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 인식 게임기, 멀티 터치 컴퓨터… 문명 이용해 문명에 반기 들어

"한가하게 머리나 쓰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있을까? 장작 패는 법이라도 배워라. 학자도 땀 흘려 일하고, 여러 사람과 대화하고, 다양한 사물과 접할 필요가 있다. 노동은 공부 못지 않게 집중력을 요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인간에게 먹고, 자고, 움직이고, 사랑하는 것 이상이 필요할까? 그 이상을 거부하는 일은 날마다 새롭게 형성되는 세계를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게으름일까, 아니면 땅에 발을 딛고 실존하기 위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일까.

문명의 정신 없는 발전에는 늘 그를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했다. 그들은 두뇌 대신 몸의 효용을, 차가운 기계 대신 인간의 따스함을, 소비 대신 반소비를 주장하며 과격하게 사회에 저항했다. 그러나 최근의 반문명 세력은 한결 세련돼진 모습이다. 그들은 사회를 이탈하지도 않고 분노에 차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으며 신념을 위해 몸을 혹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문명의 이기와 기계의 힘을 적절히 빌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친다. 한국트렌드연구소가 펴낸 <핫트렌드 2011>에서는 올해 유행할 것들 중 하나로 동작 인식 게임기를 꼽았다.

손가락만 까딱이는 기존의 게임에서 앞으로는 온 몸을 움직이는 게임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잘 설계된 가상의 세계가 우리를 유혹하지만 '아무 근심 없이 열심히 빠져드는' 행위를 욕망하는 인간의 본능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나온다. 몸은 쾌락의 중추이자 감각 기관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형태의 문명 저항, 이른바 반문명 2.0이 몰려오고 있다.

즐겁게 세련되게 온화하게 저항하라

지난해 9월초 북미 게임쇼 PAX에는 동작 인식 게임기들이 대거 등장했다. 닌텐도 위가 선점한 시장에 침투하기 위해 칼을 갈아온 기업들은 각자 자신들의 야심작을 내놓았는데 그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은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키넥트였다.

키넥트는 모션 컨트롤러 게임기의 진화된 버전으로, 게이머가 화면 앞에 서면 카메라가 그의 48개 신체 부위를 초당 30회씩 감지해 동작을 읽어내도록 되어 있다. 기존에 사용자가 손에 쥐고 사용해야 했던 컨트롤러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게이머들은 두 팔과 두 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보트 타기, 배구, 댄스 파티까지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키넥트는 출시 두 달 만에 전세계적으로 800만 대가 팔려 나갔다. 비슷한 원리의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무브 역시 지난해 9월 출시돼 한달 만에 미국과 유럽에 250만 대 이상이 판매됐다.

MS사의 동작 인식 게임기 키넥트
기존의 게임이 화면 저편의 세계를 오직 두뇌와 손가락만을 이용해 조작하는 원리였다면, 동작 인식 게임은 화면 밖 육체의 세계로 넘어 온다. 단순하지만 역동적인 동작들로 인해 땀이 차고 숨이 가빠지면서 숨겨진 야성이 되살아난다.

과거 반문명 운동은 기본적으로 극단적 성격을 띠었다. 가장 폭력적인 인물로 1970년대의 반문명 폭탄 테러범 유나바머가 있다. 1995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지에 게재하도록 협박한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제목의 선언서에서 그는 "폭파는 극단적인 행동이지만 대규모 사회에 요구되는 현대 기술에 의해 반드시 따라붙는 인간 자유의 훼손에 대한 주의를 끌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나바머는 1978년 노스웨스턴 대학을 시작으로 17년 동안 16 차례의 폭탄 테러를 자행해 23명에게 사상을 입혔다. 범행 대상은 주로 기술과 과학, 환경 관련 인사들이었으니, 영화 '터미네이터'의 실사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피들은 평화를 주장했지만 그들의 삶의 형태 역시 기존의 국가와 관습의 테두리를 철저히 부정하는 극단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아예 옷을 벗어 던진 채 벌거벗은 몸으로 노래를 부르며 패션과 소비 문화에 저항했다.

하지만 최근의 반소비 운동은 체제 안에서 부드럽고 소박하게 진행된다. 지난해 6월 21일, 미국, 영국, 스페인, 인도, 두바이,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에서 약 100여 명이 참여하는 작은 캠페인이 벌어졌다.

반체제주의자 히피
캠페인의 이름은 '옷 여섯 벌 이하 입기'. 실험의 규칙과 목표는 옷장에서 딱 6벌의 옷만을 꺼내 한 달 동안 입는 것이다(속옷과 신발은 제외). 실험에 참가한 수많은 참여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변 사람들 대다수가 자신의 옷차림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패션에 민감한 광고업 종사자 하이디 해크먼은 아무도 그녀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말했으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보험업 종사자 스텔라 브레넌 역시 주변인뿐 아니라 세탁 담당인 그녀의 남편 조차도 한 달이 넘도록 자신의 패션 정체 현상을 몰랐다고 말했다.

8월에 실험에 참여한 뉴요커 진 채츠키는 "온라인 쇼핑에 시간을 덜 쓰게 됐다"며 "뭔가를 사려는 강한 충동이 줄어들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 실험은 단순히 소비를 줄여 자원을 절약한 것 외에도 생활이 단순해지고 머리 속이 맑아지는 효과를 낳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00여 명의 실험 참가자들을 연결하고 서로의 행동을 독려한 도구가 최첨단 소셜 네트워킹인 트위터라는 사실이다.

