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김영희 개인전 'bottari'

보따리
"", "그녀", "묶는다", "대화를", "느낀다"

붉은 보자기로 싸인 들이 깜박거리며 제각각 단어들을 토해낸다. 조각난 말들이 산발적으로 들린다. 동사, 형용사가 뒤죽박죽이지만 가끔 순서가 맞아 떨어져 문장이 된다. 물론 그것도 잠시, 이들은 교통 신호에 걸려 잠시 나란히 섰던 차들처럼 서로를 스쳐간다. 우연한 순간은 공중으로 흩어진다. 기억에만 남는다. 헛되고도 빛나는 도시의 인연 같다.

김영희 작가의 설치 작품 ''는 보자기의 쓰임에서 영감을 얻었다. 재미교포인 작가가 한국에 와서 가장 흥미롭게 느낀 물건이 보자기였다. 선물 포장으로 받은 보자기가 때론 이삿짐을 싸거나 소중한 것을 보관하는 데 쓰였다. 보자기는 단순하지만, 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이 작품에 녹아 있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지갑들이 깜박거리며 말을 건다. "저를 채워 주세요Feed Me More", "저에게 행복을 사주세요Buy Me Happiness" 같은 문장이 지갑 외부 LCD 스크린을 흘러간다. 얼마나 자주 여닫느냐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지기도 한다. 돈을 벌고 또 벌고, 쓰고 또 써도 목 마른 현대인들의 욕망을 풍자한 '' 시리즈다.

일상적 물건의 탈을 쓰니 미디어 아트가 한층 가깝게 다가온다. 입을 수 있고, 사용자에게 반응하는 '웨어러블 컴퓨팅' 기술을 미술로 풀어내 온 김영희 작가가 선보인 작품들이다. 홍익대학교 WCU 디지털미디어퍼블릭아트 연구소에서 연구한 성과다.

머니홀릭
이밖에도 관객이 손을 대면 시든 척 불이 꺼지는 LED 꽃 '', 그리스 시대의 비너스 상부터 현대의 바비 인형까지 역사적인 이상적 몸매들이 투영되는 드레스 '' 등이 전시되어 있다.

구석에서 홀로 불빛을 내고 있는 한 켤레 부츠 '바디 그래피티'도 외면하지 말 것. 그걸 신고 그네를 타면 날개 모양의 잔상을 남긴다는 신기한 물건이다. 잔상은 프로그래밍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발을 옮길 때마다 "건드리지 마시오", "사람을 찾습니다" 같은 메시지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사람이 부츠를 신고 다니는지, 부츠가 사람을 타고 다니는지 헷갈릴 것 같기도 하지만, 미디어는 사람에게 이렇게 파고들어 있다.

'bottari'전은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갤러리b2프로젝트에서 4월 20일까지 열린다. 02-747-5435.


당신의 비너스
꺾지 마세요
바디 그래피티 부츠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