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진축제 일환 워크숍… 의학ㆍ과학ㆍ미술 등에 끼어든 사진사 조명총 24개 소주제로 구성, 27일까지 매주 수ㆍ목요일 서울역사박물관서

지난 1월 5일 열린 사진워크숍
00은 사라지는 현상을 영원히 기록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을 보이도록 한다.
00이 탄생하지 않았다면 인상주의 회화도 없었을지 모른다.
00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한때 00은 수많은 대중에게 평등하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여겨졌다.

위의 문장들에서 00에 공통으로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힌트는 오늘날 어디에나 있는 것, 거리와 인터넷은 물론 우리의 휴대전화까지 점령한 것, 예술이면서도 인기 있는 대중문화인 것, 역사적 기록인 동시에 순간적 유희인 것, 어떤 말이나 글보다도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바로 사진이다.

오늘날 사진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일상은 사진에 둘러싸여 있다. 누구도 사진과 접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지낼 수 없다.

하다못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뜬 아이돌 스타의 사진이나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이라도 보게 된다. 일일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사진은 이 세계의 구석구석,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영향력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대화 과정에서의 사진의 전방위적 활약에 비해 그 정리와 평가가 미미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철마다 찍어주신 가족사진이 우리 가족의 현대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건강검진 때 찍은 엑스레이 사진에 어떤 사회상과 철학이 녹아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최초의 사진술인 다게레오타입 카메라
우리가 알고 있는 사진이란 고매한 거장이 길이길이 남긴 '결정적 순간' 혹은 예쁜 아이스크림 와플을 향해 누르는 디지털 카메라의 가벼운 셔터 소리뿐이다.

이때, 사진에 대한 우리의 좁은 시야가 툭 트일 기회가 생겼다. 2010서울사진축제의 일환으로 열리는 워크숍이다. '사진의 역사는 통섭의 역사'라는 큰 주제 하에 의학과 과학, 미술과 디자인, 건축과 일상 등에 끼어든 사진 오지랖의 역사를 조명하는 자리다.

로드뷰, 스카이뷰 등 최신 사진 형식의 제작 과정과 과 빌렘 플루서, 롤랑 바르트와 수잔 손탁 등 사진 이론의 고전을 다시 읽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웬만한 사진학과 학생들도 한 학기 넘도록 다 못 배울 알찬 커리큘럼이다. 총24개의 소주제로 구성되며, 1월5일부터 27일까지 매주 수, 목요일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공개된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눈 여겨 보지 않았던 사진의 방대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사진에 얽힌 사건과 진실

발터 벤야민
"'쥐식빵' 사건도 사진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못했겠죠."
2010서울사진축제의 총감독인 계원디자인예술대 이영준 교수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건은 사진 때문에 비로소 사건으로 성립한다"고 지적한다.

'쥐식빵' 역시 그것이 실재임을 증명하는 사진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화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사진 자체의 힘 때문만은 아니다. 한편에선 많은 엽기적인 사진들이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합성'으로 일축된다.

특정 사진이 사건이 되는 바탕에는 사진을 선택하고, 퍼뜨리고, 논의하는 사회적 영향관계가 있다. '쥐식빵'의 경우에는 인터넷 네트워크가 그 역할을 했다.

이처럼 사진은 홀로 존재하거나 작동하지 않는다. 워크숍을 기획한 박상우 사진이론가는 "사진의 역사는 순수하지 않으며 타 분야와의 끊임없는 소통의 역사"라고 말한다.

사진은 근본적으로 통섭적이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사진이 하나의 예술 장르이기 이전에 쓸모 있는 테크놀로지이기 때문이다. 렌즈를 통해 보고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한 사회 곳곳에 불려 다니며 일해 왔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로드뷰
이런 운명은 초기부터 예견됐다. 1850년 프랑스 사진 비평가 에르네스트 라캉은 사진의 무한 확장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사진은 이제 화가의 아틀리에, 학자의 연구실, 상류계급의 서재, 귀부인들의 안방에 자리잡았다. 사진은 바다를 건너, 산을 넘어, 대륙을 횡단했다. 사진은 박물관에, 성당에, 집안의 가구 안에, 병원에, 감옥에, 공장에 들어갔다. 사진은 모든 곳에서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처음에 자신이 약속한 것 이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늘날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사진 통섭'의 가장 흥미로운 사례로는 로드뷰와 스카이뷰, 휴대폰 사진 등이 있다. 이들을 통해 사생활과 공적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영역이 사진 공간으로 포섭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천하에 공개된 로드뷰에는 간밤 당신이 노상방뇨한 모습이 당신도 모르게 찍혔을지 모른다.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는 누구나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덕에 기존의 카메라가 들어가기 어려운 곳까지 들어간다.

