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코리아국회포럼 주최 세미나서 패션 박물관 건립 등 거론

런던 V & A 박물관 전시
왜 아무도 하얀색 스타킹을 신지 않을까? 왜 약속이나 한 듯 까만 구두를 가장 먼저 살까? 엉덩이 살이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는 입으면서 왜 어깨를 드러내는 건 꺼려할까? 지금 한국 패션의 특징적 현상은 어떤 경로를 통해 무슨 이유로 변화되어 온 것일까?

최근 한국 패션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국내 언론은 그들에게 거의 매번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해외에서는 당신의 옷 어디에서 한국적 미를 발견하던가요?"

어떤 디자이너들은 그 한국적 요소를 한복이나 기와 단청이라고 이해해 "그런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고, 다른 이들은 한참을 생각한 뒤 한국인들의 섬세한 손 재주나 패치워크, 곡선의 미 등을 이야기했다.

그들 중 대한민국의 디자이너로서 한국의 미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진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한국인인 그들이 보여준 미감이 즉 오늘 한국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양장이 도입된 지 100년이 지났다. 아름다운 전통 복식의 역사가 강제적으로 거칠게 절단된 것은 슬픈 일이지만, 100년 사이 한국인의 미감은 서양복식이라는 틀 안에서 변화무쌍하게 꽃피었다. 그렇다면 아직도 한국의 미를 전통 복식에서만 찾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19세기 후반, 우리 옷은 밀려 들어오는 양장과 부딪히며 역동적인 복식사를 써냈다. 전통과 현대가 교감하고 경쟁하며 취사선택된 시기.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서양 옷 속에 숨어 있는 한국의 패션 DNA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그 시기를 들춰 보아야 한다.

한국인의 99%가 양장을 입고 있는 지금, 그 100년의 역사가 전혀 정리되고 연구되지 않은 채 방치된 것은 절단된 복식사만큼이나 슬픈 일이다.

"어떻게 이 나라에 코스튬 뮤지엄이 없을 수가 있나?"

3월 14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는 국회입법조사처와 디자인코리아국회포럼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 '창조산업의 첨병, 패션문화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 방안'이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패션 도시 육성, 패션 진흥 정책의 중요성 등 다양한 사안이 거론됐지만 그 중 핵심은 패션 박물관 건립이었다.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열린 '30 years of Japanese fashion'
"갑오경장 이후로 우리나라에 서양 복식이 들어왔는데 그 흔적들이 지금 전부 흩어져 있습니다."

세미나에서 사회를 맡았던 동덕여대 디자인학부 최현숙 학장의 말이다. 지난해는 서울패션위크 10주년이었다. 당시 방한한 영국 패션계의 거장 콜린 맥도웰은 컬렉션을 둘러 보고 최 학장에게 단 한 마디만 하고 돌아갔다.

"'어떻게 이 나라에 코스튬 뮤지엄이 없을 수가 있나."

이 만큼의 경제적, 문화적 수준을 갖춘 나라에 제대로 된 복식 박물관이 없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

"100년이 넘은 패션 역사를 보여줄 곳이 아무 데도 없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근현대 의상을 볼 수 있는 곳이 있긴 하다. 지난해 작고한 디자이너 최경자 씨의 딸 신혜순 관장이 운영하는 현대의상박물관이다.

동대문 근처에 있는 건물의 2개 층을 사용하는 이 박물관에는 19세기 후반 선교사의 아내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선물해 착용한 최초의 양장부터,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입었던 제일모직 원단으로 만든 수트, 윤복희 씨가 국내 최초의 패션 잡지 <의상>의 표지 모델로 서면서 입은 미니 스커트의 실물이 소장돼 있다. 2000여 점의 옷과 2000여 점의 장신구는, 그러나 제대로 펼쳐 보여질 기회가 없다.

"50년대 패션을 한꺼번에 보여주려고 해도 장소가 좁아서 못합니다. 위, 아래 층을 다 합쳐도 100평 밖에 안돼요. 게다가 패션 박물관을 위해 지은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조명이나 냉난방, 습도 시설이 옷을 보존하는 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신혜순 관장은 충남 예산에 대형 수장고를 지어 여기에 옷을 보관하고 있다.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1년에 두 번씩 마당에 널어 햇볕을 쪼이는 것도 그의 몫이다. 더 경악할 일은 옷의 사진과 설명, 기증자 등을 기재한 기록이 모두 종이 문서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워드로 쳐서 보관할 인력조차 없어 큐레이터 한 명과 주먹구구 식으로 운영 중이다.

