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ㆍ재즈ㆍ국악ㆍ연극 창작자 사로잡은 공연

연극 <안티고네>에서 열연한 배우 박완규와 박윤정
2010년 공연계를 하나의 경향이나 단어로 묶어낼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동안 공연계의 중심에 섰던 뮤지컬이 올해는 주춤했다.

3년의 준비기간 끝에 선보인 라이선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예상대로 관객의 호평을 이어간 것을 제외하면 재 공연작이 대부분인 무대였다. KBS TV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과 제대 후 무대로 돌아온 조승우가 한동안 화제의 중심에서 회자됐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뮤지컬은 제외된 공연계, 클래식/재즈/국악/연극 등의 무대에서 발견한 의외의 참신함은 무엇이었을까. 각 장르 창작자들에게 '올해의 공연 혹은 인물'에 대해 들어봤다.

연극연출가 김동현

올해 연극계에서 이견 없이 호평을 받은 작품은 최용훈 연출가의 <에이미>였다. 그러나 '새로움'에 방점을 찍는다면 단연 <안티고네>(김승철 연출, 극단 백수광부 제작)다.

연극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 역을 맡은 이순재
동국대 출신의 배우이기도 한 김승철 연출가는 각색과 극작도 한다. 그는 올 여름,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안티고네>라는 그리스 비극을 잘 살려냈다. 격투가 벌어지는 K-1 링을 연상시키는 사각의 무대, 음악과 조명의 효과와 거친 소리, 배우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근래에 보기 드문 다이내믹한 그리스 비극으로 완성됐다.

연극적 공간을 하나의 싸움터로 만들어 관객을 본능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크레온 왕의 박완규와 안티고네 박윤정의 연기 역시 탁월했다. 배우 출신의 연출가와의 작업 덕에 그들이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승철 연출가는 올해 말, 백수광부의 <미친극>에서 배우로 무대에 선다.

작가 오은희

최근에 본 연극 <돈키호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배우의 신구(新舊) 조화가 잘 이루어져서 누구 하나 모나지 않는 하모니를 보여줬다. 무대 옆에서 라이브로 연주한 2인 밴드와 1인 다 역의 조연들은 극의 활력을 주는 요소였다.

재즈평론가 남무성이 메가폰을 잡은 재즈 다큐 영화 <브라보! 재즈라이프>의 한 장면
장면 전환에서 앙상블들의 춤과 노래를 활용한 부분과 풍차 신이 특히 아름다웠다. 경직되지 않은 채 쉽게 풀어낸 양정웅 연출의 각색과 연출이 돋보였다.

어두운 사회에서 꿈꿀 수밖에 없는 돈키호테의 상상 신은 유머의 코드와 함께 묘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공연에서 돈키호테 역을 맡은 이순재 씨는 가장 돋보이는 존재다. 75세의 나이에도 극중 인물에 완전히 투영된 것 같은 모습에 노배우를 향한 존경심이 절로 생겨난다.

작곡가 진규영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한 알반 베르크 오페라 <룰루>가 인상적이었다. 초연인데다 작품 자체가 굉장히 어려워 연주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보았는데, 매우 만족할 만한 연주를 들려줬다. 주연뿐 아니라 조연들도 세련된 매너와 노래로 완벽한 공연을 완성했다.

특히 타이틀 롤을 맡은 소프라노 박은주 씨의 역할이 대단했다. 또 오페라를 반주한 TIMF 앙상블은 통영 국제음악제와 함께 탄생한 연주단체이지만 현대 오페라 반주 단체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공연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오페라 <룰루>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소프라노 박은주
작곡계에서는 한 명의 작곡가보다 그들이 모여서 진행한 행사가 중요했던 한 해로 보인다. 국제 현대음악제인 범 음악제와 대구 국제현대음악제가 국가의 지원과 예산 부족에도 작품과 연주 수준을 유지하느라 노력한 흔적이 느껴졌다.

재즈보컬 웅산

뮤지션은 아니지만 올해의 인물로 재즈평론가 남무성 씨를 꼽고 싶다. 재즈매거진 'MM JAZZ'와 '두밥'의 편집장이었던 그는 재즈 100년사를 대중적인 만화로 풀어낸 <재즈 잇 업!>을 출간하기도 했다.

최근엔 <브라보! 재즈 라이프>라는, 한국 재즈 1세대를 조명한 영화를 만들지 않았나. 나도 재즈보컬로서 재즈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내가 아는 한, 재즈의 대중화에 사명감 있는 사람이다. 영화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던 그가, 재즈를 담아내기 위해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10만 명의 관객도 동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성과와 관계없이 그의 무모함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퓨전국악 그룹, 프로젝트락의 이충우

국악계 출신의 두 인물의 활동이 인상적이다. 진성수 씨는 현재 지휘자이지만, 과거에는 KBS 국악관현악단에서 피리를 연주하던 분이었다. 이후 미국에서 지휘공부를 하고 돌아왔는데, 지난 6월에는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아랑>의 지휘를 맡았다.

국악과 서양음악에 대한 이해가 모두 뛰어나다. 게다가 국악을 베이스로 하기 때문인지, 어떤 지휘자보다도 박자 감각이 탁월하다.

연극이었다가 올해 뮤지컬로 무대에 오른 <왕세자 실종사건>에서 작곡을 맡은 황호준 역시 주목할 만하다. 본래 국악작곡가이지만 뮤지컬 음악에 이어 이젠 오페라 음악까지 작곡하고 있다. 특히,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은 소극장 공연임에도 굉장히 세심하게 노력한 흔적이 돋보였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