이를테면 화장실 같은 은밀한 공간의 문턱 넘기도 휴대폰 카메라에게는 식은 죽 먹기다. 이처럼 사진에는 사진을 가로지르는 사회적 관계와 변천까지 담겨 있다.

존 윌리엄 드래퍼가 찍은 최초의 달사진
사방팔방 뻗어나간 사진의 역사

역사 속에서 찾아낸 사진 통섭의 사례들이 현대와 문명, 인간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것은 그 때문이다. 지난 5일 박상우 사진이론가는 워크숍의 첫 강의를 통해 그 새로운 사진사를 개괄했다. "사진은 일상 속에 소리 없이 깊숙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마치 언어처럼요."

1839년 프랑스의 천문학자 프랑소와 아라고가 사진의 발명을 알리며 예언했듯 사진은 과학과 예술 분야에서 맹활약하게 된다. 동물학과 식물학은 사진의 기록 기능을 이용해 희귀 생물을 시각적으로 보존하고, 학문의 기초가 되는 분류 체계를 발전시킨다.

고고학과 지리학 역시 적극적 수혜자였다. 고고학자들은 더 이상 고대 이집트 유적지의 상형문자를 베끼기 위해 화가들을 동원할 필요가 없어졌다. 작업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었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려는 지리학자들은 열기구에 올라 최초의 항공사진을 찍었다.

과학 분야에서 사진의 역할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1845년 미국 천문학자 존 윌리엄 드래퍼는 다게레오타입으로 최초의 달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다. 눈 너머 세계를 눈앞에 펼쳐 보인 것이다.

데이비드 옥티비우스 힐의 사진
X-레이 사진은 인간의 몸 안까지 바깥으로 불러냈다. 정신의학에서는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도입했다. 카메라에 순간 포착된 환자의 표정이 곧 내면 풍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진의 놀라운 힘에 대한 대중의 믿음과 기대는 심지어 19세기 말 심령사진의 유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편 19세기 화가들은 밑그림으로 사진을 이용했다. 스코틀랜드 화가 데이비드 옥타비우스 힐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동안 회화를 옮겨놓은 것 같은 사진이 유행하다가 사진 그 자체의 미학을 추구하는 사진들이 나타났다.

현실 재현의 역할이 사진에 맡겨지면서 회화는 그와 구분되는 지점에서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다. 인상주의의 탄생 배경 중 하나다.

"사진이 없었더라면 미술사도 없었을 겁니다." 박상우 사진이론가의 지적처럼 사진이 가장 은밀하게 숨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다. 미술사의 경전처럼 여겨지는 이 책에 실린 미술작품들은, 정확하게 말하면 회화와 조각이 아닌 회화와 조각의 사진이다.

빌헬름 뢴트겐이 찍은 최최의 X-레이 사진
사진을 통해 미술을 자료화한 후에야 역사가 쓰일 수 있었다. 또 그 역사로 미술을 접한 사람들에게 미술에 대한 이해는 사진의 필터를 거친 결과물이다.

어떤 사진 활용 사례에서는 정치적 의도가 뚜렷이 드러난다. 19세기 인류학 사진에는 서구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른거린다. 식민지 원주민을 측정하듯 정면, 측면으로 찍었다. 지배자의 시선으로 원주민을 대상화한 것이다. 이런 촬영 형식은 이후 범죄자 사진에 적용된다.

항공사진은 전쟁과 함께 발달했다.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위한 정찰 자료로 쓰였던 것. 미국 사진작가 에드워드 스타이켄도 당시 군인으로 복무하며 항공사진을 찍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매체에서의 사진의 쓰임도 사진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정보가 통용되고 현실이 인식되는 방식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대중 매체에서 사진이 글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다.

화보로 채워진 잡지가 출간되었고 독자는 관객으로 변해갔다. 사건은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되었다. 사진으로 인한 새로운 대중문화 현상도 나타났다. 유명인사들의 초상사진이 명함 크기로 인쇄되어 불티나게 팔렸다.

지난 1월 5일 열린 사진워크숍에서 연세대 정태섭 교수가 X-레이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대다수 대중이 이들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 초상사진의 덕을 본 이들도 생겨났다. 가장 유명한 예는 미국의 링컨 대통령. 초상사진의 인기가 대통령 당선에 한 몫 했다고 전해진다.

경계를 넘는 사진의 가능성

연세대 영상의학과 정태섭 교수는 이날 워크숍에서 병원과 일상, 갤러리를 넘나드는 X-레이 사진의 다양한 재능을 선보였다. 오늘날 의학적 방법으로만 알려진 X-레이 사진이 초기에는 하나의 대중문화였다는 것은 흥미롭다.

