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일주일 비건(엄격한 채식주의자) 체험기

이탈리안 레스토랑(안드레아)
"왜 삼겹살은 되고 보신탕은 안 되는 겁니까?"

돼지 입장에서 이건 '차별'이다. 왜 우리는 음식으로 길러져야 하는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종은 도축장으로 보내고 어느 종은 반려동물이 된다. 도대체 왜?

그래서 시도해보았다. 모든 고기 끊고 살아보기. 가축 생산 시스템 거부해보기.

"혹시 채식주의자세요?"

몇 달 전 시인 허수경 씨를 인터뷰 했을 때 그녀가 물었다. 신작 시집에 실린 장시 '카라쿨양의 에세이'는 양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내용인데, 기자가 이 작품에 대해 장시간 꼬치꼬치 캐묻자 허 씨는 "서양에서는 채식이 유행"이라며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그럴 리가요."

그리고 아주 잠깐 '시도'한 적은 있다고 대답했다.

시작은 '미친소'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던 때, 미친소의 사육시스템을 보면서였다. 나름의 정치적인 이유로 창대하게 시작했으나, "다 부질없다"는 생각에 8개월 만에 다시 잡식주의자로 돌아갔다. 미친소는 소가 소를 먹어 생긴 저주가 아니라, 소가 양의 부산물을 먹고 프리온단백질을 합성하며 만든 병이었다.

초식 동물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다큐멘터리는 '토끼가 풀만 먹는 건, 성질이 착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진리를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채식을 실천할 때도 단계가 있다. 첫 단계는 소나 돼지, 양처럼 네 발 달린 동물부터 끊는 폴로 베지테리언이다. 두 발 달린 조류는 먹는다는 말이다. 이후 해산물은 먹는 페스코, 우유와 계란까지 먹는 락토오보, 이 모든 것을 금하는 비건이 있다.

이들은 인위적인 동물 사육 시스템에 반대해 무정란과 우유는 물론 벌꿀도 먹지 않는다. 단계를 천천히 올리며 풀만 먹고 사는 채식주의자로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주 잠깐 채식주의자로 행세했을 때, 기자는 폴로를 거쳐 페스코 단계를 밟고 있었다.

일주일 비건으로 살아보기. 결과부터 말하면 비건 되기는 페스코 되기와 질적으로 달랐다. 생선과 해산물을 먹는 페스코는 한동안 커밍아웃하지 않고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가령 제육덮밥 대신 오징어덮밥을 시키면 되고, 술 먹은 다음날 뼈다귀해장국 대신 동태탕으로 해장을 하면 되는 생활이다.

회식으로 삼겹살을 먹게 되면 "아~ 튼튼하게 생겨서 한약 먹어요"라며 계란찜과 해물파전을 먹으면 될 일이다. 8개월 동안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같은 부서 기자 중에서도 일부였다.

비건이 되기란 이 계란찜과 해물파전을 먹지 못하는 생활을 말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실존의 문제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음식 갖고 장난하는 '포즈'로 보일 수도 있다.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반드시 커밍아웃을 할 수밖에 없다. 비건으로 살아본 일주일 동안 주위사람들의 배려는 눈물겨웠다.

그러나 인터넷 공론이나 주위의 배려와 별개로, 비건 인구에 대한 사회제도의 배려 따위는 없었다. 소수이니까. 수지타산에 맞지 않으니까. 투자대비 이윤이 없기 때문에 "모든 희귀병은 난치병"이라고 했던 한 경제부 기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시작한 일주일

3월 5일 아침. 인터넷을 뒤져 주말 메뉴를 정하기로 했다. 어차피 풀만 먹어야 되는데, 이 참에 다이어트나 해볼까? 일주일 만에 6kg을 빼준다는 마녀수프를 검색했다. 토마토, 셀러리, 양파, 양배추, 당근…. 닭 육수는 제외시켰고 카레는 일본 수입산 'S&B카레'를 샀다.

