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소설가, 프리랜서 작가 3人 '방 독립'주거와 일 분리 나만의 작업실 마련, 비용, 장단점 등 점검

는 공간이 넓은 장소인 소규모 공장밀집지역 건물에 입주해 작업 중이다.
'전세 대란 탈출비법 공개 세미나 개최.'

지난주 한 일간지 경제면 뉴스는 서울의 단면을 반영하고 있다. 인구는 불고, 1인 가구는 느는데, 집은 여전히 핵가족을 기준으로 지어진다.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은 20~30대의 주거 독립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다. 젊은 층이 여전히 '품 안의 자식'으로 살아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다.

작금의 부동산 사회에서 30대의 주거 독립이 어렵다면, 우선 방부터 독립해보면 어떨까? 대다수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방을 만들고 이 공간을 집과 분리시켜 작업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이 제대로 된 글을 쓰려면 일 년에 오백 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 게 1929년이니 '방 독립'은 근 80년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화가, 소설가, 프리랜서 작가의 방을 구경했다. 방 독립에 드는 비용과 장단점, 투자 대비 효율성을 점검해봤다.

탁 트인 공간, 넓은 시야 확보

화가 전희경씨
서양화가 전희경 씨는 홍익대 학부 졸업 무렵인 2004년 'Team preview, Inc' 전을 시작으로 8차례 개인전과 기획전을 가진 젊은 작가다. 자신을 비롯한 젊은 세대들의 일상과 주변부 모습을 작가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추상화를 주로 그린다.

그녀의 방은 마포구청역 근처 소규모 공장 밀집 지역에 있다. 건물이 약간 낡았지만 15평가량 되는 꽤 넓은 방이라 작업을 하기에는 좋다. 큰 그림이 한눈에 들어올 시야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 2009년 대학원을 졸업한 후 선배의 작업실에 룸메이트로 들어가면서 집과 작업실을 분리했다고. 전 씨가 룸메이트에게 주는 비용은 월세 20만 원과 공과금.

"이 방을 구하기 전 6~7군데를 더 알아봤는데, 홍대 근처는 방이 너무 작거나 지하에 있더라고요. 2×2m 방에 월세 15만 원 정도였으니까. 저는 큰 작품을 그리고 싶어서 이 방을 얻었죠. 집과 작업실 간 거리와 작업실 월세, 공간 사이즈를 생각해보고 여기로 결정했어요."

방을 독립시키기 전, 전 씨는 원룸에서 작업과 일상생활을 병행했다. 물감이 마르는 동안 빨래나 청소를 하다가 작업 리듬이 끊어지곤 했는데, 여기서는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단다.

아침 10시쯤 작업실에 도착하면 밤 11시 막차가 다닐 때까지 작업하는 날이 많다. 방을 독립하며 생긴 최대 단점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

소설가 김도연씨
신촌 근처 집과 작업실 간의 거리는 도보로 1시간 10분. 버스나 전철을 타도 왕복 40~50분은 너끈히 걸린다. 그래도 시간과 비용 투자 대비 방을 갖는 게 작업을 할 때 더 효율적이라는 게 전 씨의 결론.

방 독립 이후 작업 스타일이나 작품 경향이 바뀌었는지 물었다.

"색감이나 메시지는 비슷한데, 스케일이 커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집에서 그릴 때는 소극적이고 세밀하게 그렸는데 지금은 큼직하게 그리죠.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거리가 확보되다 보니까 하나의 이미지보다는 화면 전체에 포커스를 맞춰 그려요. 지금은 그렇게 해서 생긴 장단점을 풀어가는 과정이죠."

24시간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어

김도연 씨는 장편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소설집 <이별 전후사의 재인식> 등을 낸 중견 소설가. 임순례 감독의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원작자이기도 한 그는 강원도에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주로 오전에 소설을 쓴다. 그가 글쓰기에만 매달릴 수 있는 기간은 농한기인 겨울철. 올 1월부터 김 씨는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자기만의 방'을 얻어 단편을 쓰고 있다.

소설가 김도연씨는 연희문학 창작촌에 입주해 집필 중이다.
연희문학창작촌은 서울문화재단의 창작공간 추진 사업의 하나로 지어진 문학 전용 집필실. 2009년 가을부터 국내외 문인들의 창작활동과 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순수문학 창작자들에 한해 3개월간 집필실을 빌려준다. 비용은 한 달에 평당 5만 5000원(부가세 포함). 7평가량의 집필실을 사용하는 김도연 작가가 내는 월세는 4만 원이 조금 안 된다. 이곳에서 작업하는 동안 자동차 기름값이 절약돼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었다고.

