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마술사, 샤갈전] 12월 3일~3월 27일 서울 시립미술관서 160여 작품…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 7점 모두 공개

모스크바에서 유대인 예술극장을 위한 스케치 작업 중인 샤갈, 1920년 11월 ⓒArchives Marc et Ida Chagall, Paris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 밤에 아낙들은 /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에서)

마르크 샤갈(1887-1985)의 <나와 마을>에서 영감받았다는 이 시는 호젓한 시골 마을의 풍경과 색채가 눈앞에 보일 듯 생생하다. 샤갈의 마을, 그리스 정교회당과 유대교 예배당이 자리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비테프스크. 유대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그 마을은 샤갈의 기억 중추에 굳게 자리하며 평생의 테마가 된다.

샤갈은 러시아 유대인 태생으로, 47세에 프랑스에 귀화했다. 98년의 생을 사는 동안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겪었지만 그가 완성한 작품 속에는 한 줌의 어둠도 스며들지 않았다.

낙천적인 동심을 지닌 '색채의 마술사'는 초기 입체파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곧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20세기 색채회화의 독보적인 화가, 마르크 샤갈이 6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는다. 12월 3일부터 내년 3월 27일까지 샤갈의 대규모 회고전이 한국일보 주최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셍폴의 저택 라 콜린느에서의 샤갈, 1977년 ⓒArchives Marc et Ida Chagall, Paris
70만 명 관람이라는 국내 기록을 세운 2004년 전시에 이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시적이면서도 화려한 샤갈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기념비적 전시로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대거 선보인다.

전 세계 30여 공공미술관과 개인소장자들로부터 모은 160여 점이 온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샤갈 미술의 보고라 불리는 프랑스 국립 샤갈미술관 소장작품부터 뉴욕현대미술관 (MoMA), 런던 테이트,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자미술관, 벨기에왕립미술관, 모스크바 푸슈킨미술관, 국립트레티아코프갤러리,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러시아미술관, 프랑스국립도서관 및 샤갈재단 등이 선뜻 작품을 빌려줬다.

이들 중엔 미술시장에서 평가액이 천정부지로 솟은 명작들과 지금껏 한 번도 미술관 외부로 나온 적 없던 작품도 다수 포함됐다. 작품의 보험평가액은 총 1조 원에 달하며 불과 20여 점의 보험평가액만 해도 6000억 원을 넘는다.

샤갈 작품 세계의 총체적 조명

샤갈의 '누워있는 시인' 1915, 패널의 유화 ⓒMarc Chagall-ADAGP, Paris-SACK, Seoul, 2010
유화와 판화, 스테인드글라스를 비롯해 오페라 하우스나 미술관 등 건축물 벽화와 천장화에 이르기까지, 샤갈의 손길이 닿지 못할 곳은 없었다. 하물며 그는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불새>의 의상디자인까지 맡을 정도로 정력적이고 다재다능한 화가였다.

그는 '변형'에 능한 화가였다. 야수파의 강렬한 색채와 입체파의 공간의 개념을 받아들인 샤갈은 개인적 경험과 상상력을 더해 독창적인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이후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샤갈의 작품은 시기별로 크게 '러시아 시기'(1910-1922), '파리시기'(1923-1941), '미국 망명 시기'(1941-1948), 그리고 '프랑스 정착 시기'(1948-1985)로 나뉜다. 그러나 총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6개의 대표적인 테마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나와 마을, 러시아 시기', '성서 이야기', '사랑과 연인',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 '서커스', '종이작품' 등이다.

"내 그림 중 비테프스크에서 영감을 받지 않은 작품은 한 점도 없다." 자서전에 담긴 마르크 샤갈의 고백이다. 그의 고향의 토속적이고 소박한 일상은 수많은 그림 속에 전체 혹은 일부가 되어 신비한 이미지로 담겨 있다.

샤갈의 '비테프스크 위에서' 1915-1920, 캔버스에 유화 ⓒMarc Chagall-ADAGP, Paris-Seoul, 2010
대표작인 <나와 마을>, <도시 위에서>, <산책>, <비테프스크 위에서> 등이 '나와 마을, 러시아 시기'에 전시된다.

유대인으로, 유대인 공동체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샤갈은 색채나 형상으로 종교적 이미지를 담아내곤 했다.

가령, 짙은 파란색은 평화와 우애의 메시지를 전하는 종교적 색채이고, 그림 속 등장인물들에겐 심심찮게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기도 하다. 그는 성서 말씀을 진지하게 회화로 작업해왔는데, 그 작품들이 2부 '성서 이야기'에 걸린다.

삶과 예술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내재한 샤갈의 작품엔 유유히 사랑이 흐른다. 3부 '사랑과 연인'에선 사랑하는 연인을 통한 삶의 기쁨을 담은 작품이 소개된다. 그가 아끼는 소재였던 서커스를 소재로 한 작품은 5부에 등장한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샤갈 예술의 웅장함을 보여줄 4부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에 있다. 샤갈의 러시아 시기에 총 7점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50년 넘게 창고에 방치되어 있다가 1987년 스위스 재단의 도움으로 5년간의 복원을 거쳐 원형의 모습을 찾았다.

<유대인 예술극장 소개>, <결혼 피로연 테이블>, <무대 위의 사랑>, <문학>, <연극>, <음악>, <무용> 등이 완전한 형태로 전시된다. 특히 <유대인 예술극장 소개>, <결혼 피로연 테이블>은 폭이 8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으로 아시아 최초로 전시된다. 마지막 6부에서는 샤갈이 평생 작업해온 다양한 삽화들을 엄선해 선보인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