국내업체가 출시하는 카레가루에는 모두 육수 맛을 내는 치킨스톡과 비프스톡이 들어가 있어 채식주의자들은 꼭 이 일본산 'S&B카레'를 쓴다. 부엌 한 켠에 산처럼 쌓인 비상식량들-비스킷, 크래커, 초코파이-과 잠깐, 안녕을 고하고 수프를 끓였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왜 일주일 만에 6kg이 빠지는지 알 것 같았으나, 다음날은 외식을 하기로 했다.

이튿날 홍대에서 영화를 봤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온 탓에 역시 할 일 없어 일찍 온 김근 시인과 커피를 마시며 이영주 시인을 기다렸다. 일요일 오후 모인 싱글 셋은 한동안 얘기를 나누다 영화를 예매하러 극장에 들렀다. 죄다 매진이었다.

"일요일 오후에는 사람들이 많았었지."

"뭐, 주말에 영화 본 적이 있어야지."

두 시간 후 상영할 영화를 예매하고 셋은 다시 카페로 갔다. 와플을 먹으려다가 계란과 우유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메뉴를 샐러드로 바꿨다. 치킨샐러드, 시저샐러드, 해산물 샐러드…. 치킨샐러드를 시켜 채소만 건져 먹었다. 야채샐러드에서 치즈 걷어내는 것보다 쉬울 것 같았다. 양상추를 씹으며 비건 체험기 기획을 말했다.

"한국에서 비건 되는 거, 인간관계를 단절시키는 거 같은데 실제로 그런가 해보려고요."

"채식주의자를 나쁘게 보진 않아요. 하지만 극단적으로 고기를 거부하려는 건 동의하기 어렵죠. 유목민들 주식이 고기인데, 유목민은 가축을 가장 고통스럽지 않게 한 번에 죽이는 걸 원칙으로 하거든요. 고기를 먹더라도 생명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 된다고 생각해요. 미국 같은 대량생산 시스템은 저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김근)

"아버지가 시골에서 소를 키우시는데, 구제역이나 수입 때문에 걱정을 해도 소를 돈으로 보진 않거든요. 키우던 소 팔 때 농부들이 울어요. 예전 돼지나 소를 직접 키워 잡아먹을 때도 자기가 키운 짐승은 먹지 않았다고 하잖아요."(이영주)

이후 두 시인은 각자 책에서 읽었던 문구를 인용해 육식에 대한 '사유'를 말해주었지만, 배가 고파 기억나지 않으므로 패스. 카페를 나서며 김근 시인이 말했다.

"저녁은 월남쌈 어때요?"

단백질을 사수하라

기획회의가 끝난 7일 정오. 회사 식당으로 향했다. 메뉴는 김치 볶음밥과 제육쌈밥. 볶음밥 속 햄을 일일이 건져내느니, 제육볶음을 포기하고 쌈밥을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돼지고기 들어간 미역국까지 제외하니 먹을 수 있는 건 쌀밥과 열무김치, 콩나물무침, 상추가 전부였다. 열무김치에 젓갈이 들어갈까? 의심스러웠지만 그냥 먹기로 했다.

기자의 월요일 생활처럼 일반식 식단에서 고기를 제외하다보면 심각한 영양불균형 상태가 된다. 채식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현미밥을 먹어야 한다. 하루 세 끼 먹는 현미밥 속 단백질만으로 이미 하루에 필요한 단백질 양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 견과류나 두부, 두유 등으로 단백질을 보충하면서도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야 한다.

영양불균형과 함께 채식주의자들이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이 탄수화물 중독증이다. 고기는 물론 각종 고기의 부산물이 첨가된 화학조미료를 먹지 않기 때문에 음식을 통한 즐거움은 대부분 '단맛'에 집중된다. 지난 일주일 동안 커피를 마실 때마다 설탕을 넣었는데, 커피에 넣는 양이 늘수록 '이래서 탄수화물 중독증에 걸리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소이라떼 있나요?'

화요일 인터뷰 전 스타벅스를 찾았다. 탄수화물 중독을 피하고 단백질을 보충하려는 나름의 전략이었지만, 비건은 시중에 판매 중인 소이라떼를 그대로 먹을 수 없다. 소이라떼는 두유로 만들지만, 두유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넣는 바닐라시럽에는 생크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아메리카노에 설탕을 넣어 마시며 취재원을 기다렸다.

왜 피곤하게 살아?