"FIT 유학 시절 70년대 유행했던 나팔 바지와 지금 유행하는 나팔 바지의 차이를 연구하라는 과제를 받으면 박물관에 갔습니다. 국내에서 패션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사진이나 그림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죠. 하지만 옷의 느낌과 자세한 장식들은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야 알 수 있습니다. 나팔 바지가 어떻게 재해석되었는가를 살펴 보면서 과거의 패션을 어떤 식으로 현대에 응용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는 거죠."

선교사 부인이 물려준 국내 최초의 양장 (한국현대의상박물관 소장)
박물관은 단순히 도처에 널려 있는 소장품을 모아 보관하고 전시하는 기능에 그치지 않는다. 사디(SADI) 박주희 교수는 박물관의 연구 기능을 강조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같은 박물관에서는 전시를 하면 반드시 그와 관련된 서적을 출판합니다. 올해 5월에 알렉산더 맥퀸 전이 잡혀 있는데 아마존에 가보니 벌써 책이 출판돼 팔리고 있더라고요."

한국의 패션 관계자들이 통탄해 하는 부분도 바로 이 것으로, 패션과 관련된 양서의 절대 부족이다. 옷 잘 입는 방법과 연예인과의 친분, 사적인 감상으로 가득 찬 패션 서적은 '패션 쪽 사람들은 뇌를 안 쓴다'는 선입견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런던 V & A(Victoria & Albert: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에서 출판한 'Underwear(언더웨어)'라는 책에는 중세 시절의 속옷 사진과 자세한 도식화, 그리고 그것들이 탄생한 시기의 역사적 배경과 생활상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이런 책을 통해 알렉산더 맥퀸이 나오고 장 폴 고티에가 나오는 거죠."

프란체스카 여사가 입었던 제일모직 원단으로 만든 수트 (한국현대의상박물관 소장)
빈티지를 재해석하는 것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과거 작품을 탐구하는 데서 영감을 얻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해외에는 박물관 외에도 과거의 옷을 접할 수 있는 통로로 빈티지 스토어가 있다.

싼 것은 팔고 비싼 것은 주로 지하에 보관해 디자이너들에게 대여하는데 마크 제이콥스는 이 빈티지 스토어들의 주요 고객이다. 과거 패션이 현존하는 천재 디자이너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현대 패션계에 끼쳐지는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유명한 사람이 한 명 죽으면 향후 10년간의 패션 트렌드가 바뀐다는 농담이 있어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값어치 있는 옷들이 빈티지 스토어에 풀리고, 디자이너들이 그것을 빌려가 연구해서 만든 트렌드가 전 세계 유행을 바꾼다는 뜻이죠."

"이상봉, 지춘희 말고 또 누가 있나?"

패션 박물관의 필요성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럼 우리의 패션 박물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 안에 무엇을 채워 넣으면 좋을까? 관계자들의 중론은 근현대 복식으로 모아진다.

민화가 그려진 의상. 이상봉, 1997년작 (한국현대의상박물관 소장)(좌), 1959년 미스코리아 오현주 씨가 착용한 드레스. 노라노 (한국현대의상박물관 소장)(우)
"시작은 근현대 의상이어야 합니다. 전통 복식은 이미 민속박물관이나 고궁박물관에 있기 때문에 아주 시급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현존하는 박물관과 중첩되지 않아야 하는 필요성 외에도 근대 복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도 이유입니다. 1876년 개항 이후부터 일제 치하가 종료된 시점까지 입었던 옷은 알려진 바가 많지 않고 모아진 것은 더욱 없기 때문에 수집하려면 아마 전국적으로 기증 운동을 펼쳐야 할 겁니다."

최현숙 학장에 따르면 현대 복식은 그나마 모으기가 수월한 편이다. 광복 이후 1950년대에 최경자, 노라노, 서수연 여사가 명동에 양장점을 내면서 패션 디자이너의 시대가 열렸다. 그 후 디자이너들은 매년 배출됐고 이들이 쇼가 끝난 후 자신의 작품을 그냥 내다 버렸을 리가 없다.

