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혼란 창작활동 어려움 극복 위해 15개 단체 연대유흥과 실험예술 사이 간극 줄이고 다양한 소통 시도

언제나 시끌벅적한 문화 이벤트로 활기 넘치는 동네, 홍대 앞. 하지만 요즘은 그 홍대 앞이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들로 연이어 잡음을 빚고 있다.

프린지 페스티벌과 같은 홍대문화를 대표하는 주요 행사가 열리는 '걷고 싶은 거리'엔 여기저기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마포구가 홍대의 주차난 해소를 위해 지하주차장과 함께 지하상가 건설 계획을 세우면서 주민들과 마찰과 빚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주말마다 젊은이들을 집결시키며 홍대 문화의 정체성을 대표했던 '클럽데이'의 잠정적 폐지, 홍대 내 청소노동자들의 일제 해고 과정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태도 등은 이미 홍대 문화의 변질을 말하는 거 같다.

한때 거리를 떠들썩하게, 그러나 유쾌하게 만들었던 젊은 문화예술인들 중 일부는 이제 홍대 앞을 떠나고 있다. 예전의 홍대정신이 퇴색됐다는 이유도 있지만, 대개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임대료 때문이다. 문래동이나 합정동, 상수동 쪽으로의 대대적인 엑소더스가 이루어지면서 홍대 앞에 남은 예술가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홍대는 여전히 젊음과 문화예술의 거리이지만, 동시에 카페와 레스토랑 등 유흥문화가 발달한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지구이기도 하다. 이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정체성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홍대 앞은 과연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앞서 신촌이 걸어간 상업화의 가속 페달을 밟으려는 찰라, 홍대 문화의 정체성을 지켜온 문화예술인들이 용케 제동을 걸었다.

서교동 대안공간 루프에서 (사)홍대앞문화예술회의 창립 총화를 개최하고 김백기 한국실험예술정신 대표가 추천 선발됐다.
문화예술인들, 드디어 뭉치다

3월 28일 오후 대안공간 루프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지하공간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북적댔다. 모인 사람들은 홍대 앞에서 각종 문화 활동과 예술 창작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잠시 후 우렁찬 박수소리와 함께 '홍대 앞 문화예술회의'가 탄생했다.

홍대 앞 문화예술회의는 네오룩, 대안공간 루프,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라이브음악문화발전협회, 롤링홀, 상상공장,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스트리트 H, 요기가 표현갤러리, 와우책문화예술센터, 일상예술창작센터, 클럽문화협회, 클럽 오백,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실험예술정신 등 총 15개 단체가 모인 범 홍대문화예술인 연대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홍대 앞 지역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현안들을 처리하는 일을 주도해온 김백기 한국실험예술정신 대표가 이날 새로운 연대의 초대 리더가 됐고, 오성화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대표가 이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한편 이날 자리에는 마포구의 김영호 부구청장을 비롯해 강용석 국회의원, 김영호 서울문화재단 문화축제사업본부장 등 정관계 인사들도 참여해 향후 홍대 문화예술의 지형 변화를 예측케 했다.

이날 연대 발족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는 "예술하는 사람들이 원래 혼자는 잘하지만 같이는 잘 못하는데"라고 농을 던지며 "하지만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의 앙상블이 더 낫듯이 새로 출범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이 멋진 앙상블을 이뤄내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개성 강한 홍대 앞 예술인들이 뭉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번 연대에 앞서 각 문화예술단체들은 지난해까지 세 번의 '홍대 앞 문화예술상' 시상식을 통해 이미 연대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춤, 음악, 미술, 퍼포먼스, 출판 등 성격도 판이하게 다른 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입지가 좁아진 홍대 문화의 부흥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무분별한 상권의 발달로 유입된 거대 자본은 90년대 작업실 문화에서 시작된 홍대 앞의 독특한 문화의 색을 점점 더 잃게 만들었다. 결국 또 하나의 축제를 통해 홍대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려 했던 이들은 정체성의 혼란과 창작 활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계 불문의 연대를 감행할 수밖에 없게 됐다.

왜 홍대 문화를 살려야 할까

물론 내부적으로 이들이 자신만의 정체성에 갇혀 홍대 밖의 일반 대중과 소통을 안 해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지나치게 실험적이고 '인디'적인 홍대의 '마이너리티' 문화를 대중에 더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반성과 노력도 함께했다.

사진=임재범기자
보다 대중적인 홍대 문화예술의 보급을 위해 홍대 외부에서 영입된 홍보대행사 아담스페이스가 그런 경우다. 제2회 홍대 앞 문화예술상을 진행했던 김은 아담스페이스 대표는 "일단 알고는 있어야 발전도 되고 후원도 이루어지는 것이 문화인데, 홍대만의 독특한 매력이 담긴 문화예술은 홍대 밖과 전혀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한계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한다.