화요일과 수요일 저녁에는 밥 먹는 모임에 가기로 했다. 화요일 저녁 인사동 저녁모임을 가기 전, 동생에게 찹쌀떡을 주러 노량진에 들렀다. 12일 법원직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있는 터라 저녁을 사주려고 '예의상' 물었다.

"뭐 먹고 싶어? 근데 누나 비건 체험기 쓴다. 채식하며 일주일 살기. 다시 물을게. 뭐 먹고 싶냐?"

동생은 노량진 수산시장이 옆에 있다며 기자를 초밥집으로 끌고 갔다.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선생 앞에서 입 짧은 기자가 되느니 유부초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저녁 모임에 조금 늦게 가기로 했다. 정작 인사동 한정식 집에는 각종 풀 요리가 풀코스로 차려져 있었지만. 막걸리를 마시며 '술은 곡류로 빚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기를 끊어도 술만 끊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선배 생각해서 파전 시켰어. 근데 왜 사서 고생이야?"

수요일 저녁, 출판에이전트 임프리마코리아 이구용 상무와 술자리에서 먼저 와있던 후배 기자가 말했다. 최저생계비로 한 달 살기 체험기를 쓴 녀석이었다. 안주는 홍합과 오징어가 들어간 해물파전이었다.

"너보다 낫지 않냐? 근데 비건은 해물 넣었다 뺀 음식도 안 먹어. 그리고 저 코팅된 계란물은 어쩔 거야?"

메뉴판은 자연스럽게 기자 손에 주어졌고, 두 번째 안주는 두부김치로 낙점됐다. 김치는 돼지고기에 볶아서 나왔고, 이구용 상무는 밑반찬 김치를 당겨 주었다.

"새우젓 때문에 이것도 못 먹어요."

그때부터 기본 안주인 고구마는 비건 기자의 '신성 영역'인 양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그럼 죄의식에서 벗어날까

"실제로 먹을 게 많은데, 채식한다고 하면 까다롭고 예민하다는 선입견을 가져요."

목요일 점심은 소설가 김규나 씨와 먹었다. 커버 기획이 통과되자마자 잡았던 스케줄이다. 김 씨에게 채식으로 몸보신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김규나 작가는 "비건이 아니라 비건이 되려는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그녀가 비건이 되지 못한 것은 시판 중인 김치를 사먹기 때문이다.

"예전에 오신채까지 뺀 김치를 산 적이 있는데 10kg이 기본 주문량이라서 혼자 다 먹느라 고생했어요. 다음부터는 시킬 엄두가 안 나더라고."

김 씨가 채식을 생활화한 건 2년 전부터. '새우젓 들어간 김치'를 제외한 평소 식생활은 비건에 가깝다. 단, '꼭 먹어야 하는 자리'에서는 버터가 들어간 빵이나 치즈가 얹힌 피자, 요구르트 등을 먹기도 한다.

밥 먹는 모임에서 분위기를 흩트리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타협인 셈. 대다수 채식주의자들이 단계를 밟아가며 서서히 비건이 되는 것과 달리 김규나 작가는 단번에 비건으로 전환했는데, 초기에는 식생활을 너무 철저하게 지키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불편할 정도였다고.

"이런 음식을 먹으며 가장 좋은 건, 음식을 먹으려고 누구의 피도 흘리지 않는 거야. 근데 내가 식생활을 바꾸려는 것도 결국은 행복하게 살자는 건데, 이런 말들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니까…."

기자가 잠깐 페스코를 시도한 것도 김 작가를 만나면서부터였다. 가끔 김 작가를 만나며 서울의 맛있는 채식 식당을 찾고, 먹을거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큰 즐거움이었다. 사실 대다수 채식주의자들은 결코 주변에 채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묵묵히 고기를 거부하다가 같은 채식주의자를 만나면 그때부터 육식과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털어놓는다.

마치 같은 종교 신자를 만나 반가워하는 것처럼. 전도하고 싶지만, 그것은 너의 권리라고 마지노선을 긋는다. 때문에 다시 잡식주의자로 돌아간 이후로도 유독 김 작가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취재를 하면서 비로소 다시 커밍아웃을 했다. 저는 잡식주의자입니다. 인간이 동물을 먹는 것, 그렇게 하도록 규정된 것 같았어요. 어차피 우리는 누군가를 착취하며 살고 있으니까요. 육식을 거부하는 건 그 죄의식을 은폐시키려는 포즈 같았습니다.

