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속의 가족들은 언제나 행복한 모습이다. 앞뒤 2단으로 배치된 가족 구성원은 대개 부모가 앞쪽 의자에 앉고, 자녀들이 뒤쪽과 양 옆에 서며 안정된 대열을 갖춘다. 마치 '행복한 우리 가족'이라는 테마로 찍은 것처럼.

온 국민이 합의한 바도 없는데, 우리네 거실에는 대개 이런 설정의 가족사진들이 걸려 있다. 인물들의 표정이나 배경과의 조화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어머니는 다정하면서도 인자한 미소를 짓고, 아버지는 점잖고 권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 뒤나 옆에 서 있는 딸은 소녀에게서 성인으로 예쁘게 자란 모습이고, 아들은 아버지와 닮은 의젓한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환한 이들의 표정 뒤로는 어두운 배경이 놓여져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 더 대비된다.

집집마다 있는 쌍둥이 같은 이 가족사진의 정체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표면적으로는 이 가정의 경제적 계층을 설명해준다. 거실의 크기에 따라 더 커지고 고급화된 액자와 사진은 가정의 경제지수를 대변한다.

내적으로는 부모 세대의 자기 위치 확인이다. 한 연구는 '가족사진 찍기'가 중년 여성이 상실된 자기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자리를 확인하는 절차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족사진의 정형화는 비단 사진관 아저씨의 매너리즘 때문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가족사진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한국의 현재를 카메라에 담은 독일 사진작가 토마스 스트루스는 다음 시리즈로 한국의 가족 초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사진관 외벽에 걸린 가족사진들에서 '완벽한 가족을 표현하려는 강한 욕구'를 읽어냈고 이에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사진의 발명과 가족사진의 탄생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회화에도 가족의 초상이 있었지만 '가족이 함께 일렬로 서 있거나 몸을 서로 밀착해 피의 유대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사진이 발명된 이후부터'(진동선 사진평론가)다.

진 평론가는 초상사진 중에서도 인물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진이 바로 가족사진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사진사에서 가족사진은 하나의 장르로 구분되거나 계보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가족사진은 사진관에서 작위적인 포즈와 표정으로 이상적인 가족을 구현해내는 도구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또 남의 가족사진을 집안에 걸어둔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보니,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사진관 밖으로 나온 가족의 초상은 이런 전형적인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가족사진의 전통적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축한다.

가족이 가진 테두리는 억압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가부장주의, 현모양처, 스위트 홈 같은 가족 이미지나 이데올로기는 한국전쟁 이후 해체되어 왔다. 90년대부터는 '해체됐다 다시 만들어진 가족'의 다양한 초상이 미술에 반영되기도 했다.

현대의 가족사진은 가부장적 가족 이미지의 공고함에 저항하며 동성애 커플, 다문화 가정, 기러기 가족 같은 제3의 가족까지 프레임에 담고 있다.

나의 가족

딸의 사진을 편집한 영상이 유튜브에서 연일 화제다. 영국의 한 남성이 10년 동안 촬영한 딸의 얼굴 사진을 이어 붙여 1분 25초의 영상을 만들었다.

이미 2년 전 유튜브에 올려졌지만 최근에 새삼 네티즌들의 화제를 모으며 200만 회 조회를 넘어섰다. 영상을 본 이들은 한결같이 아버지의 지극한 헌신과 사랑에 감동했다는 반응이다.

이 영상은 곧 사진집 <윤미네집>을 떠올리게 했다. 성균관대 부총장을 지낸 고 전몽각(1931~2006) 씨가 큰딸 윤미가 태어나 결혼할 때까지 26년을 찍어온 다큐멘터리 사진집이다. 올해 초, 20년 만에 재발간된 책은 사진집으로선 이례적으로 4쇄를 찍었다.

카메라의 앵글을 늘 딸과 두 아들, 그리고 아내에게 맞추었던 아마추어 사진가 전몽각 씨. 찌그러진 냄비, 기워 입은 내복, 한가지 반찬의 소박한 밥상은 넉넉지 않은 세간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육아에 지친 아내, 사춘기 소녀의 심드렁한 표정까지 들어간 책 속엔 연출로는 얻을 수 없는 웃음이 무엇보다 화사하다. <윤미네집>이 책 재발간에 이어 32년 만에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전시도 연다.

셀리 만의 'lmmediate Family' 시리즈
이같이 뜨거운 호응이 계속되는 걸 보면, 독자들이 과거로부터 유일하게 소급하고 싶은 따뜻한 가족의 모습을 바로 이 책에서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사진작가 셀리 만 역시 버지니아 외딴 오두막에서 자신의 두 딸과 아들의 성장 과정을 담아낸 사진작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사진 속에선 아이들에게 강요되는 혹은 떠올려지는 천진난만하고 천사 같은 이미지를 빗겨간다.