"쿄토복식문화재단(KCI)도 꼼데갸르송의 의상을 1000점 받고 시작했습니다. 진태옥 디자이너가 자신의 옷을 2500점 넘게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이상봉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적 구분 외에 어떤 옷을 모을까도 중요한 문제다. 비싼 옷, 싼 옷, 사람들이 많이 입은 옷, 역사적 사건에서 단 한 번 포착된 옷, 디자이너 옷, 브랜드 옷, 시장 옷. 박주희 교수는 국내 패션 디자이너들의 옷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트워크로서의 옷은 해당 사항이 아닙니다. 옷이라는 오브제를 이용한 예술이 아니라 실제로 입기 위해 만들어진 옷들, 즉 상품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수집하고 소장하고 연구함으로써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의상, 국내 패션 히스토리를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이너들의 옷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기존 미술관들이 여는 패션 전시와 구분해야 할 필요성에서 나온 이야기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패션을 입을 수 있는 것과 입지 못하는 것, 상품과 작품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다. 경기도 미술관에서 '패션과 윤리'전을 기획한 적이 있는 황록주 큐레이터는 '일상적으로 쓰던 물건 중 가치가 조명된 것이 예술'이라고 말한다.

"초기 박물관의 형태는 우리가 사용하던 것들 중 진짜 잘 만든 것들을 모아 놓은 데서 출발했습니다. 용도 없이 감상만을 위한 예술 작품은 그 후에 탄생한 개념이고요. 잘 만든 옷 자체가 예술입니다. 그리고 파인 아티스트가 작품으로서 만든 옷도 현대 미술의 관점에서 예술이죠. 둘을 구분하는 것에 대해서 저는 반대 입장입니다. 패션이라는 매체를 가지고 예술적 상상력이 발휘되었다면 그걸 바탕으로 또 실용적인 패션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다만 영역 별로 구분할 수는 있겠지요."

실용성으로 따진다면 어패럴 기업에서 만든 옷도 배제될 수 없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한국 디자이너의 옷으로 국내 복식사를 읽는 것이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80~90년대에 한국 사람들이 실제로 옷을 산 디자이너가 이신우, 이상봉, 장광효, 지춘희… 또 누가 있죠? 이럴 바엔 ENC나 톰보이 같은 브랜드들이 패션 역사에 남긴 흔적이 훨씬 큽니다."

슬프지만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패션 박물관에 들어가야 하는 옷의 기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디자이너들을 역사책에 기록해야 할지, 어떤 옷들에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일이다.

"홍라희 컬렉션은 어때요?"

어떤 옷에 의미를 부여할지는 곧 옷을 보여주는 방식과 직결된다. 현재 패션 박물관의 전시 방식은 평면적이고 학술적이라 지루하다. 업계 종사자들만의 축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황록주 큐레이터에 따르면 최근 전시 흐름은 작품과 유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서,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유효한지를 알리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심지어 패션은 모든 사람이 매일 선택하고 입고 벗는 예술이니 이보다 더 대중적인 예술은 없다. 사람들이 박물관으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는 '유효함'에는 사색, 교육, 재미 등 다양한 개념이 포함된다.

"유명인들이 입은 명품 옷은 늘 대중의 관심사죠. 예를 들어 홍라희 여사가 보유한 샤넬 컬렉션이라고 한다면 정말 흥미로운 기획이 될 거예요."

이 밖에도 말라깽이 모델들과 44 사이즈 옷을 통해 말하는 '패션과 인권', 중고등학생들의 교복이 된 노스페이스 열풍이 들려주는 '패션의 수평 확장', 1세대 아이돌들의 괴상한 무대복에서 읽을 수 있는 '패션과 성(性)의식' 등등. 한국의 현대 패션은 100년간 풀어 놓지 못한 말들로 입이 근질근질하다.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씨는 패션 박물관은 패션을 통해 시대를 읽어내는 작업을 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옷은 사회, 문화, 인류학의 스펙트럼으로 다양하게 조명되어야 합니다. 유니폼을 통해 한국의 정치사를 훑는다거나, 무늬를 통해 특정 사건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그럼으로써 패션에 대한 대중의 전반적인 인식을 고양시키는 것이 패션 박물관의 할 일입니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