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전보경 개인전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 3월 10일까지
2009년 전보경 작가는 이렇게 쓰인 캔버스를 들고 2시간 동안 뉴욕 월스트리트를 걸었다. 암울한 시기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이자 재난지역이었던 그곳의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한 마디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작가의 한 마디를 발견한 이들은 잠시나마 위로받거나 힘을 냈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와 관계성. 전보경 작가 작업의 두 테마는 언뜻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거의 모든 관계를 돈으로 매개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성소이자 공장인 도시에서 사람들 간 관계는 자본주의와 인간성이 만나는 사회적 현상이다.
기능적으로 분별된 관계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관계들이 문제다. 우연히 옆방에 살게 된 사람들,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길을 묻거나 펜을 빌리면서 말을 튼 사람들 간 관계는 각자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일까? 무시하기엔, 우리는 그들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어떤 사람과는 지나치지만, 어떤 사람은 두고두고 기억한다. 어떤 사람은 또 다른 나처럼 느끼며, 어떤 사람과는 오래 안부를 묻게 되기도 한다. 도시의 일상은 수많은 관계의 가능성에 둘러싸여 있다.
이는 미국에서 활동하던 전보경 작가가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떠올린 화두다. 도대체 이웃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이웃을 만들까?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방법이 있을까?
작가는 테이크아웃드로잉 레지던시에서 이웃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남동 인근 8명 이웃과의 만남을 책과 작품으로 만들 예정이며 관객과의 이웃 맺기도 병행하고 있다. 전시 기간 동안 이웃 신청을 하면 관객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이웃 맺기 방법이 제안된다.
테이크아웃드로잉 홈페이지(www.takeoutdrawing.com)에는 레지던시 기간 동안 작가의 이웃 개념 변화 일지가 게시된다. 1월 26일 환대에 대해 고민하던 작가는 다음날 마음을 바꿔 좀머 씨처럼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외치기도 한다.
2월 1일에 타인과의 대화가 "그의 가슴에 담긴 지나간 삶의 순간들을 체험하는 것"임을 깨달았고 2월 6일에는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휴대폰과 노트북이 "다른 사람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표지"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뜨끔,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