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리영희, 90년대 강준만… 저서ㆍ기고ㆍ시국선언 통해 사회 참여최근엔 블로그ㆍ트위터 등 통해 정치ㆍ사회 전 분야의 담론 실시간 논의

강준만 교수
'이숙정 의원에게 정의를 행사하는 방법: 종이에 국회의원 299명의 이름을 적어내라고 합니다. 그다음 채점을 해서 이름을 못 적어내거나 잘못 적어낸 국회의원의 수만큼 머리 끄댕이를 잡아당기는 거죠.'

미학자 진중권 씨의 트위터 발언은 실시간 인터넷 뉴스가 된다.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주목받은 그는 영화 <디워> 논쟁 때부터 상당수 안티를 확보(?)한 저력이 있지만, 최근 성남시의회 이숙정 의원(민노당)에 대한 발언처럼 그의 독설이 환영받을 때도 적지 않았다. 시골의사 박경철 씨와 안철수 KAIST 석좌교수의 트위터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한 마디는 웬만한 인터넷 언론 기사보다 뉴스 밸류가 높다.

대중과 소통하는 지식인이 늘고 있다. 이전에는 지식인의 발언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일방향적 형식을 취했다면,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발달한 지금은 쌍방향적 소통을 하며 파급력이 엄청나다. 인터넷과 모바일 공론장에서 지식인과 대중이 갑론을박하는 현장도 목격할 수 있다.

지식인 변천사

물론 이전에도 참여형 '지식인'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인물은 있었다.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알려진 장준하 선생을 비롯해 얼마 전 타계한 리영희 선생, 백낙청 평론가 등은 참여 지식인의 대표적 유형이다.

조국 트위터
1970~80년대 지식인의 발언은 대개 거대담론이었고, 정치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발언이 많았으며, 비판의식이 담겨 있었다. 당연히 이들의 발언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박종현 기자 인터뷰 참조)

지식인의 사회참여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 방식으로 표출된다. 저서 출간, 대중매체 기고, 시국선언 등이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책이 알려지고 언론이 이 책과 저자를 소개하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다.

90년대 중반 조선일보-최장집 교수 사건이나 지식인 시국선언처럼 법률소송, 시국사건에 의해 일반에 알려지는 지식인도 있다. 요컨대 지식인이 사회에 참여하고, 일반에 알려지는 방식은 대개 매스미디어의 집중조명을 받으면서다.

90년대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이런 전통적 방식을 뒤집음으로써 대중과 소통한 독특한 선례를 만들었다. <인물과 사상>으로 대표되는 '저널룩'을 만든 것이다.

'저널리즘'과 '북(book)'을 합성한 저널룩은 다양한 쟁점을 다루는 부정기 간행물이라는 점에서 무크와 비슷하지만, 기본적으로 1인 저작물이라는 점에서 무크와 다르다. 가 만든 이 말은 이제 학계는 물론 일반에도 친숙한 단어가 됐다.

강준만 교수가 낸 '저널룩' 인물과 사상
90년대 그를 소개하는 말은 주례사 비평과 실명 비판이었다. 그는 전자를 비판하며 알려졌고, 후자를 통해 지지층을 만들었다. 강 교수는 각종 언론 보도와 사설을 낱낱이 까발리며 언론과 대적했지만, 역설적으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90년대 중반을 거치며 비판의 대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으로 확장됐다. 비판 방식은 바뀌었지만, 국가나 언론으로 대표되는 기성 권력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강 교수의 발언은 70~80년대 지식인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를 비롯해 진중권, 박노자, 홍세화, 김규항 등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대학가와 출판계를 휩쓴 진보지식인들은 언론을 포함한 기성권력과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역으로 언론에 집중조명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의 전환이라는 당시 산업적 배경도 한 몫 했다.

딴지일보,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신문이 창간되면서 이 진보지식인들은 온오프라인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며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댓글 형식이지만, 지식인과 대중의 쌍방향 소통이 시작된 것도 이 때부터다.

2000년대 후반, 대중과 소통하는 지식인들은 한번 더 변모한다. 전공 분야는 넓어졌고, 논의 주제도 천안함 사태부터 아이돌 문화까지 다양해졌다.

4.19혁명, 교수들의 행진
이들은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실시간 대중과 소통하며 필요하다면 논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진중권 씨를 비롯해 이택광, 우석훈 씨 등은 팬과 안티가 확실한 지식인들이다. 존경 혹은 무관심의 대상이던 지식인의 사회적 위치가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강단에서 정치하는 학자를 '폴리페서(polifessor)'라고 한다면, 대중과 소통하는 이 학자들은 '피플페서(peoplefessor)'정도 되지 않을까?

소통형 지식인, 피플페서의 등장

기존 참여형 지식인과 최근의 피플페서들의 차이는 뭘까?

<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을 쓴 박종현 씨는 두 가지 차이점을 짚었다. 첫째는, 인터넷과 대중매체의 발달로 학자들이 집단이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담론을 만들며 사회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종래에는 학자 집단 혹은 학회 수준에서 담론이 오갔다면, 최근에는 학자의 담론이 일반인에게 직접 전해진다. 지식인들의 트위터와 블로그 발언이 실시간 인터넷 뉴스로 등장하는 것은 대표적인 예다.

이제 학계 담론도 수준 높은 대중에게 즉각 전파되곤 한다. 인터넷 서평 카페 '비평고원'을 비롯해 인터넷 논객들의 블로그, 팬카페에는 실시간 인문사회학회 세미나 일정과 장소, 참여 학자들의 리스트들이 업데이트된다.

둘째는, 담론 형성과 소통의 범위가 확장됐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범주에 머물던 지식인 담론이 이제 사회 전 분야로 확장됐다. 시트콤과 드라마, 유행가가 대중문화 분석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이들 피플페서의 등장 이후다.

90년대 문화연구를 공부했던 세대가 2000년대 학계로 진출하면서 텔레비전, 프로스포츠 등 다양한 이슈를 통해 한국사회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동연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의 저서, 이택광 경희대 교수의 칼럼 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참여 방식도 이전과는 다르다. 과거의 경우 학계를 중심으로 지지층과 담론이 만들어졌다면, 이제는 일반인들이 담론의 중심에 선다. 특정 지식인의 트위터, 블로그 등 온라인에서 벌어진 담론을 계기로 오프라인 모임이 결성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우석훈 박사는 인터넷 팬카페 '액션대로망'의 몇몇 회원들과 서적 출간을 기획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기적으로 경제관련 세미나와 출판 관련 모임을 갖는다.

오창은, 이명원 문학평론가와 하승우 한양대 연구교수가 운영하는 '지행네트워크'는 지난해 사무실을 없애고 100% 온라인을 통해 활동하는 공동체로 바꾸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예술문화 세미나 모임과 소설 습작모임 등을 운영하는데, 인터넷을 통해 신청하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사회참여도 열심히 하는 지식인들. 대중과의 소통을 넓혀가고 있는 참여형 지식인의 등장은 바뀐 시대상을 드러낸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