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에서 소셜지성으로, 위키피디아, 트위터 등 온라인 기반 일반인 참여 급증

30대 후반의 직장인 A씨는 출근 중 트위터 친구들로부터 한남대교 남단부터 도로가 막히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바로 우회로인 반포대교 교통 상황을 전하는 친구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인 B군은 주말 내내 페이스북 친구들이 보내온 '통큰 치킨' 패러디 자료들을 보며 낄낄거리며 보냈다.

국군의 연평도 사격 훈련의 첫 포격 소리는 뉴스매체가 아니라 여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트위터리안들을 통해 울려 퍼졌다.

존재만으로 가치 있는 당신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는 화두는 20세기 초반에 등장했다. 다수의 개체들이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된 집단의 지적 능력을 뜻하는 이 말은 개미를 관찰하던 곤충학자가 처음 만들어낸 말이지만 100년 후 인간들의 온라인 세계에서 완벽한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당연히 한 사람의 지성인보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강합니다. 평범하다는 말이 주는 뉘앙스 자체에 오해가 있어요. 모든 사회인들에게는 각자의 세상이 있습니다. 저마다 자기 분야에 대해 지식을 가지고 있죠. 그들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심오한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자기 분야, 이를테면 미용, IT, 홍보 등 세분화된 영역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부문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송인혁 씨는 얼마 전 <모두가 광장에 모이다>라는 책을 공저했다. 송 씨를 비롯해 수십 명의 평범한 트위터리안(트위터 사용자들)들이 사례 제공, 감수의 방식으로 저술에 참여했다.

소셜 라이팅(social writing)이라는 기법으로 쓰여진 이 책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책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집단의 힘을 증명한다.

책에 따르면 범인(凡人)들은 '보통'이라는 꼬리를 달아주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너무 많은 경험, 너무 많은 뇌세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라디오에서 들었던 팝송의 제목을 궁금해 한다고 치자.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팝 칼럼니스트라고 해도 그 제목을 알고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설령 알더라도 그에게 답변해줄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질문이 온라인상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경험, 기억이 넘실대는 그곳에서 질문자는 "딴딴딴으로 시작해서 둥둥둥으로 끝나요" 같은 허접스런 질문을 하고도 단번에 원하는 답변을 들을 수 있다.

굳이 음악적 지식이 없어도 상관 없다. <모두가 광장에 모이다>에서는 한 가지 사례가 등장한다. 시드니에 사는 재운 씨는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는 사고를 당한다.

폐쇄공포증에 걸리기 직전의 그는 트위터를 통해 '지금 엘리베이터에 갇혔는데 무서워 죽겠다'는 내용의 트윗을 그의 팔로워(follower)들에게 보낸다. 재운 씨를 팔로잉한 트위터 친구는 '헐…얼른 탈출하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리트윗을 통해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그 소식을 알린다.

이어서 '어떡해요', '외부에 연락은 하셨어요?' 등등의 메시지들이 연이어 그의 스마트폰을 울린다. 낯 모르는 사람들이 보내온 온갖 종류의 걱정은 그가 구출된 1시간 후까지 계속됐다.

그가 받은 '헐, 어머, 어떡해요' 같은 메시지에는 전문 지식도, 문장력도, 날카로운 견해도 찾아볼 수 없지만 그를 폐쇄공포증에서 구한 원동력이 되었다.

개인의 지식, 개인의 시간, 그가 존재하는 공간, 그곳에서 얻은 경험을 포함한 개인의 존재 자체가 자산이 됐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제 아무리 지구 최고의 지성이라 해도 지금 반포대교를 지나고 있는 사람보다 더 현지의 교통상황을 잘 알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이를 가치로 구현해낸 것은 트위터와 같은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이다. 유엔미래포럼 회장 제롬 글렌은 이미 "미래 산업은 오픈 소스와 집단지성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위키피디아, 트위터, 페이스북, 플리커, 유튜브 등 오픈 소스를 기반으로 보통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사이트들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많게는 60%까지 트래픽 성장률을 기록했다. 12월 22일 현재 한국인 중 230만 명 이상이 트위터를 통해 지저귀고 있다.

