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독립을 위한 3단계 처방전

음식이나 주거지 등 가장 기본이 되는 필수품 외의 물질적인 상품에 유난히 관심을 쏟는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더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만큼 삶을 즐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물건을 획득하고 이를 유지, 보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생활은 벅차고 주변은 가득 찬다. 결국 우리가 소비한 것들에 도리어 우리가 소비되고 마는 것이다.

강박적으로 쇼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은연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손에 잡힐 것 같던 수평선이 사라져 버릴 때의 좌절과 슬픔을 안다.

무언가를 하나씩 사들일 때마다 그들의 기분은 '구입할 때의 흥분'으로 순식간에 들뜬다. 하지만 이것도 순간에 그칠 뿐, 오래지 않아 기분은 전보다 더 가라앉는다. 쇼핑 뒤에 남는 것은 수치심과 죄책감, 빚더미, 갈등, 불화뿐이다.
-에이프릴 레인 벤슨, 중에서

쇼핑에 목을 맨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억울한 일이다. 소비 환경이 개개인의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짜여져 있기도 하거니와, 다행히도 사람 마음이 원래 물건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충족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사회학과 인류학은 경제학에 맞서 이기성과 합리성만이 사람의 본성이 아니며, 소비 욕망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꾸준히 증명해 왔다.

우리는 새 전골냄비를 샀을 때보다 낡은 프라이팬으로 아이에게 달걀말이 만드는 법을 가르쳐줄 때 더 기쁘며,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보다 연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를 더 아름답게 느낀다. 매일 조깅하는 습관이 일주일에 한 번 신는 성능 좋은 워킹화보다 더 건강에 도움이 된다.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는 골똘히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의 결핍과 고독에 대해 심사숙고하려는 찰나, 세일을 알리는 인터넷의 팝업창과 쇼호스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간편하게 허기를 채워주겠다는 약속들이 신경을 빼앗는다. 이런 주객전도가 반복되면 쇼핑 이외의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된다. 쇼핑으로 인한 욕구 불만까지 쇼핑으로 해결하려 든다.

많은 전문가들이 쇼핑중독의 원인으로 자아존중감이 낮고 우울감이 높은 심리 상태를 꼽는다. 한국심리상담센터의 강용 원장은 "쇼핑중독 증상의 뒤에는 항상 외로움과 불안이 있다. 자아가 튼튼하지 않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논문 '강박구매 성향과 충동성, 일상적 스트레스 및 대처방식 간의 관계: 여대생을 중심으로'는 "강박구매 성향이 높은 사람은 일상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고, 자신의 문제를 타인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함으로써 해결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즉, 쇼핑중독은 자신의 삶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음을 외부에 드러내는 S.O.S 신호라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잠재된 쇼핑중독 가능성을 유심히 돌보아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쇼핑중독을 치유하는 방법을 따라가다 보면 건강한 소비 생활뿐 아니라 건강한 삶까지 추구하게 된다.

Step1 소비 성향 점검하기

자신의 소비 성향을 점검해보는 것이 먼저다. 왜,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보자. 에는 실제 쇼핑중독자들의 사례를 토대로 추출해 낸 질문들이 제시되어 있다.

1. 자신감을 얻기 위해, 안정을 되찾기 위해 쇼핑하는가?

2. 중요한 문제를 회피하려고 쇼핑하는가?

3. 쇼핑을 무기로 삼아 분노를 드러내고 복수를 꾀하려 하는가?

4. 사랑에 매달리기 위해 쇼핑하는가?

5.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나 기분 전환을 위해 쇼핑하는가?

6. 부와 권력의 이미지를 갖기 위해 쇼핑하는가?

7.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 어울리기 위해 쇼핑하는가?

8. 스트레스나 상실감, 과거의 정신적 충격을 덮으려고 쇼핑하는가?

9. 다른 중독들보다 덜 나쁘다는 이유로 쇼핑에 빠지는가?

10. 무언가를 지배하는 듯한 느낌을 위해 쇼핑하는가?

11.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혹은 죽음을 부인하기 위해 쇼핑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쇼핑을 둘러싼 역사를 불러낼 것이다. 뭔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면 파고들어 설명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 친구 등 믿을 만한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강용 원장은 "부모의 영향 등 가족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된 쇼핑중독 증상도 많다"고 지적했다. 낭비벽이 있거나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 아래에서 성장한 경험이 쇼핑중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 원장은 한 30살 남자의 예를 들어주었다. 아버지가 매우 엄해 억압적인 성장기를 거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자취를 시작하며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돈도 헤프게 쓰게 됐다. 결정적으로 그를 쇼핑중독에 빠뜨린 것은 주변 사람과의 관계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비싼 선물을 했던 것. 그 대가로 얻은 호감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상처를 달래주는 듯했다. "쇼핑중독의 문제는 결국 가치관의 문제죠."

