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서 작가 인터뷰] '로직'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매직'으로 대응… 다양한 작업

유병서 작가는 자신의 퍼포먼스 작업을 '흑마술'이라고 설명한다. '로직'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매직'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상 이론을 공부한 그는 작년 '한예종 사태' 때 고민한 바가 깊다.

"주변에서 정치적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하지만 정치적 반박이 가능하려면 기존의 정치적 언어가 논리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지요. 그렇다면 예술이 할 일은 오히려 원시적 힘을 끌어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만들어진 사회, 만들어진 목적과 의미에 반대하는 입장에서요."

그래서 유병서 작가의 작업은 주술에 가깝다. 지난 6월 <디자인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 전에서는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이 "쓸 데 없는 것을 너무 많이 만들어낸다"는 문제의식으로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흑마술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세상이 포화 상태에 이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물질을 너무 많이 만들고, 너무 많이 버리죠. 미술 전시를 한 번만 해도 쓰레기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요. 그래서 내 작업에서만큼은 만드는 것을 중지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순간에만 볼 수 있고, 사라져 버리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지난 7월 송은갤러리에서는 벽면을 자신의 이름으로 뒤덮은 '작품'을 단 하루만 '설치'하고 지워버린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약 2주 동안의 전시 기간 동안 전시장은 비워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유병서 작가의 작업은 "세상에 개입하는 지점"이 중요하다. 종종 사회적으로 첨예한 현장에서 벌어진다. 작가는 지난 5월 재개발 사업으로 헐릴 위기에 놓인 서울 홍대 앞 칼국수집 '두리반'에서 열린 공연 <51+>의 아트 디렉팅을 담당했고, 6월에는 두리반에서 출발해 재래시장인 성남 모란시장과 최신의 인공도시인 송도국제신도시를 잇는 '그랜드 투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개발로 인한 삶의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코스였다.

"송도국제신도시는 자연에 대적한 인간의 의지가 최대로 발휘된 인공적 피조물이잖아요. 두리반과 모란시장을 거쳐 송도국제신도시에 가보니 그 차이가 몸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 맥락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세상에 대해 같이 보아야만, 보이지 않던 것이 드러나니까요."

한때 "68혁명의 기폭제가 된 예술적 상상력"에 희망을 품었던 그는 동료들과의 협업을 통해 사회와 예술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 두리반 작업 때 만난 이들과 '미완성 포럼'이라는 팀을 만들어 공부와 작업을 병행한다.

최근에는 부릅뜬 눈 아이콘을 그려 넣은 거대한 검은 지네 모양 조형물을 광화문, 시청 앞 광장, 남산 등 공공장소에 띄우며 돌아다니는 퍼포먼스를 했다.

눈 아이콘은 미국 1달러 지폐 뒷면에 그려진 문양에서 따온 것. 신화적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비밀 결사 프리메이슨 연루설을 낳기도 한 문제적 문양이다. 확대해 놓으니 더욱 뜨악하고 음산한 인상이다.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그 눈을 일상 속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장 눈에 보이고 쉽게 말해지는 세상의 이면이나 근원에 대해서 조금은 돌아보게 되었을까. 유병서 작가는 곧 이 퍼포먼스를 다큐멘터리로 작업할 계획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