당신도 보통 사람인가요?

소셜 네트워크는 모두의 참여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특정인들의 움직임이 유독 눈에 띈다. 송인혁 씨는 책에서 트위터리안들을 세 분류로 나눈다.

첫째 정보 제공자들이다. 일명 전문가 그룹으로 각종 사안들에 대해 심도 있는 견해를 제공하며 해당 분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 소셜 미디어 분석업체인 시소모스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동안 전세계 2000만 명 이상의 트위터 이용자들이 쏟아낸 10억 건 이상의 트윗을 분석한 결과 전체 트윗의 90%는 20%의 트위터 이용자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트윗 발행에 가장 열심인 2.2%의 극소수 이용자만으로도 전체 트윗의 58.3%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얼핏 파워블로거와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98%는 블로그를 방문해 정보를 얻어가는 '눈팅족'들처럼 그저 트윗 소비자들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 두 번째 무리는 커넥터들이다. 중계자 또는 전파자들로, 사람들이 알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안들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트위터 물결 효과의 원동력이자 한 사람의 전문가 또는 논평가에게 엄청난 힘을 실어주는 이들이다.

여기서 보통사람의 정체가 드러난다. 뉴욕대학교의 클레이 셔키 교수는 '인지 잉여(cognitive surplus)' 라는 개념을 소개했는데 이는 여분의 시간과 디지털 디바이스의 결합이 자원을 낳는다는 의미다. 위에서 소개한 엘리베이터 사건도 그 예로,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는 재운 씨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염려를 짧게나마 기꺼이 투자했고 이는 디지털 도구를 통해 그에게 전달되었다.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코믹 자료들 -통큰 치킨 영결식 사진, 대통령 연설 패러디, 정성스런 맛집 리뷰- 등도 모두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개인의 남는 시간과 남는 재능을 활용해 자발적으로 만들어 올리는 자료들이다.

보통사람들의 남아도는 시간과 재능을 합쳐 물리적으로 환산하면 그 양은 천문학적 수준이 된다. 물론 그 자체로 자원이 되지는 않는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내 것을 남을 위해 쓸 수도 있다'는 관대함, 그리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현대의 디지털 도구에 대해 '난 그런 것 모르겠다'라고 외면해버리지 않는 열린 마음, 이것이 보통사람들이 갖추고 있어야 할 보통 이상의 조건이다.

물론 집단지성이 불러올 수 있는 위험성도 만만치 않다. 전형적인 사례로 올 한 해 대표적 마녀사냥이었던 '타블로 학력 의혹'을 들 수 있다. 중우(衆愚)가 만들어가는 세상은 한 사람의 천재, 권위 있는 미디어를 버린 대가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광고홍보대행사 미디컴의 문경호 본부장은 이에 대해 집단지성의 진화 형태인 '소셜지성'이 대안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기존 검색기반을 통해 탄생한 집단지성은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지만, 트위터나 페이스 북 등 자신의 신상을 공개한 상태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소셜지성은 신뢰성과 책임감, 여기에 더해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훨씬 더 우월한 오피니언 집단이라는 것이다.

2011년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8760시간. 한국 사람들의 시간을 전부 합치면 3942억 시간이다. 이 시간은 어디에 쓰이는 것이 좋을까? 클레이 셔키 교수가 대답한다.

"인터넷 상의 우스꽝스러운 합성사진은 창작행위 중에서도 가장 바보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가장 바보 같은 창작행위라도 여전히 창작행위라는 것입니다. 그저 그런 작업과 훌륭한 작업 사이에는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예술이나 기타 창작작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 스펙트럼 상에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끝없이 분투하곤 하죠. 진짜 갭은 무언가를 하는 것과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사이에 있습니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