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기부, 공정 무역…갈수록 다양해지는 착한 패션

소년의 집 관현악단 <사진출처:보그>
"2004년부터 런던, 유럽을 중심으로 윤리적 패션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소비를 조장한다는 편견을 받고 있는 패션 산업계가 미적인 것을 통해 윤리적 실천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우리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해 경기도 미술관에서는 '패션의 윤리학: 착하게 입자' 전시회가 열렸다. 이 행사를 기획한 황록주 큐레이터는 전시회에 앞서 취지를 밝혔다. 행사장에는 친환경 소재로 만든 코트부터 시작해서 공정무역을 통해 수입한 섬유로 디자인한 가방, 쐐기풀로 만든 드레스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착한 옷들이 전시됐다.

국내에서 '착한 패션'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2008년이다. 시초는 . 그는 2008년 8월 국내 최초로 공정무역 패션쇼를 열었다. 평소 자연과 환경에 관심이 많던 홍승완 씨는 유기농 섬유를 물색하다가 공정무역 단체를 알게 되었고, 이에 공정무역 시민기업인 페어드레이드코리아에 직접 전화를 걸어 함께 일할 의향을 밝혔다.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등 제 3세계의 여성 노동자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유기농 면과 마, 니트 등이 디자이너에게 전달되었고, 그는 이를 이용해 50벌의 의상을 제작해 서울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였다.

질 좋고 매끈한 유럽의 원단과는 달리 내구성이 떨어지고 거친 면이 있었지만 오히려 홍승완 디자이너가 추구하던 자연스러움이나 클래식함과 맞아 떨어져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판매 수익금의 5%를 제 3세계 생산자를 지원하는 데 기부했다.

디자이너 홍승완
패션 잡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태생상 독자의 눈을 현혹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잡지지만 패션에 소외된 계층에게 손을 내미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윤리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2008년 말 보그와 디자이너 정욱준은 재단법인 마리아 수녀회가 운영하는 아동복지시설 '소년의 집' 관현악단 단원들에게 단복을 선물했다. 작은 합주단에서 시작해 오케스트라로 규모를 키운 이들은 뛰어난 실력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유진박, 지휘자 정명훈, 첼리스트 정명화 등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이들은 정명훈과 함께 '거장을 감동시킨 70명의 소년들'이라는 카피로 광고를 찍게 되는데 이를 본 스타일리스트 서영희가 보그 측에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이 단복 제작의 시초가 되었다.

낡은 악기와 부족한 레슨도 서러운데 교복을 입고 연주한다는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보그는 최고의 테일러링 실력으로 파리에서도 인정받은 디자이너 정욱준에게 연락했고, 그는 자신이 디자인 고문으로 있는 교복 브랜드 엘리트 학생복에 이를 의뢰했다.

활을 쓰느라 움직임이 많을 것을 고려해 스판이 들어간 원단으로 활동성을 보완하고 여기에 디자이너의 감성을 더한 77벌의 단복이 완성돼 학생들에게 전달되었다. 여기에 제화 브랜드 에스콰이아와 남성복 브랜드 클리포드까지 뛰어 들어 구두와 보우 타이까지 완벽한 풀 착장을 선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최근 국내에서는 빈티지 열풍이 불면서 헌 옷을 다시 입거나 서로 바꿔 입는 것이 촌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21세기 최고의 화두 중 하나인 '지속가능한'은 패션의 영역에서 가장 능동적이고 다양하게 실천되는 중이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