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 등 '음악의 기적' 만들기 노력

세종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 연습 장면
지난해 2월 11일, 뉴욕 카네기홀에선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객석은 무려 세 번의 커튼콜로 동양의 연주자들을 무대로 불러내 연주에 열렬하게 화답했다.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부산 소년의 집의 알로이시오 관현악단의 성공적인 뉴욕 데뷔무대였다.

그날은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무대에 선, 소년의 집 출신의 중학교 1학년에서 직장인이 된 30대까지 100명에게도 잊지 못할 감격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카네기홀에서의 성공적인 무대는 2005년부터 이들의 스승이자 후원자로 인연을 맺어온 지휘자 정명훈·정민 부자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1979년 음악에 소질 있는 학생들을 선발해 창단한 오케스트라는 기증받은 악기와 드문드문 이어지는 레슨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학생 오케스트라답지 않게 유려한 음색을 갈고 닦아왔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연습과 30여 년을 지속해오면서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레슨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2008년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내한으로 국내에 알려진 베네수엘라의 열린 음악교육인 '엘 시스테마'의 방식과도 상당히 닮아있다. 엘 시스테마의 창시자인 아브레우 박사 역시 3년 전 방한 당시 한국의 음악교육 중 가장 주목했던 관현악단이기도 하다.

미인과 석유의 나라 베네수엘라에서 음악의 기적을 보여준 엘 시스테마는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긍정의 파문을 일으켰다. LA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최연소의 나이로 꿰찬 구스타보 두다멜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더블베이스 주자 에딕슨 루이즈의 음악적 천재성의 발현만이 엘 시스테마의 미덕은 아니다.

그보다는 34년을 꾸준히 진행해 오면서 청소년 인성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이를 통해 폭력과 마약 등 청소년 범죄로 들끓던 베네수엘라의 범죄율을 크게 떨어뜨리는 데도 기여했다. 베네수엘라의 40만 명 이상의 청소년들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특수 계층 혹은 소수의 영재만이 향유하는 예술이 아니라, 예술의 소외 계층을 향유 계층으로 끌어들이는 이른바 '착한 예술'이 국내에서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차츰 움터가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김민우 군의 부모는 몽골 사람이다. 부모는 지방에서 일을 하고, 김 군은 서울에서 자취하며 중학교에 다닌다.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에 혼자 견뎌야 하는 외로움과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까지 이중고를 겪어야 했던 김 군. 한동안 우울증에 빠져 있던 김 군은 악기를 시작하면서 환한 얼굴을 되찾았다.

학교 동아리에서 시작한 더블 베이스가 그 시작이었다. 지난해에는 담당 교사의 추천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하는 '세종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합류하게 됐다.

지난해 9월에 창단한 세종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의 저소득층과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음악 교육을 하고 있다. 나눔 예술의 실천을 위해 직장인들로 구성된 '세종 나눔 앙상블'에 이은, 세종문화회관의 두 번째 한국형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이다.

서울문화재단의 '2010 생각하는 호기심 예술학교'에 효제초등학교 어린이들
교육을 요청하는 단체에 강사를 지원하는 기존의 방식과 달리, 아이들이 직접 교육을 받으러 세종문화회관으로 모인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어린 학생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일부터 쉽지 않았지만 결석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아이들은 매주 수요일 한 차례, 유라시안 필하모닉이나 서울시향의 단원들로부터 레슨을 받는다.

처음엔 각자 원하는 악기를 배우게 되지만, 악기와 음악에 흥미를 보이지 않으면 악기를 바꿔가며 지속적인 흥미를 유도한다. 금요일마다 모이는 '세종 나눔 앙상블'과도 유대관계를 이어가며 나눔 앙상블 단원들이 멘토가 되어 자발적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기도 한다.

"2010년 우리 가족에게 가장 감동적인 선물은 '예술로 희망드림' 프로젝트입니다. 인재육성에 선정된 늦둥이 딸이 선화예중에 당당히 합격했거든요. 워낙 열악한 환경이라 미안한 마음에 부모로서 고개를 들 수 없었는데, 작년 '꿈나무 키움'에 선정되어 최선을 다한 결과 원하는 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딸이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준 '예술로 희망드림',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용산구에 사는 박우철 씨의 사연이다.

