지 이면의 산업적 효과와 문화적 의미를 정확히 따져보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동연 교수는 "지금 성과가 연예제작 시스템의 독점화, 획일화를 정당화할까봐 우려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 선전에 파묻혔지만 동방신기와 SM엔터테인먼트 간 '노예계약' 법적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박준흠 가슴네트워크 대표는 "한류와 관련된 문화정책을 체계화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돌 그룹의 일본 진출 전략과 그 득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돌 전성시대는 도대체 언제까지 지속될까. 수많은 걸 그룹 멤버들의 이름을 외우고, 빠른 템포의 노래를 헉헉대며 따라 부르는데 지친 이들도 있지 않을까. 박은석 음악평론가는 "적어도 걸 그룹의 전성기는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등 몇몇 강자를 제외하고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그룹들은 곧 정리되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하지만 그것이 아이돌 시대의 폐막을 알리는 서곡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아이돌은 하나의 대중음악 '장르'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박은석 평론가는 "또 새로운 아이돌 상품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아이돌이 이젠 해외 시장에서 뭔가 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음악페스티벌에 푹 빠지다

한국에서 음악페스티벌이 성황을 이룰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도 지난 10월30일 KT&G상상마당에서 '페스티벌은 음악의 미래인가, 거품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선뜻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록페스티벌은 안 된다'라는 게 중론이었다. 시장은 없었다. 몇 번의 좌절된 시도만 있었다. 한데, 올해 여름은 록페스티벌의 계절이었다. 3주 간격으로 세 개의 페스티벌이 열렸다. 10월은 더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즌 내내 페스티벌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사례만 봐도 화려하다.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1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아시아 최대 규모 음악페스티벌로 발돋움했으며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은 8만 명,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은 3만 명의 관객이 찾았다.

카라
특히 강렬한 록음악과 캠핑 등 음악페스티벌의 '하드코어'적 이미지와 다르게 올림픽공원으로 소풍가는 콘셉트로 꾸려진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은 "하이힐 신고 갈 수 있는 유일한 페스티벌"로 알려지면서 여성 관객을 대거 끌어들였다.

페스티벌 인구가 왜 이렇게 갑자기 늘어난 것일까. 김작가는 "음악 소비 패턴이 달라졌다"는 점을 꼽았다. "CD 대신 음원을 들을 때 충족되지 않는 음악 소장의 욕구가 공연이나 페스티벌 쪽으로 몰린 것 같다.

음악에 대한 체험은 복제되지도 재연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촛불집회로 확인됐던 광장에의 욕구, 모바일 미디어를 통한 실시간 소통이 촉발한 동일시의 욕구"가 더해져 페스티벌을 달궜다는 것이다.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는 뮤지션 대부분이 인디신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는 해석도 있다. 페스티벌이 아이돌이 장악한 대중매체의 대안적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디음악 레이블 루비살롱의 이규영 대표는 "매체가 공평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인디음악의 인기가 높아졌는데도 전혀 노출이 안 된다.

페스티벌의 성황은 이런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사운드홀릭의 구태훈 대표 역시 "그랜드민트페스티벌 기간 동안 음반이 하루에 1만 장씩 팔렸다"며 페스티벌에서 희망을 찾았다. 인디음악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2008년 무렵부터 페스티벌은 인디음악의 든든한 파트너였다.

그러다 보니 페스티벌은 인디 레이블 간의 교류와 협력의 장이 되기도 한다. 연말 열리는 음악페스티벌 카운트다운판타지는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의 기획사인 민트페이퍼와 인디음악 레이블 MPMG, 사운드홀릭, 루비살롱이 함께 주최한다. 이규영 대표는 "말하자면 홍대 앞 버전 '가요대상'이다.

올 한해 인디음악신에서 중요했던 음악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마다 쏟아지는 '아이돌 대상' 프로그램에 채널 선택권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던 음악팬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이다.

하지만 현재 음악페스티벌의 관객이 반드시 음악을 즐기러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페스티벌이 대중음악계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는 데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다. 많은 관객에게 음악페스티벌은 음반을 사는 것보다는 등산을 하는 것에 가깝다. 아웃도어 라이프 스타일의 일환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음악페스티벌은 너무 많기도 하고, 너무 적기도 하다. 서정민갑 음악평론가는 "음악페스티벌이 더 확장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수는 많아졌지만 대부분 적자다. 투자가 늘어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박은석 평론가는 "음악 자체에 애정이 없던 관객이라도 이런 현장을 통해 음악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런 관객이 늘어난다면 대중음악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일종의 학습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 오디션 <슈퍼스타 K>와 달빛요정의 도토리 괴담

전 국민을 잠정적 가수 지망생으로 지목해 성공한 TV 프로그램 <슈퍼스타 K>는 무엇을 남겼을까. 서정민갑 평론가는 <슈퍼스타 K>의 성공 내러티브에 주목한다.

우승자인 허각의 드라마틱한 인생이 불평등한 한국사회에 절망한 보통 사람들에게 일종의 '처방전'으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140여 만 명이 지원했다. 엄청난 숫자 아닌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회가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슈퍼스타 K>의 인기는 불평등한 한국사회에 대한 병리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지난 11월 초 인디 뮤지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 씨의 사망을 둘러싸고 다시 불거진 디지털 음원 수익 배분 구조 문제는 불평등한 한국사회의 단면이다. 현재 디지털 음원 시장 구조는 판매 수익이 창작자와 제작사보다 통신사 등 판매·유통 업체에 더 많이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음원 사이트가 수익의 51.5%를 가져가고, 저작권료 9%와 실연권료 4.5%를 제외하면 제작사의 몫은 35%다. 그 중에서 다시 약 7%를 음원 유통사가 가져가고 기획사와 뮤지션은 나머지 28%를 나눠 갖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디지털 음원 판매도 그 수익이 절실한 인디 뮤지션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진원 씨가 도토리라는 사이버 머니로 자신의 몫을 받았다는 괴담이 떠돌면서 시장 구조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일부 뮤지션의 문제가 아닌 대중음악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에서 공론화해야 할 이슈다. 창작 환경이 개선되어야 다양하고 혁신적인 음악이 계속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연 교수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불균형한 상황은 한국 대중음악계에도 한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작권과 음원 시장 문제를 포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음악산업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