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일반인 대리만족 뒤 획일화, 사생활 노출 등 문제 커

MBC '위대한 탄생'
"편집해 주세요."

TV 카메라에 우연히 찍힌 일반인들의 당당한 권리행사가 아니다. 간곡한 부탁이자 간청이다. MBC <우리들의 일밤>의 한 코너인 '신입사원'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온통 '편집'이란 단어가 도배돼 있다. 응시자들의 푸념 섞인 간청들이 적혀있는 것이다. 1차 카메라 테스트와 2차 심층 테스트에서 고배를 마신 지원자들의 한숨이 글로 표현된 것이다.

벌써부터 '부작용'이 시작된 것일까? 그런데 이런 글귀들은 말 그대로 푸념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신입사원'에 지원하기 전 일명 '노예계약'이라는 논란이 일었던 항목에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지원서 항목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은 원서조차 쓸 수 없었다. 그러니 "편집해 달라"는 말은 어불성설인 셈이다.

그 동의 항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MBC에게 내 목소리, 행동, 이름, 모습, 개인정보를 포함한 기록된 모든 사항을 프로그램에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합니다.

MBC '우리들의 일밤' 기자간담회
△㈜MBC는 나의 초상과 자료를 2차적 저작물의 사용 등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등을 포함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MBC는 필요에 의해 나의 초상과 모든 자료들을 사용, 수정, 복사, 출판, 공연, 배급, 선전할 수 있으며 이에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계약할 수 있습니다.

△㈜MBC와 본 프로그램에 관련된 관계자 및 모든 제작진은 나의 프로그램 지원 및 참가, 프로그램의 방영 취소,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신체적, 정신적 손상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상해야 하는 의무가 없습니다.

△내가 지원함으로써 알게 된 ㈜MBC나 프로그램 관련 내용 등 모든 정보에 대해 허용된 범위 외에는 절대 발설하지 않을 것에 동의합니다.

지원자들의 후회막급한 상황이 눈에 훤히 들어온다. 한 번 지원은 했으나 미역국을 마신 이후에는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는 현실, 더욱이 영원히 남을지도 모를 기록들 말이다. 간절한 절규의 이 말이 이토록 가슴 시린 적이 있었던가.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중 합창단
"제발 편집 꼭 좀 해주세요. 정말 생활이 힘들어질 것 같아요."

사생활 노출의 수위조절 필요하다

결론부터 말해 보자.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대리만족이다. 나와 비슷한 일반인들이 꿈을 이루는 과정, 그 비현실적일 것 같은 바람들이 성취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온몸을 감싼다.

그런 가운데 따라오는 우리네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첨가물이다. 그런데 이 첨가물이 주객전도되어 메인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이지 않아도 될 법한 상황들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것이다.

<슈퍼스타 K> 시즌 2의 우승자 허각은 환풍기 수리공이라는 독특한 직업 이외에 부모의 이혼, 중학교 중퇴 등 가난한 환경들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우승이라는 값비싼 대가와 맞바꾼 느낌마저 든다. 불우한 가정사와 열악한 환경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우승을 거머쥔 그의 모습은 당연한 것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허각이 굳이 부모님의 이혼이나 중학교 중퇴, 어머니의 존재 등을 TV를 통해 고해성사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런 고백이 아니고서는 우승할 수 없었을까?

"카메라는 소형화되고 영상은 일반화되면서 리얼리티 TV에 대한 요구에 의해 사생활을 끼워 넣고 있다. 훔쳐보기식 프로그램의 출현으로 사생활이 TV영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의 지적이다. 그는 일반인들이 TV에 출연하는 것을 두고 "이제는 사생활 노출에 있어 그 수위조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TV화면을 채우면서 사생활이 침해에 가까운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의 노랫말처럼 예전의 TV는 그 대상에 있어서 차이가 확연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인들이 TV 속으로 들어와 그 안의 이야기들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러니 그들의 사생활을 얼마나 허용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생활 노출 수위가 국민 정서에 맞아야 함은 당연한 얘기다.