예술로 희망드림 프로젝트는 서울시의 자산형성 프로젝트인 희망플러스통장, 꿈나래통장 가입자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다. 2009년 시작해 지난 2년간 500여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예술교육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

아이들의 예술적 성장에 따라 씨앗 나눔-꿈나무 키움-인재육성 등 세 단계로 나누어 집중 관리한다. 초보자가 대상인 '씨앗 나눔'은 월 10만 원 이내의 교육비를 지원하고, 예술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는 '꿈나무 키움'은 전문예술가 멘토가 개인지도해주는 방식이다.

이미 전공 중인 중·고·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재육성'은 학비와 콩쿠르 참가비 등 자기 계발비용을 지원한다.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미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어 호응이 좋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아동·청소년 'Arts-TREE' 역시 저소득층 자녀들의 문화적 기회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만들어졌다. '어린이 Arts-TREE'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선발하고 양성한 전문예술교육가(TA)를 서울시 초등학교가 운영하는 돌봄교실에 파견해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아동을 가르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연극, 무용, 시각예술 등 3개 분야로, 2010년 현재 28명의 예술교육가가 250개의 돌봄교실에서 아이들과 예술 창작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초등학교 '즐거운 생활' 교과와 연계한 '생각하는 호기심 예술학교'는 놀이와 공연 형식을 연계해 통합적인 예술체험이 가능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일부 시범학교를 정해 진행된 프로그램은 점차 서울시 전체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청소년 비전 Arts-TREE'는 예술분야 학교 동아리에서 활동 중인 학생들이 유명 예술가들에게 직접 교육을 받게 한다. 학생들에겐 전문강사 교육과 더불어 프로젝트 마스터라는 이름의 저명 예술가들이 멘토 역할을 해준다.

지난해에는 피아니스트 김대진,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바리톤 김동규(이상 음악), 배우 조재현(연극), 뮤지컬 배우 남경주(뮤지컬), 장고 연주자 김덕수(전통예술) 등이 학생들의 멘토로 나섰다.

지난해 12월 11일에는 서울 용산문화예술회관에서 `제1회 꿈을 그리는 연주회'가 열렸다. 지난 2008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저소득 가정을 대상으로 정서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들에게 클래식 악기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콘서트는 교육의 결실과도 같은 무대였다.

연주회에는 전국 157명의 아이들이 지난 2년간 익힌 실력을 선보였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제공하는 `아동 정서발달 지원 서비스'에서 음악 교육을 받는 어린이는 2440명에 이른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ADHD)와 불안장애, 정서행동장애 등의 정서적인 문제가 호전되고 있다.

세종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 & 세종 나눔 앙상블
김은정 감독 인터뷰

'세종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어떤 계기로 창단되었나.

"나는 본래 서울시향의 바이올린 주자였다. 처음 인천의 한 아동센터로 연주를 갔다가 아이들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소외계층 아이들의 음악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악기는 많은데, 아이들이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이미 세종 나눔 앙상블의 감독을 맡고 있어서 예산을 쪼개어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

막상 시작해 보니 어떤 어려움이 있나.

"지역 아동센터로 강사들이 교육을 나가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우리는 한 장소에 아이들이 모이게 하는 방식이라 아이들이 여기까지 오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아동센터가 열악해 선생님들이 매번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가 없었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이 문제는 안정됐다. 아이들이 집에서도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아 실력 향상이 크게 이루어지진 않는다. 재능 있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긴 안목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크게 염려하지는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음악에 흥미를 잃게 하지 않기 위해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고루 경험하게 해준다. 아직 타악기는 비용 때문에 마련하지 못했는데, 내년 창단 연주 전까지는 마련해서 다른 악기 연주가 다소 힘겨운 아이들에게 타악기를 맡겨볼 참이다."

아이들에게서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지.

"아이들보다 부모님들 중에 미온적인 태도를 가진 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두 번쯤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무척 좋아하면서, 이곳만은 꼭 보내겠다는 분들이 많아졌다. 특히 어머니가 중국인인 다문화 가정의 학생은 어머니의 반대가 있었지만, 공연 이후 감격스러워했다."

한국형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동센터를 찾아가 학생들을 모집하면서 한 목회자로부터, 아이들에게 두 번 상처주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회적 이벤트로 아이들을 데려가서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문제에 대한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지금은 세종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중학교 2학년까지 교육하지만 점차 그 시기를 확대해갈 계획이다. 또 한 번 좌절하거나 상처받은 아이들이라 신경 쓸 부분이 더 많다. 너무 호되게 교육하면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음악 교육과 더불어 일방적으로 수혜를 받는 입장이 아니라 나중엔 그들도 이웃과 나눌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