병적인 쇼핑중독 성향을 갖고 있다면 전문가 상담을 받아 보는 것도 좋다. 장 원장은 다단계의 자아 성장 훈련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다른 중독 증상과 마찬가지로 쇼핑중독도 자아가 낮은 사람이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부풀리기 위해 만든 방어기제입니다. 그 점을 정확히 분석한 후 상처를 치료하고 올바른 자아상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죠."

소유한 물건과의 관계도를 그려보는 것도 유용하다. 책 <착한 소비의 시작, 굿바이 신용카드>는 집안에서 잡동사니를 추려내 보라고 제안한다. 대형 마트에서 묶음 상품으로 샀지만 계속 쌓여 있는 치약과 비누, 색이 독특해 덜컥 샀지만 너무 튀어서 신지 못한 구두, 좁은 방을 청소하기에는 오히려 불편해 구석에만 서 있는 신형 청소기 등 잘못된 의사 결정의 결과를 되새겨보는 기회다.

덕분에 집은 나날이 비좁고 할 수 있는 일도 줄어든다. "매일 습관적으로 사는 물건이 늘어날수록 우리 삶은 편안해지기는커녕 되레 구질구질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을 해봐야 한다.

물건들을 중요도에 따라 구분함으로써 소비의 기준을 정하는 일은 자기 주도적 소비 생활의 출발점이다. 목록을 작성한 후 각각의 물건들의 매뉴얼을 정하자. 예를 들면 꼭 있어야 하는 물건인 냉장고는 "항상 3분의 2만 채우고 주말마다 남은 식재료를 없애기, 냉동식품 사지 않기"라는 규칙에 따라 사용한다. 없어도 상관없는 물건인 정수기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루 한번 보리차 끓이기"를 실천해 본다 등등.

물건들을 정리하면 "약간의 수고를 덜어줄 뿐인 도구를 사기 위해 뼈 빠지게 돈을 버는 도구의 패러다임"에서 탈출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남는 돈과 에너지는 책을 읽거나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꽃을 기르는 데 쓰면 된다.

Step 2 소비 유혹에서 벗어나기

신용카드를 끊는 것은 종종 놀라운 효과를 가져 온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지불 수단을 포기하는 것을 넘어, 신용카드를 매개로 조직된 소비 자극의 네트워크에서 빠져나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할인, 포인트 제도를 믿고 긁어대는 행동을 방지할 수 있을 뿐더러 충동구매를 줄일 수 있고, 카드론의 미끼에서도 자유로워진다.

무엇보다도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나 진짜 돈을 사용함으로써 잊어버렸던 돈의 실물 가치와 경제 관념을 회복할 수 있다. 그 결과 소비 생활이 다음달 월급 미리 쓰기, 가 아닌 이번달 월급 아껴 쓰기, 로 정상화된다.

이는 체크카드나 돈의 선불제와 신용카드의 후불제를 이용할 때 소비자의 준거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선불제로 물건을 사는 경우는 '이 제품을 살 이유가 있는지, 지금 꼭 구매해야 하는지' 등을 스스로 질문한다. 제품의 장점에 준거를 두는 것이다. 하지만 후불제의 경우, 제품의 장점을 따져 보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거나 환불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일단 물건을 갖게 되면 준거가 달라진다. '꼭 반환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혹은 '반환할 만큼 결정적 문제가 있는가' 하면서 제품의 단점을 찾게 된다. 더구나 반환할 때 생기는 '수고'가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착한 소비의 시작, 굿바이 신용카드>)

소비 욕망을 자극하는 함정들은 미리 피하는 게 상책이다. 대형마트와 쇼핑몰에 발길을 끊는다. 홈쇼핑 채널은 보지 않는다. TV와 잡지 광고는 경계한다. "저건 모두 철저히 계산된 것이고, '뻥'이다"를 되뇔 것. 인터넷은 소비자가 주도권을 행사하기에 가장 어려운 매체 중 하나지만, 몇 가지 팁은 숙지하자.