채식 끊는 날

마지막 날. 냉장고에서 발효되고 있는 양배추와 양파와 토마토를 꺼내 마녀수프를 끓였다. 냉동실에서 꽁꽁 얼린 잡곡밥을 꺼내 수프에 투하했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픈 수프에 만 잡곡밥을 '야채 커리 리조토'라 우기며 예쁜 그릇에 담아 먹고, 다시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비건 체험기를 소개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흥미롭게 '관찰'하면서도 고기 안 든 음식을 기자 앞으로 당겨주며 배려해주었다. 관건은 '고기 안 든'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람들과 만날 때 식당 동선에 한계가 있었다.

채식에 관한 당신의 생각이 어떠하든지 채식을 실천할 여건은 각오한 것보다 나쁘지 않다. 탄수화물 중독만 조심하면 채식을 하면서도 건강을 챙길 수 있고, 비건을 위한 음식도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유행하기 시작했으니까.

단, 채소 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 양파 한 개와 라면 한 봉지와 가격이 비슷했다.

채식 파스타 & 피자

기사를 취재하며 이탈리안 레스토랑 'ANDREA'(02-771-6926)에 도움을 요청했다. 레스토랑 메뉴판에 있는 음식 중에 고기, 생선, 계란,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하지만 백화점 명품관에 입점한 탓인지, 메뉴는 중산층 가족의 입맛에 맞춰져 있었고 거의 모든 음식에는 고기, 해산물, 치즈가 들어 있었다. 이곳에서 채소와 과일만 넣은 메뉴는 한정 판매 중인 루꼴라 샤베트밖에 없었다.

"메뉴판에 없지만 간혹 손님들께서 주문하시면 따로 만들어 드리긴 합니다. 파스타는 건면과 생면을 함께 쓰는데 이럴 땐 생면을 따로 뽑습니다."

계절별로 채소나 과일을 사용한 특식을 잠깐 내놓긴 하지만,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을 주메뉴로 선보이는 국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없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음식 가격 탓에 고기나 해산물을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 '제대로 대접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

이안열 요리사는 "계란이나 우유까지 빼달라는 분들은 천 명에 한 명 정도"라고 말한다.

"아주 간혹 요구하시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이런 고객들은 음식 맛을 거의 기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비건에게도 맛있는 요리를 즐길 권리는 있다. 다음은 'ANDREA' 이안열 요리사가 공개한 구운 야채 피자와 생야채와 버무린 시금치 페투치니의 레시피. 물론 정식 메뉴판에는 없는 특식이다.

1. 구운 야채 피자

1) 파프리카1/4쪽, 애호박 1/4쪽, 가지1개, 느타리버섯4개, 양송이버섯4개, 표고버섯4개를 깍뚝 썰기해 소금 간을 약간 하고 오븐에 구워낸다.

2) 강력분1kg, 물 600g, 소금10g, 이스트5g을 넣어 만든 피자 도우를 손으로 편 다음 루꼴라 오일을 골고루 펴 바르고 300`C의 오븐에서 구워낸다.

3) 구운 피자를 접시에 담고 1)의 재료와 시금치 10장, 루꼴라 10장, 삶은콩 50g, 건포도 50g을 섞어서 구워낸 피자 위에 얹는다.

2. 생야채와 버무린 시금치 페투치니

1) 시금치로 반죽한 생면(없으면 건면 페투치니로 대체, 시중에 계란을 뺀 파스타도 있다)을 끓는 물에 5분 정도 삶은 다음 찬물에 넣어 헹군다.

2) 토마토 1개, 로메인 상추 3장, 통차콘 2장, 엔다이브 2장, 양상추 2장, 파프리카 1/4개를 썰어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3스푼, 소금, 꿀, 레몬즙을 넣어 만든 드레싱에 버무려 접시에 담는다.

3) 두부 50g을 손으로 떼어서 위에 고명으로 얹어준다.(치즈대용)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