숲 속에서 거의 벗은 채 생활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때론 에로틱하고 때론 신비롭다. 그녀가 사용한 100년 넘은 대형카메라와 그녀가 만들어내는 사진상 기법, 가령 스크래치나 흔들림, 블러 효과 등은 자녀를 '야성의 아이들'로 그려내고 있다. 때문에 보수단체들로부터 아동학대와 아동포르노라는 비난의 화살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 이유는 명백했다. 훗날 아이들이 자신들의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성장한 자녀들은 이제 뿔뿔이 각자의 삶을 살고 있고, 셀리 만 역시 자신과 자신의 남편을 대상으로, 죽음과 상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사진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1975년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아내와 그녀의 세 자매를 촬영해오는 미국의 유명 포토그래퍼도 있다. 니콜라스 닉슨은 각각 25, 23, 21, 15살이던 네 자매의 모습을 <브라운 자매>로 담아내고 있다.

니콜라스 닉슨의 '브라운 자매들', 1996
늘 같은 자리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네 자매는 일 년에 한 차례, 사진을 찍기 위해 모였다. 자매 중 한 명이 일본에 사는 동안 작업이 중단될 위기도 있었지만 장인, 장모의 도움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닉슨은 죽을 때까지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기 위해" 브라운 자매를 찍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너의 가족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살까?'라는 의문은 나의 가족을 넘어 타인의 가족에게 앵글을 맞추는 계기를 만들곤 한다. <여자의 집 I, II> 시리즈와 <트윈스 Twins> 시리즈로 이어지는 이선민 작가의 작업도 처음엔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양육과 살림이라는, 결혼한 여자의 소소한 일상이 담긴 <여자의 집 I>은 자연스럽게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의 단면을 들춘 <여자의 집 II>로 이어졌다.

대가족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시댁과 안방에서의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대부분 부엌에서 일하는 여성이 안방에서 보이는 때는 휴식이 아닌 일의 연장일 경우가 많다.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카메라 렌즈를 맞춘 그녀의 사진 속에선 가족이라는 공동체 신화를 유지하기 위한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의 희생에 초점 맞추어졌다.

이선민의 <여자의 집Ⅱ-서상석의 집, 추석풍경>
그러나 이후 그녀는 <트윈스>와 강원도 도계를 배경으로 한 <도계 프로젝트>로 다양한 한국의 가족문화에 대한 시각을 확장시켜 가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베스 야넬 에드워드는 자신이 사는 공간이나 물건으로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확대경을 들이댄다.

처음엔 자신이 거주하는 실리콘밸리 지역 주민들의 만족감이 카메라를 들게 한 이유였다. 자신에겐 지루한 일상이었지만 이웃들은 나름대로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며 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를 시작으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100여 가구 넘게 찍어온 중산층 가정의 모습은 시리즈로 담겼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그녀는 최대한 가족의 일상을 많이 알아내고 그것을 기반으로 약간의 연출을 가미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들이 일요일 밤에 무엇을 하고, 집안에서 어떤 장소가 가장 편안한지 등의 소소한 일상의 정보들. 적당히 풍족한 중산층 가족의 이미지에서 중심은 사람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 가족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때로는 브랜드화하기도 하는 공간과 물건도 세심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선민의 <도계 프로젝트-김시남의 집, 제사풍경>
경계의 가족

하나의 얼굴색을 가진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가 한 공간에 사는 가족은 어쩌면 앞으로 점점 보기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다.

매년 3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외국인 남성 혹은 여성과 결혼하고 있고, 가정의 단위도 아빠, 엄마, 아이가 아니라 싱글 혹은 부부, 그리고 동성애 커플 등 그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정의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신 역시 외국인 남성과 결혼한 김옥선 작가는 국제 결혼한 커플과 동성애 커플을 촬영해왔다. 굳이 그들이 사는 공간과 함께 촬영해온 건, 그 공간 안에서 이들 커플의 충돌과 타협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일 거다.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개인적인 성격 차이인지, 문화의 차이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 작업의 시작이었다.

베스 야넬 에드워드의 'Suburban Dreams' 시리즈
다른 문화적 환경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공생 방식은 사진 속 엇갈린 시선과 이질적인 집안의 소품들, 각기 개성적인 포즈로 드러난다. 다문화 가정과 동성애 커플의 모습은 확장된 가족으로서의 어떠한 편견도 없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아빠 혹은 엄마의 부재는 비단 동성애 커플에게만 나타나지 않는다. 합의된 이산가족, '기러기 가족' 역시 전통적인 가족과는 다른 모습이다.

캐나다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또한 자신도 한시적인 기러기 가족을 경험한 이명숙 작가. 그녀는 기러기 가족이 단지 자본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의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여성 문제이자 교육의 문제일 수 있음을 기러기 가족 연작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성훈 작가가 필리핀에서 만난 아이들 속엔 한국인을 닮은 아이도 있었다. 여러 피부 색을 가진 아이들이 뒤섞여 어울리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그곳의 풍경. 그곳에서 작가는 이제 막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의 현실을 떠올렸다.

우리와 피부색만 다를 뿐 똑같이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인의 몸짓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아이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편견은 사실상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다.

이명숙의 '벤쿠버의 이지은 가족'
박상훈 작가는 한국의 다문화 가정이 아닌, 필리핀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한국인 다문화 가정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가족사진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냈다. 피부 한 꺼풀 벗으면 모두 같은 인간일 뿐이다.

참고 서적
박영택 <가족을 그리다>
최연하 <사진의 북쪽>
진동선 <한 장의 사진미학>, <좋은 사진>


박성훈의 'Mr Kim's Family', 2009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