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블랭크 이주연 기획팀장'클로젯 프로젝트' 옷마다의 이야기 새롭게 살려내

리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리블랭크의 이주연 기획팀장은 '윤리적 패션' 전공자다. 그런 학문이 정말, 있다.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하고 패션 홍보회사에 다니던 그는 패션을 통해 "좋은 일을 좀 더 멋지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유학을 떠났다.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은 영국에서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패션을 열심히 고민하고 돌아왔다.

"티셔츠 하나를 만들어 파는 과정에도 사회적 파급 효과가 있는데, 패션산업 전체는 어떻겠어요? 예를 들면 한국 근대화 과정에 기여한 섬유 공업이 그만큼 환경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영국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벼룩시장이었다. 빅토리아앤알버트뮤지엄에서 열린 행사에서 안 입는 옷을 교환해본 후 친구들과 옷을 나누어 입는 데 익숙해졌다.

"영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런 문화가 생겼다고 해요. 벼룩시장이 활성화된 것도 그 때문이죠. 한국 사람들은 새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이 입던 옷은 꺼림칙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익숙해지면 정말 유용한 문화예요."

그런 그가 옷을 구입하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옷을 버리면 내 눈 앞에서는 없어지지만 어디선가 해가 되고 짐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오래 입을 수 있는 옷만 고르게 된다.

이제 옷이 그냥 옷으로 안 보인다고. 그러다 보니 누가 사주었는지, 어떻게 사게 됐는지, 언제 입었는지 등 옷마다의 이야기를 다 간직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옷이 많아진다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할머니의 치마를 입은 적도 있어요. 그때는 합성섬유가 거의 없었으니까, 오히려 품질이 요즘 옷보다 좋더라고요. 옷을 너무 쉽게 사고 버리면 이런 경험도 할 수 없겠죠."

리블랭크의 '클로젯 프로젝트'는 옷마다의 이야기를 새롭게 살려내는 작업이다. 소비자가 안 입는 옷을 가져오면 가방으로 만들어준다. 역사는 간직하면서 쓸모를 부여하는 디자인이다.

주로 입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옷들이 맡겨진다. 첫 월급을 쏟아 부은 낡은 가죽재킷, 젊은 호기로 산 분홍색 바지 등이 리블랭크를 거쳐 갔다.

"한국 사람들은 패션을 추구할 때 아직도 다른 사람들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주관이 강해야 자신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어요."

지속 가능한 패션 문화도 소비자의 주관을 동력 삼는다. 하지만 인식을 높이는 것이 개인의 일만은 아니다. 영국 등 서유럽에서는 정부와 언론 등 다양한 공공영역의 지원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규모가 큰 패션 브랜드들이 움직여야 한다. 그들이 소비자와 더 가깝기 때문이다. 리블랭크가 마인과 케이스위스 등의 브랜드와 협업해 온 것도 그 때문이다.

"큰 기업들이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지속 가능한 패션에 관심을 기울이면 어떨까요? 그건 스스로에 대한 투자이기도 합니다. 곧 소비자들이 윤리적 활동을 하지 않는 기업들을 외면하는 시대가 올 테니까요."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