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성문화센터 배정원 소장남녀 문제 아닌 권력형 범죄… 서로 간의 사회적 거리 지켜야

전문가들은 성희롱을 남녀관계의 문제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크게 경계한다. 성희롱은 감정이 아닌 폭력의 범위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행복한 성문화센터의 배정원 소장은 성희롱을 포함한 성문제 전반에 대해 다루는 성전문가다. 어른들이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도 바뀌지 않는다는 신념 하에 2000년도부터 어른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성희롱에 대해서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오해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할 것은 성희롱이 남자와 여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성희롱은 관계의 문제가 아닌 힘의 문제다. 수직적 구조의 시스템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 누가 힘을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므로 여자와 여자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당연히 여자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한 여자 상사가 여직원이 남직원과 함께 출근하는 것을 보고 “왜 같이 들어오냐”라고 묻는다든지, “남자 손을 많이 탄 것 같다”라고 말해 수치심을 유발했다면 이는 명백한 성희롱이다. 다른 예로 50대의 남자 상사에게 어린 여직원들이 팔짱을 끼고 “부장님은 내 꺼”라고 말하는 경우가 반복돼서 당사자가 불쾌함을 느꼈다면, 이것도 성희롱이다. 하지만 그 남성은 아마도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남자라서가 아니라, 가해자들에게 그만하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성희롱 판단의 중요한 기준은 피해자에게 중지시킬 힘이 있느냐, 없느냐다.

실제로 성희롱은 알고도 하는 경우가 많나, 모르고 일어나는 경우가 많나.

성희롱 신고 사례가 늘면서 남자들도 신경 쓰는 추세지만, 그들도 그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잘 모른다. 얼마 전 인권위로부터 성희롱 예방 교육 권고를 받은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대학교수인데 수업 중에 학생에게 “나중에 술 따르는 일을 하고 싶냐, 요즘은 그런 일을 하면 술만 따라주는 게 아니라 2차도 나간다더라”는 말을 해 문제가 된 사례다.

그는 너무나 억울해했다. 그 학생은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수업에 들어와 껌을 씹으면서 만화를 보았고, 수업에 방해되니 나가달라는 교수의 말에 내가 왜 그래야 하느냐고 따졌다. 다투던 중 “너 그러다 나중에 뭐가 될래”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 방금 그 얘기다.

물론 야단을 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쳐야 하느냐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교수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는 남자나 연장자, 또는 아버지로서가 아닌 선생님으로서 꾸중해야 했다. 성희롱은 그런 경계를 지키는 문제다. 자신의 위치와 상대방의 위치,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해야 할 사회적 거리를 지키는 문제다.

그래도 요즘에는 많이들 조심하지 않나.

딱히 민감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정치인 성희롱 사건이 터져도 잠깐 시끄러웠다가 금세 잠잠해지곤 한다. 친밀감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 이 사회는 여전히 무감각하다. 손가락으로 배를 찌르거나 팔로 엉덩이를 싸 안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친하다고 서로의 영역을 마구 침범하고, 또 친하다는 이유로 신고하지 못한다.

성희롱은 여전히 피해자가 쉬쉬해야 할 문제다. 게다가 사법기관도 여기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 성희롱으로 인해 호된 처벌을 받은 경우가 몇 건이나 되나? 기껏해야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벌금, 교육 정도에 그친다.

성희롱을 힘의 문제로 생각하기보다, 남자가 여자보다 성욕이 강해서, 머리 속에 섹스 생각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성욕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성욕은 남녀 모두에게 있다. 물론 남자들은 좀더 성을 충동적으로 느끼며 생물학적으로 프로포즈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주도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사회도 남자의 성충동 발현에 관대하다.

그러나 노래방에서 손 잡고 같이 춤추기를 강요하는 남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딸과 아내로 바꿔 생각해 보라고 하면 안색이 변한다. 내가 하는 건 친밀감이고 남이 하는 건 성희롱이라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남자의 성욕이든 여자의 성욕이든 ‘아무에게나 해도 되냐’라는 질문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지는 않았는가’도 고려해야 한다. 직장 상사가 밤에 아래 직원에게 전화해 “혼자 있으면 내가 그리로 갈까?”라고 묻는 것도 위의 기준에 위배되므로 성희롱이다.

그런 것도 성희롱인가, 듣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피해자가 수치스럽게 느끼냐, 아니냐는 단순히 개인 성향이나 경험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기준은 가해자가 평소에 어떤 사람이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따라 피해자의 판단이 크게 달라진다. 성희롱은 사실 ‘그 사람이 평소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가’에 관한 문제다.

위에서 예를 든 상사가 평소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피해자도 큰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약자를 짓누르는 야비한 성정의 사람이라면 피해의식은 훨씬 커질 것이다. 그래서 흔히 ‘섹슈얼리티는 우리가 누구인가(Who we are)의 문제’라고 말한다. 법에는 구멍이 많지만, 상식 선으로 보면 성희롱 여부는 너무나 자명하다. 남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면 된다.

남자가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도 실제로 많이 일어나나.

놀라울 정도로 많다. 남자의 경우 여자보다 트라우마가 훨씬 크다. 창피해서 어디에 가서 제대로 말도 못한다. “오죽 못났으면 여자한테 당하나” 라는 생각 때문이다. 여자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관리직에 올라가는 사례가 늘면서 힘을 가진 여성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과거 자신들 위에 있던 관리직 남성의 모습에서 영향을 받아 권위적이고 터프하고 털털한 것이 상사의 미덕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아래 사람들을 성희롱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폭력을 되돌려주고 있는 셈이다.

성에 대해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도 성희롱 발생에 영향을 끼칠까?

한국 사회에서는 성이 죄다. 방송에 섭외를 받아 강의를 할 때도 성폭력이나 성희롱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말하게 하지만 건강한 성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펄쩍 뛴다. 섹스라는 단어는 아예 쓸 수가 없다. 심지어 50세가 되기까지 자신의 성기를 한번도 제대로 본 적 없는 여자가 부지기수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미혼모 발생률이 높을 수밖에 없고 성희롱을 당해도 누구에게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성에 대한 자유로운 담론은 금지하면서, 직장 같은 공적 영역에서 성을 사사로이 논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그건 모순이다. 성이나 성욕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할지는 그 사람의 소양에 달려 있다. 성희롱은 자제의 문제까지 갈 것도 없다. 그건 상식이다.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지켜야 하는 양식의 문제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