이를 위해 그가 홍대 앞 문화예술 단체들에 조언한 것은 '홍대정신'은 잃지 않으면서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대중에게 접근하는 홍보 방법이었다. 이는 그대로 현재의 홍대 앞 문화의 위기와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김은 대표는 "현재 홍대에 오는 사람들은 유흥 문화를 즐기려는 사람들과 홍대 특유의 실험예술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두 부류로 나뉜다"고 진단하며, "앞으로 홍대 앞 문화예술회의는 이런 극과 극의 취향 간극을 줄이고 어떻게 하면 그 중간 지점에서 다양한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문화동네 홍대의 위기가 중요한 이유는 문화강국 한국의 이미지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에서 문화예술 거리라고 할 만한 동네는 얼마 남지 않았다.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가 아직은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몇 년째 변질된 연극정신이라는 지적과 비판이 내외부적으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예술가 거리의 최후의 보루였던 홍대는 이제 문화예술인들의 잇따른 이주와 지나친 상권 발달로 예술가 동네로서의 빛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예술 콘텐츠가 빠져나가고 유흥가만 발달한 거리는 결국 '문화 동네'로서의 매력과 브랜드의 힘을 잃고 만다. 좋은 예가 신촌이다. 도심에서 문화예술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해지는가는 신촌이 잘 말해준다. 1970~80년대 신촌의 예술인들이 대학로로 이탈하면서 상권 역시 동반 침체를 겪었다. 지금의 신촌은 '문화 동네'로서의 기능보다는 젊은이들을 위한 유흥가의 성격이 짙다.

한때 홍대 문화는 홍대 미대라는 아카데미와 그 앞의 클럽 문화, 그리고 거리예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이상적인 문화예술 창작 환경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조성된 인프라와 예술가 모임이 다른 동네로 퍼지면서 파생된 문화들도 적지 않다.

신사동 가로수길, 문래동 철제공장, 신촌에서 건너간 대학로 연극들은 모두 홍대에서 퍼진 씨앗을 키워 결실을 맺은 곳이다. 그래서 이번의 홍대 앞 문화예술의 생존을 위한 연대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김백기 '홍대 앞 문화예술회의' 초대 대표 인터뷰

어려운 상황에서 또 중임을 맡으셨네요.

홍대 문화의 위기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일 중요한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홍대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활동한 만큼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습니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는 뭘까요.

어떤 문제가 첫 번째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의 문제들은 어떤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것들이거든요. 가령 각종 문화예술 정책 문제, 당인리 발전소의 창작공간 활용 문제, 지역 주민들과의 공조 문제 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음 총회 때는 각 부문에서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이를 개별적으로 진행시킬 생각입니다. 또 이런 공공적 차원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수익성까지 고려한 사업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관계와의 대화도 필요할 텐데요.

그래서 지역 주민과 국회의원, 마포구청, 구의원 등이 함께 참석하는 통합간담회를 추진 중입니다. 늦어도 5월 초 정도에는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지역 주민들과의 공조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지하주차장 문제도 아직 해결이 안 된 문제입니다.

그 문제 역시 공식적인 공청회도 없는 상태입니다. 이해당사자들인 상인이나 주민을 포함한 소통의 자리가 먼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예술가들의 연대를 통해 어떤 효과가 있을 거라고 전망하십니까.

우선 예술인들이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홍대의 많은 축제들끼리 연대해서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홍대 앞 거리에는 문화게시판도 없는데, 마포구청과 협의해서 신설하는 것도 추진 중입니다.

그동안 많은 문화예술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하다보니 마포구청 측과 소통 창구가 원활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이들을 대표하는 협의체가 구성됐으니 앞으로는 보다 월활한 처리가 이루어질 거라 예상합니다.

이번의 연대는 결국 문화예술의 힘을 환기하는 선언 같습니다.

지금 홍대 앞에서 거주하며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은 40~5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홍대 앞에서 상주하는 예술단체도 한국실험예술정신, 와오북, 상상공장, 아이공 등 4개 단체만 남은 상태죠. 홍대도 신촌처럼 유흥가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이는 크게 보면 홍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마포구, 나아가 서울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것입니다.

'예술가는 가난해도 예술은 가난하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임대료 때문에 예술가들이 홍대를 떠나고 있는데, 이곳을 그렇게 높은 임대료를 받게 한 것도 결국은 문화예술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문화예술의 경제적 기능을 잊고 있는 것 같은데, 특히 정치ㆍ경제인들이 이런 점을 인지해주기를 바랍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