지구를 살리는 나이트 클럽

반소비주의자 프리건
반문명 2.0 당사자들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굳은 신념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외고집도 아닐뿐더러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바치려는 희생 정신은 추호도 없다. 심지어 자신이 하는 행동이 제멋대로 폭주하는 현대 문명에 대한 반기인지도 모르고 행하는 이들도 많다.

'날카로운 상상력 연구소' 김용섭 소장이 쓴 <트렌드 히치하이킹>에서는 지구를 살리는 나이트 클럽 '클럽 포 클라이미트'를 소개하고 있다. 영국에 위치한, 이른바 댄스 동력 나이트클럽(Dance-powered Nightclub)인 '클럽 포 클라이미트'에서는 춤출 때 바닥을 두드리는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기술을 이용해 클럽의 필요 전력 6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클럽 바닥 아래에 설치한 장치를 통해 운동 에너지가 전기 에너지로 변환되고 이 전기는 음악 볼륨과 조명을 더욱 빵빵하게 돌리는 데 사용되며 이에 손님들은 한층 신나게 춤을 추며 또 다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부족한 자원을 놀면서 충당한다는 점에서 즐겁고 획기적인 환경 운동이지만, 여기 오는 이들 중에는 그저 춤추고 싶어서 또는 물이 좋아서 오는 이들도 상당수다.

쓰레기를 활용해 만든 가방, 프라이탁의 히트도 비슷한 사례다. 오래된 트럭 방수천, 자전거 튜브, 안전 벨트 등 온갖 쓰레기와 고철로 만들어지는 프라이탁은 1993년 마르크스 프라이탁과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에 의해 탄생했다.

쓰레기는 종종 반문명주의자들의 저항 도구로 쓰였는데, 한때 식당에서 밥 먹는 손님들의 식탁을 덮치는 바람에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든 프리건이 바로 그들이다. 프리(free)와 베건(vegan: 절대 채식주의자)의 합성어인 프리건은 물질주의, 소비만능주의, 경쟁, 탐욕에 반대하며 기본 생필품조차 구입하는 것을 거부하고 쓰레기 더미를 뒤져서 필요한 것들을 찾아내는 집단이다.

프리건의 활동을 표현한 일러스트
이들이 쓰레기 통을 뒤지는 이유는 음식이나 옷, 가구와 같은 필수품이 너무나 멀쩡한 상태에서 버려지는 것을 반대하기 위한 것으로, 식당 습격 사건도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먹기 위해서였다.

프라이탁은 쓰레기 활용법에 대해 좀더 패셔너블하고 온건하게 접근했다. 그들은 각종 폐기물을 수집해 가방을 만들어 연간 12만 개의 판매를 올렸다. 실과 로고를 빼고는 전부 재활용품으로, 유럽과 일본에서는 프라이탁의 투박하고 빈티지한 멋에 열광하는 마니아 층이 생겨 났다.

또 다른 인기 요인 중 하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가방이라는 점으로, 프라이탁 형제는 온라인 매장을 통해 12개의 트럭 방수천 중 고객이 직접 원하는 부분을 잘라 자신만의 가방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서비스했다. 프라이탁 마니아들은 굳이 지구를 살리려는 마음보다는 나만의 멋지고 터프하고 튼튼한 가방을 가지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기계 앞에 하나되어

문명의 발달이 야기하는 심각한 대화 단절도 역설적으로 문명의 발달에 의해 얼마간 해소가 가능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한 서피스 컴퓨다.

프라이탁 가방
2007년 공식 발표됐지만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이 컴퓨터의 특징은 터치를 통해 이용자와 컴퓨터가 상호 작용한다는 점이다. 터치 컴퓨터는 이미 흔하지만 서피스는 멀티 터치 기술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한 손가락뿐 아니라 열 손가락을 동시에 감지하기 때문에 양 손을 이용해 드럼도 칠 수 있다.

사용하는 손가락 수가 늘었다는 이유로 가 좀 더 인간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한 대의 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컴퓨터를 둘러싼 회의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재택 근무를 포함한 스마트 워킹이 대세가 되고 있는 현재, 서비스 컴퓨터는 참여 중심적인 아날로그식 회의를 가능케 한다. 사람과 기계, 1 대 1의 만남을 원칙으로 했던 컴퓨터가 많은 이용자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헤어졌던 인간들을 재회시킨 셈이다.

얼굴을 맞대는 만남이니 트위터나 페이스북 상의 빈곤하고 피상적인 연결과는 달리 사람 냄새가 난다. 는 그 엄청난 가격과 크기 문제 때문에 사무실에서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기술 보완을 통해 차츰 사용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기계가 중심이 된 세계에서 과거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노력은 언뜻 부질 없어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오락을 하며 땀을 내도 실내를 벗어나지 못하며, 쓰레기로 가방을 만들어도 배송에 쓰이는 연료를 생각하면 제로섬 게임이다. 그러나 태초의 단순한 삶에 대한 인간의 향수는 집요한 면이 있다.

서피스 컴퓨터
과거 한 미래학자는 멋 훗날 인간의 모습을 예측하며 '뇌를 많이 써서 머리가 커지고, 움직이는 일이 줄어들어 아랫배가 튀어 나오며 기계를 주로 활용하느라 손가락이 과도하게 발달한, 이티와 같은 형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새롭게 개발되는 모든 기계와 제품이 지금처럼 인간의 살 냄새를 그리워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미래는 예측 불가능이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