빌헬름 뢴트겐이 X-레이를 발견한 다음해인 1896년 열린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는 자신의 몸 속이 궁금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이 X-레이 기계를 설치해 손뼈를 촬영해주는 장사를 했던 것.

당시에는 X-레이 사진 자체가 흥밋거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누, 샴푸, 종이봉투 등의 일상용품에도 X-레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였다니 대중적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만하다. X-레이 사진이 의학의 전유물이 된 것은 방사선 노출의 위험성이 알려지고 난 후다.

'X-레이 아트'는 평생 X-레이와 더불어 살아온 정태섭 교수가 스스로 개척한 분야다. 그는 사람은 물론 식물과 주변 사물들을 X-레이를 통해 다양한 형상으로 찍었다. 그의 작품들은 최근 개정된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과학기술을 이용한 예술의 사례로 실리기도 했다. 이는 X-레이를 비롯한 의학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의학 분야의 영상기술의 발전 속도는 놀랍습니다. 지금은 30cm 거리에서 맨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몸 속을 촬영해낼 정도니까요. 이런 기술들은 앞으로 영화 만드는 데 이용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상 사진 역시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 중 하나다. 결혼식과 생일, 입학과 졸업, 봄나들이 등 개인사의 굵직한 사건마다 사진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의례가 기억과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는 이야기되지 않았다. 박상우 사진이론가는 "한 사람을 진정으로 울릴 수 있는 유일한 사진"이라는 말로 일상사진의 영향력을 설명한다.

누구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이나 만 레이의 패션 사진을 보고 통곡하지는 않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의 초상사진을 보면서는 통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상사진에는 삶에 뿌리를 둔 진정성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날것의 힘이 나온다고나 할까요."

사진을 아름답게 쓰는 법

'지상의 서울과 지하의 서울'전에 전시된 이은종 작가의 Million Land, 중_City Hall F4# 6_2010
사진 통섭의 역사에 대한 돌아봄은 결국 이 다재다능한 언어이자 도구를 어떻게 적절하고도 아름답게 쓸 것인가, 하는 논의로 이어진다. 사진에 대한 진지한 이론들은 그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캘리포니아대 아트스튜디오학과 리처드 볼턴 교수가 1989년에 낸 <의미의 경쟁>은 손꼽히는 길동무다. 이 책은 "20세기 인류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 근대성(modernity) 안에서 사진의 역할을 조명"한다.

사회적 맥락에서 사진이 수행한 정치성과 그 가능성까지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예를 들면 책은 "사진이 수많은 대중에게 평등하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여겨진 때가 있었음"을 상기하는 동시에 "사진은 감시와 기록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회를 조종하는 도구로 악용될 소지도 충분히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우리의 시각적 환경을 풍부하게 만들지만 광고와 접목된 사진은 자본주의적 소비 시스템을 작동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연의 일부처럼 된 사진"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사진에 얽힌 권력 관계, 그 정치·경제적 목적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삶을 기억하라'전에 전시된 중고 작촌 조병희의 '어느 향토 사학자의 사진일기'중 가족
이밖에도 사진과 세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피어난 빛나는 성찰들이 워크숍에서 다시 펼쳐진다. 나머지는 직접 가서 들을 것을 권한다. 일정은 2010서울사진축제 홈페이지(www.seoulphotography.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0서울사진축제

'서울에게 서울을 되돌려주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서울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울을 기록하는 것이다. 오래된 도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 같아서 지나간 삶의 흔적을 주름처럼 품고 있다.

서울에 대한 사진을 찍고 보는 것은 곧 이 도시에서의 삶을 깨닫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서울 사진으로 꾸려진 2010서울사진축제의 의의다.

워크숍은 물론 근현대의 서울 사진과 10명의 사진작가가 찍어낸 현재 서울의 지하 공간들을 교차해 보여주는 '지상의 서울과 지하의 서울' 전, 일반 시민들의 앨범에서 모은 일상 사진들을 모은 '삶을 기억하라' 전, 1000여 권의 사진책으로 채워진 '사진책 도서관' 등이 마련되었다.

총감독인 이영준 교수는 "시민들이 사진의 쓰임새를 새로 발견하고 친숙해지는 판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는 서울을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 공유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수동적인 참여로 만족할 수 없다면 1월8일부터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서울길 만庸?서울 같지 않은 서울 사진 찍기'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다. 시민과 사진작가가 함께 서울 도심으로 나가는 '출사'다.

동대문과 동묘, 서대문 뒤쪽 교남동 일대 골목길과 독립문, 인사동과 세운상가가 카메라 세례를 기다리고 있다. 신청은 이메일으로 하면 된다. 2010서울사진축제는 1월31일까지 열린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