특히 아나운서와 같은 특정 직업에 있어서 공개 오디션의 부작용은 어쩌면 부수적 산물인지도 모른다. 대내외적으로 엄격한 아나운서의 특성상 지원자들의 탈락 순간이나 일침은 자존심과 직결된 문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지원자들의 실수나 나쁜 버릇에 대해 따끔한 독설을 퍼붓는 심사위원의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예인들이 서로에게 독설을 가할 때는 통쾌함마저 들지만 일반인들에게 가해지는 독한 멘트는 아프다.

음반 프로듀서 겸 작곡가 박성일 씨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의 독설은 주관적인 취향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독설과 함께 오디션에 도전한 사람들이 성장, 발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면서도 "그러나 그런 순리가 아닌 너무 자극적으로만 가려는 시도는 안타깝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방송사의 횡포"라고 꼬집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결정체!"

오디션 프로그램을 두고 시청자가 만들어 가는 프로그램이라고들 한다. 오디션의 예선전은 모두 심사위원이 평가하지만, 진정한 최후의 1인은 시청자가 뽑기 때문이다. 올해 문을 연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보면 더 그렇다. <슈퍼스타 K>, <위대한 탄생>, <기적의 오디션>, <오페라스타 2011> 등은 시청들의 손에 후보자의 운명이 맡겨져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적극적이고 솔직하며 당당한 의견이 반영된 곳이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의 활용으로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즐기기 위해 방송에 참여하고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은 행복을 추구한다. 이제 TV는 제작자와 시청자가 일치되는 시점이다."

시청자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두고 SBS ETV 김경남 PD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고 말한다. 일반인들이 대거 출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시청률에 있어서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효과 때문이라는 것.

즉 시청자가 제작진보다 앞서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흐름을 조율할 수 있는 '주인'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다.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의 '정(情)' 문화가 접목되면서 방송에서 노출된 일반인들의 도전에도 관심을 집중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능의 흐름이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토크쇼로 넘어오면서 지금은 그의 중간 형태인 오디션 프로그램이 자리하고 있다. 리얼한 상황과 이야기가 공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야말로 한국적인 정서가 잘 배어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인생역전 드라마까지 보여주니 한국형 리얼리티 쇼의 결정판인 셈이다.

정덕현 평론가도 "오디션 프로그램은 외국에는 없는 한국형 리얼리티 쇼"라며 "대결과 우승자만 있는 외국 프로그램과 달리 그 속에 숨겨진 출연자들의 사연들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각본에 짜인 리얼 버라이어티에 싫증을 느낀 시청자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눈을 돌리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논리가 시청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최근 이런 논리는 한류 열풍으로 시장이 커지면서 국내를 넘어 아시아, 유럽과 미국 등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글로벌하게 지원자들을 발탁하면서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박성일 작곡가는 "비전공자들에게 기회가 많아지고,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저변확대에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겹치기 문제, 획일화의 문제

하지만 너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범람으로 지원자 중복현상을 낳을 수 있다. 겹치기 출연은 프로그램에 독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한 프로그램에서 봤던 인물을 타 방송사의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는 것만큼 끔찍한 건 없다. 또 비슷한 설정의 출연자도 불편하다.

<슈퍼스타 K>의 김용범 PD는 "타 프로그램에 도전했던 지원자나 <슈퍼스타 K>의 시즌 1,2에서 떨어진 지원자들 모두 도전할 수 있다"고는 했지만, 다른 방송에서 탈락한 사람에게 1위를 줄 리는 만무하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안고 있는 숙제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방송사들의 '쏠림 현상'이다. 시청률 상승에 급급해 흉내내기에 끝나고 마는 경우가 많아질지도 모른다. 거대 방송사들의 비슷한 포맷의 획일화된 오디션 장면들은 식상함과 지루함을 남길 뿐이다.

KBS 예능국의 윤현준 PD는 이 쏠림 현상에 대해 "창작자의 양심 문제"라고 언급했다.

"시청자들이 원한다고 해서 트렌드만 쫓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트렌드를 이끌어 가는 건 제작자 및 연출가라고 생각한다. 창작자로서 창의적인 마인드의 욕심과 복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