스팸 필터 프로그램을 자주 업그레이드하고 팝업창을 차단할 것. 인터넷은 시간을 정해 놓고 쓸 것. 쇼핑 사이트를 '즐겨찾기'하지 말 것. 꼭 기억해두고 싶은 사이트가 있다면 차라리 손으로 써서 보관할 것. 결제를 하기 전에 심호흡을 할 것. 한정 판매에 혹하지 말 것.

자발적 결핍과 소비 지연은 소비의 만족도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있는 한도 내에서만 소비하고, 소비 전에 오래 생각하고, 여행이나 TV는 적어도 몇 달 돈을 모아 '지르라'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소비자 자신의 필요를 확신할 수 있고, 목표를 이루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다. 전자제품의 경우에는 그 동안 가격도 떨어질 것이다. 불편함과 인내가 행복의 전제 조건이라는 것은 심리학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1992년 캐나다에서 시작되어 어느새 20년차에 접어든 ' Buy Nothing Day'에 슬쩍 참여해보는 것도 좋겠다.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다.

Step 3 좋은 소비 습관 기르기

이 모든 노력들은 당신과 돈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삶의 가치가 얼마인지 판단하고, 돈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돈 사용설명서>는 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단지 물질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비물질적 의미에서도 말이다. 돈이 당신에게 미치는 정서적, 심리적 영향과 사회에 미치는 문화적 영향까지 생각함으로써 돈에게 당신 삶의 어떤 영역을 얼마나 맡길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이를 구조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사회적기업 에듀머니(www.edu-money.co.kr) 같은 전문적인 재무 설계, 교육 서비스를 이용해볼 수 있다. 통상적인 재무 상담 서비스와 달리 금융상품 가입을 추천하지 않는 이곳은 "건전한 경제 관념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돈 관리, 친환경적이고 능동적인 소비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핵심 내용만 쏙쏙 뽑은 '돈의 인문학' 강좌도 매달 열고 있다.

개인의 소비생활이 타인과 사회, 지구 전체에 어떤 파급효과를 낳는지까지 통찰할 수 있다면 좀더 의미 있는 소비가 가능해질 것이다. 지속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쇼핑 부추기는 삶의 환경에 넌덜머리가 나 1년간 쇼핑 안 하기 프로젝트를 실천한 <굿바이 쇼핑>의 주디스 러바인이 자신의 깨달음을 전수해준다.

"경제학자들과 시장 경영자들은 소비를 협소한 의미에서 기술적으로만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소비를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돈의 교환행위로 바라본다. 따라서 슈퍼마켓이나 가축사육장, 의사의 진료실 등에서 '구매의 시점'에 발생하는 것을 소비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좀 더 어구에 충실하여 광석, 기름, 흙과 같은 천연자원을 비롯한 유한한 가치물들을 바닥내버리는 것을 소비라고 정의한다." 특정 품목에 대한 전세계적 소비의 집중은 이를 둘러싼 갈등을 낳기도 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원자재 전쟁이 그 예다. 소비는 매우 정치적인 행위인 것이다.

알게 된 모든 것은 지속되어야 한다. 쇼핑의 유혹은 너무나 치밀하고 소비자는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즐거운 동기가 필요하죠." 에듀머니의 제윤경 이사는 하나의 목표를 갖고 6개월 정도의 단기 적금을 해볼 것을 제안한다. "자전거를 사거나, 지름신을 영접하겠다는 목표로요.(웃음) 대신 그 기간 동안 다른 소비는 자제하는 거죠." 적금이 만료되고 목표를 이루는 그 '맛'을 한 번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계속 하게 된다고.

이 모든 앎과 실천의 기쁨을 공유할 동지들이 있다면 더욱 좋겠다. 인생의 근원적인 결핍과 고독도 나눌수록 풍요로워진다. 삶을 의지대로 꾸려나가고, 서로 격려하는 게 다름 아닌 행복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많은 차가 필요 없다. 그들은 존경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는 옷으로 가득한 옷장이 필요 없다. 그들은 매력적이라는 느낌을 갖는 것과 흥분, 다양성,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사람들한테는 전자제품이 필요 없다. 그들은 삶을 바칠만한 뭔가 가치 있는 일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정체성, 공동체, 도전, 인식, 사랑 그리고 기쁨을 필요로 한다. 이런 모든 필요를 물질만으로는 절대로 만족시킬 수 없다. 물질적 욕망 뒤에는 정신적 공허함만이 남을 뿐이다.

-도넬라 매도르, <한계를 넘어 Behind the Limits> 중에서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