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 현실의 사건 통해 새로운 상상력 스크린 수놓다

<의형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덕에 '영화가 분발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극적인 현실의 사건을 모티프로 삼아 새로운 상상력을 얻곤 한다.

올초 개봉한 에는 남파 간첩이 남한에 망명해서 살고 있는 김정일의 '육촌'을 암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1997년에 실제로 있었던 '이한영 암살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은 당시 망명 후 남한에서 살고 있었다. 장훈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만든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표면화시키지 않으려고 했다"고 털어놓는다.

올해 많은 화제를 뿌렸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도 수년 전 실제 사건들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다. 장철수 감독은 "세 건의 인상적인 사건들이 모티프가 됐다. 1991년 남원에서 발생한 '김부남 사건', 1992년 충주에서 일어난 '김보은, 김진관 사건', 그리고 최근 벌어진 '밀양 여중생 사건'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업영화의 경우 하나의 모티프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되기까지는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상대적으로 이 같은 시간적, 자본적 제약이 덜한 것은 독립영화 쪽이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중 '두근두근 어버이연합' 에프소드
얼마 전 끝난 서울독립영화제엔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서 모티프를 얻은 영화들이 저마다 첨예하게 현실성을 드러냈다. 88만 원 세대와 이주노동자, 동성애자와 장애인, 여성 등 소수자들에게서 모티프를 얻은 <민원인>, <사랑은 100도씨>, <시설장애인의 역습>, <은진>, <죽은 개를 찾아서> 같은 영화들도 등장했다.

인터넷에 한 편씩 순서대로 연재하는 방식으로 2010년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대중과 친숙한 통로를 열었던 윤성호 감독은 문제의 인디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서 극우단체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에 대한 시선을 드러내 관심을 모았다.

특히 6번째 에피소드 <두근두근 어버이연합>에서는 안기부 매점에서 30년 넘게 근무해온 부모님의 시선을 빗대 유머러스하게 이들을 풍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아버지는 좌파 정권에 대한 비난과 함께 따분한 설교를 늘어놓는다.

"그분들도 외롭고 고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런 행동들도 한번 살아보려고 하는 몸부림이 아닐까." 그래서 윤 감독은 이 에피소드에서 그들을 공격하고 때려부수기보다는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상업영화에서도 이 같은 사회 속 모티프 얻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해영 감독은 최근 연평도 사건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독특한 반응을 접하고 흥미로웠다고 말한다.

"실제로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사람들은 그냥 머릿속이 하얘져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영화 속 문법은 먼저 머릿속에 공포를 심어두고 자의식을 갖게 하면서 공포심을 배가시키는 것인데, 실제의 맞닥뜨린 상황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 감독은 연평도라는 공간을 다른 상황으로 치환해도 이 설정은 여전하다고 말한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도 결국 이와 비슷한 상황을 그린 것이다.

압도적인 공포로 인해 '멍해진' 사람들. 머릿속이 하얘져버린 대중의 긴장감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다. 이를 정치권에 대한 풍자로 그려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