매 분기 시, 소설, 희곡, 동화, 동시 작가 20명이 이곳을 이용한다. 발표한 창작물, 신청 이유, 수상경력, 이용 계획서 등을 쓴 신청서를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매년 3월, 분기별 선정 작가를 발표한다.

"이런 공간의 장점은 24시간을 집필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거죠. 강원도에 있을 때는 낮에 5시간 정도만 도서관에서 글을 썼어요. 일상이 있고 해야 할 집안일도 있고…. 여기서는 밤에도 작업을 많이 하죠."

일반인들이 누리지 못할 호사(?)를 누리는 만큼, 집필실을 쓰는 동안 작가들은 창작촌 주변 시민들을 위한 특강이나 낭독회 등에 참여해 '문화 재분배'에 동참하기도 한다.

는 쉽게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홍대근처 상수동 빌라에 작업실을 마련해 집필 중이다.
사용 기간 일정 부분 의무도 따른다. 선정 작가들은 한 달에 15일 이상 '자기만의 방'을 사용해야 한다. 실제로 이 규정을 어겨서 퇴출된 작가도 있다.

1월부터 3달 동안 김 씨는 단편 소설 2편과 산문 한 편을 발표했다. 조만간 단편 한 편을 더 마감할 계획이다. 올겨울 김 씨가 방 독립을 실행하며 겪은 어려움은 세 끼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었다고. 집에서는 어머니가 차린 밥상을 받았지만, 이곳에서는 당연히 자기 손으로 밥을 해 먹어야 했다.

"20년 만에 쌀을 씻어서 밥을 해먹었는데, 근데 그게 좋았더라고요. 제 소설에 자연과 농촌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정작 작가인 제가 잊고 있던 감각도 환기되고…. 어린 시절 자취하던 때도 기억나고요. 근데 한 달 지나니까 밥 해먹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일, 공부, 휴식에 최적 장소

프리랜서 작가 이정화 씨는 최근 상수동에 방을 얻었다. 어린이 생활사 관련 책을 집필 중인 이 씨는 이 외에도 월간지 <객석> 등 문화예술잡지 교정을 보거나 프리랜서 기자로 글을 쓰고 있다.

작가 겸 프리랜서 기자인 이정화씨
최근 대학에서 철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일주일에 이틀은 꼭 밤을 새우게 된다고. 경기도 안산의 집, 잡지사와 학교가 있는 대학로, 일터인 예술의전당 등 동선을 고려해 작업실을 상수동으로 정했다.

이 씨는 방 2개와 주방이 딸린 다세대 주택을 구해 친구 둘과 나눠 쓴다. 이 중 방 하나는 쇼핑몰을 운영하는 친구가 생활을 하면서 상주하고, 나머지 방 하나를 친구와 함께 작업실로 쓴다. 룸메이트인 신민정 씨는 EBS와 OBS 다큐멘터리 대본을 쓰는 15년차 방송작가. 신 씨 역시 경희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4일은 밤을 새운다고.

"친구들과 동선을 맞추다 보니 상수동, 합정동, 홍대 일대에서 작업실을 찾기로 했어요. 일터나 학교를 오가는 거리가 1시간 안으로 해결 되는 곳, 제일 중간이 여기였죠."

이 씨가 한 달에 지불하는 비용은 20만 원. 보증금 2000만 원은 상주하는 쇼핑몰 운영자가 내기로 하고, 각자 20만 원씩 갹출해 월세와 공과금을 해결하기로 했다.

투자 대비 효율은 어느 정도일까? 이 씨는 "작업 공간에서 더 잘 집중할 수 있고, 카페를 전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이점이 많다. 하루 평균 이동 시간 2시간 정도는 절약된다"고 말했다. 직업의 특성상 밤샘 작업이 많은데, 작업실을 얻은 후 오전 시간에 책을 볼 여유가 생긴 것도 좋다고.

이 씨가 이 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일주일에 보통 25~30시간 정도. 지난 2주 동안 월간지 2권 교정을 보고, 인터뷰 기사를 넘기고, 단행본 도서 기획을 끝냈다. 시간 투자대비 성과가 쏠쏠한 셈이다. 동선이 겹치는 장점 이외에도 각종 문화시설이 밀집돼 있다는 것이 이곳의 장점이다.

"집과 방을 분리해서 생활하니, 우선 문화생활을 할 수 있어 좋아요. 작업실 얻기 전 카페에서 주로 글을 써서 그런지 뭔가 일이 안 풀릴 때 카페로 가는 버릇이 있거든요. '코피스족'이라고 하던데, 그 성향이 아직 남아서 이 방에서 일이 잘 안 풀리면 컴퓨터 들고 근처 카페서 작업하죠. 홍대 일대가 다매체적인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인데다, 예전 제가 활동하던 것도 이 일대 중심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고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